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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고 싶은 나의 교수님

2014년도_입선_[국어국문학과]_박재연교수

  • 유남경
  • 2015-01-29
  • 15500

2년간의 긴 휴학을 마치고 복학을 했다. 오랜만에 돌아왔을 때 처음으로 고민이 되었던 것은 미래 걱정, 취업 걱정 따위가 아니었다. 처음으로 고민 되었던 건 다름 아닌, 수강 신청 걱정이었다. 오랜만에 돌아와서인지 무슨 수업을 들어야 할지, 시간표는 어떻게 짜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처음부터 이 수업은 들어야겠다고 찍어놓은 게 있었다. 바로 박재연 교수님의 ‘국어형태론’이었다. 그리고 첫 수업에 박재연 교수님은 오랜만에 나를 보며 약간은 놀란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 아직도 내 수업 들을 게 남았니?”

“......”

내가 수업 듣는 게 싫으신 건가, 하고 잠깐 생각했지만 애정 어린 농담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사실 교수님의 말씀은 내겐 놀라운 것이었다. 왜냐하면 교수님은 아주대 국문과에서 문법을 담당하고 계시고, 나는 문법을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른 과도 그렇겠지만, 통칭 ‘국문과’로 불리는 ‘국어국문과’에는 하나의 과로 묶기엔 여러 가지 학문이 뒤섞여 있다. 크게는 어학과 문학을 나눌 수 있고, 문학은 또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으로, 어학은 음운학과 문법학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여기에 국문과는 딱히 전공 필수 과목도 없어서 커리큘럼에서 어느 정도 기초단계를 지나고 나면, 자신이 좋아하는 쪽 수업만 듣는 사람이 많다. 내가 국문과에 들어 온 이유 또한 어학이 좋아서는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문학 쪽에 관심이 있어서 국문과를 선택한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이번 수업까지 벌써 12학점을 박재연 교수님의 수업을 들었다. 문법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잘하지도 못하지만 교수님의 수업만을 스토커처럼 따라다니며 듣는 이유가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그건 바로 재밌기 때문이었다.

수업이 재밌는 건 여러 요소가 있을 것이다. 수업을 가르치는 이의 언변이 좋아서 일수도 있고, 배우는 수업 내용 자체가 흥미로운 내용 일 수도 있다. 박재연 교수님도 국문과 교수님답게 언변이 좋으시기도 하시다. 그래서 수업이 재밌는 것도 있겠지만, 교수님의 수업이 재밌는 점은 사실은 수업 내용 때문이었다.

조금 앞뒤가 안 맞는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문법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으면서, 문법을 가르치는 교수님의 수업이 좋은 이유가 수업 내용 때문이라니.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는 박재연 교수님을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교수님의 수업을 듣다보면 ‘한국어’를 분석하고 연구하는 일이 즐거운 일이라고 학생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한다.

문법이라는 단어만으로 지루함을 느낄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문법이란 흥미로울 수 없는 과목일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어차피 한국말을 할 수 있는데 왜 한국어의 문법을 익혀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가기도 하고, 우리가 쓰는 언어를 규범화 시키려는 것에 대해 거부감 또는 지루함을 느꼈다. 그럼에도 교수님의 수업은 언제나 즐거웠다. 생각해보면 사실 문법이란 우리가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우리가 심리학에 즐거움을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가 하는 행동 안에 우리의 심리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무의식적인 심리가 들추어내는데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언어학이란 사실 심리학과 비단 바를 바가 없다. 우리가 하는 생각이나 무의식이 바로 우리가 쓰는 언어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학문으로서 언어학은 규범을 익히고 그 규칙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의 언어에서 규범을 찾아내 기술하고 설명하는 것이 언어학인 것이다. 이것은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이기 때문이며, 그 언어에는 우리세대가 최근 만들어 낸 신조어도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박재연 교수님의 수업에서 역할 또한 그런 일이었던 것 같다. 기본 바탕이 되는 지식 또한 세세하게 지도해 주시지만,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여러 생각을 요구하였다. 예를 들어 ‘왜 불고기는 [불고기]로 발음이 나는데 물고기는 [물꼬기]로 발음이 나는가’, ‘서술격 조사로 불리는 ’이다‘는 조사인가, 형용사인가, 동사인가’와 같은 질문들을 많이 던져주셨다. 학계에서도 정확한 답이 나오지 않은 이러한 질문들을 생각해보면서 우리는 함께 연구자가 되어 ‘한국어’라는 ‘언어’에 대해 여러 방면으로 고찰해 보았다.

수업 발표문제로 교수님을 찾아 뵌 적이 있었다. 수업 발표 주제를 여러 가지 생각해서 교수님께 보였고 어느 것이 적절한지 여쭸다. 그러자 교수님은 대답해 주셨다.

“가균아, 네가 재밌을 것 같은 걸 해.”

나에게 국어국문과는 무엇일까. 사회에 나와서 누군가의 맞춤법에 딴죽 걸 일이 아니면 비단 이렇게 열심히 문법을 배울 필요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국어국문이, 인문학이 하나의 의미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은 ‘고찰’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문학부생이 다른 학부생과 차별 점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인 것이다. 이러한 ‘시선’에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로 한다. 하나는 ‘흥미’이고, 하나는 ‘사색’이다. 교수님은 우리가 재밌는 주제를 하라며 ‘흥미’를 돋궈 주셨고, 학생마다 질문을 필수로 받으며 ‘사색’의 장을 만들어 주셨다. 교수님의 충고를 듣고 여러 논문이 있고 많은 연구가 되어왔던 그런 주제가 아니라 내가 관심이 가는 ‘신조어 어미’를 주제로 레포트를 썼다. 나의 레포트가 잘 되었는지, 논리적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레포트는 나의 생각을 적은 레포트였고, 그 레포트를 준비하는 동안 즐거웠다는 것이다.

종종 다른 학과 학생들이 국문과의 수업들을 교양으로 듣는 모습을 본다. 내가 그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건, 바로 박재연 교수님의 수업이다. 문학 관련 수업은 생각보다 관련 컨텍스트를 요하는 경우가 많고, 전공자들과 수준 차이가 꽤 날 수 있다. 그러나 어학 수업은 많은 국문과 학생들도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컨텍스트 없이 오로지 당신이 지금 사용하고 있는 언어만으로 충분히 수업을 듣고, 연구할 수 있다. 그리고 장담하건데, 그 일은 국문과가 아닌 당신에게도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