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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고 싶은 나의 교수님

2012년도_우수_[수학과]_하영화교수

  • 유남경
  • 2013-07-23
  • 16637

산업공학과_김현호

파릇한 1학년 1학기를 지내고 2학기가 다가왔습니다. 수강신청을 하려고 보니 1학기때 수학 1의 학점이 D+ 이기 때문에 자동으로 수학2 기초반 수강신청이 되어있었습니다. ‘.. 기초반..’하며 탄식이 나왔습니다. 무었보다 기초반이 싫었던 것은 다른 수학반은 1주일에 2번 수업이 있는 반면 기초반은 1주일에 3번 수업이있었고, 웹과제도 자주 있기 때문입니다.

1학기때 놀지말고 좀더 열심히 할걸 하는 생각으로 첫수업을 들어갔는데 나이가 좀 있으신 교수님이 천천히 들어오셨습니다. 하영화 교수님과의 첫 만남 이었습니다.

교수님은 몸이 조금 불편해 보이셨습니다. 어떤애들은 교수님을 보고 왜저러지 하고 쑥덕댔지만 저는 이번에는 수업에만 집중하여 기초반을 탈출하자하는 다짐에 공부열의가 불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못가 수업듣다가 1학기와 다를바없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습니다. 앞자리였던 저는 점점 뒷자리로 갔고, 그리고 뒷자리에서 친구들과 쑥덕거리고 휴대폰을 만지고 놀았습니다.

시간을 흘러 중간고사가 다가왔습니다. 수업시간에 놀아서 잘 볼 턱이 없었습니다. 저 딴에는 열심히 했는데 성적이 안나왔다고 자기합리화를 하였고, 근본적인 문제는 살펴보지 않았습니다. 평소에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수업열심히 들어라, 뒷자리 앉지 마라, 휴대폰 만지지마라, 졸지마라 등등 여러 가지 말씀을 하셨는데 몇몇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거의다 귀담아 듣지않고 자기 하고싶은데로 하였습니다.

단풍이들고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교수님은 오늘은 수업을 하지 않는다고 하셨고, 티타임을 가지고 이야기좀 한다고 하였습니다. 일부학생들은 수업이 없다고 좋아라 하면서 교수님 말에 경청하기 시작했습니다.

교수님은 수업과는 상관없지만 꼭 도움이 될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첫 운을 떼셨습니다. 교수님은 어릴 때 소아마비를 겪으셨습니다. 지금 의학 기술로는 완치가 가능하지만 그당시 의학기술로는 완치까지는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다리가 불편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무렵 공학도의 꿈을 가져 화학 약품을 가지고 실험하는 도중 플라스크가 폭발하여 들고 있던 왼손 핏줄이 손상되어 어린나이에 한손을 절단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전혀 불편한 내색없이 자연스레 강의를 하셨기 때문입니다. 절단 하신 후 에도 공학도의 꿈을 가져 공대에 진학하려고 했으나 공대는 실험을 해야하기 때문에 손이 없으면 사실상 지원을 불허 하였습니다.

교수님은 큰 상심을 하시고 자신있는 수학과로 진학하였습니다. 저의 흥청망청했던 대학교 1학년과 다르게 교수님은 자신이 남들과 부족한만큼 더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 하셨습니다. 그 결과 미국에 좋은 대학교에 유학을 가게 되었고 주목되는 이목에 아랑곳 하지않고 밤을 세워 연구하고 공부하여 우수한 성적을 받으셨습니다. 교수님은 거기서 한국학생들은 독하다 하실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그 후 아주대에 와서 교수님이 되었고 한창 젊은 시절엔 학생들과 등산도 하고 자전거를 타며 같이 여행도 다니시면서 학생들의 학업 의지를 상승시켜주시고 할수 있다는 용기를 복돋아 주셨다고 합니다.

교수님은 저희반 학생들보고 너희들은 이반에 왜 왔는지 궁극적인 원인을 분석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희들은 공통점이 많았습니다. 똑같이 게으르며 의지가 없고, 똑같이 합리화 하는 버릇들이 있었습니다. 교수님은 누구에게나 시간은 균등하고 기회는 공평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우리랑 같은 시간을 가졌지만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성적의 격차가 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교수님이 모든사람은 기회가 공평하다고 할 때 사실 매우 부끄러워 졌습니다. 가만히 교수님의 어릴때를 생각해보았습니다. 만약 그게 나였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나는 무었을 하고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겹쳤습니다. 교수님은 남들과 다른 불운한 기회를 가졌지만 매사에 긍정적으로 살며 하루하루 주어진 시간에 열심히 사셨습니다. 만약 제가 그런 환경이었다면 교수님처럼 절대 그렇게 못했을 것입니다.

교수님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고 항상 자신의 주어진 기회에 감사하며 열심히 살자는 말로 끝을 맺었습니다. 교수님의 말씀이 끝나고 저는 아직 기회가 많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청강하던 여학우들은 눈물을 훔쳤고, 저도 밀려오는 감동에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교수님께 진심을 다한 박수를 쳤습니다. 그 후 저는 교수님의 강의를 열심히 듣기위해 제일 앞자리에서 공부하였고 기회를 살리기위해 절대 졸지 않으며 열심히 수업을 들었습니다. 시간을 흥청망청 놀며 쓰지않고 자기 개발하는데 투자를 하니 학점은 자동스레 따라왔습니다. 그 말을 명심하여 다른과목에도 적용하여 암울했던 성적이 수직 상승하였습니다. 마음가짐의 변화가 이렇게 큰지 교수님의 말씀을 듣기전에는 몰랐습니다.

교수님은 몇 년전 만해도 아픈신 몸이지만 재활을 위해 등산을 자주가셨다고 합니다. 남들은 불가능하다고 하지말라고 그랬지만 나는 할 수 있다하는 마음으로 도전하니 어느새 몇 백번을 등반하셨다고 합니다. 그 결과 다리 인대도 다치고 그랬다 하셔서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포기하지 않고 긍적적이시며 매사에 최선을 다하시는 것이 교수님이 성공한 인생의 비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기초반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게 됨으로써 더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제 마음속 깊은곳에서 차곡차곡 싸여 먼훗날 저에게 도움이 될것이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제 인생을 빛나게 할 마음가짐을 주신 하영화 교수님께 말로 다할수 없는 감사함을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