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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듣고 싶은 명강의

2015년도_우수_[아동이상 심리학 및 실습]_김민재교수

  • 유남경
  • 2016-01-27
  • 13387

심리학과 김혜리

 

사실 이 글을 적기엔 조금 부끄러운 감이 없지 않다. 나는 이 과목의 기말고사를 완전히 망쳐버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장문의 글을 적는 것은, 한 학기 동안 너무나 유쾌하고 재미있게 들었던 강의였으며 더 나아가 나에게 집중할 수 있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동이상심리학이란, 임상심리학이라는 분과 학문에서의 세부적인 학문이다. 임상심리학은 정신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에게 분류와 진단을 함으로서 높은 질의 치료를 받게 해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임상심리학 진단 기준이 성인에 치우쳐져 있기 때문에 아동에 특화된 기준이 필요하다. 김민재 교수님께서는 아동에게 있어 변형되거나 선천적 특징을 갖고 있는 정신병질에 초점을 맞춘 강의를 하셨다. 우리 수강생들은 한 학기 동안 각각의 질병에 대한 특징, 그 원인과 진단기준, 치료 등을 배웠다. 실제 임상심리사들이 어떤 내용을 익혀야하는지 포괄적으로 알려주는 강의였다.

첫 강의를 시작하면서부터, 모든 학생들은 조를 이루게 되었다. 프레젠테이션을 사용한 발표가 과제이기 때문이었는데, 꼭 그것만을 위한 조 편성은 아니었다. 교수님은 강의 진행 후, 그에 관련된 사회적 신문기사나 영상 등을 보여주시곤 하셨다. 예를 들면 지적 장애를 가진 청소년의 살인 사건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교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내용을 연결해 주어진 토론 시간에 바로 꺼내 사용하게 된다. 조원들은 그 주제들에 관해 토론을 하고, 주어진 시간이 지나면 모든 학생들이 듣는 와중에 취합된 의견을 발표했다. 학부생들끼리의 토론이었지만 고개가 절로 끄덕여질 만큼 신선한 의견이 많았다. 분명 서로 반대되는 의견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주장과 그에 따른 합당한 이유를 들으면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하곤 했다. 발표를 하면 교수님께서 그에 대한 생각을 덧붙여서 말씀해 주셨다. 나는 이렇듯 매 시간 이루어지는 토론 발표를 좋아했다. 찬반토론이라면 그 대립에서 생기는 절충점이 좋았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는 막연한 주제에 대한 토론이라면 쏟아지는 창의적인 의견들이 좋았다. 소통으로 이루어지는 수업이라는 것 자체가 좋았던 걸지도 모른다.

학기 과제는 사례를 중심으로 한 조 발표였다. 각 장의 PTSD, ADHD, 조현병 등의 정신질환이 주제로 주어지고, 그것을 앓고 있는 환아에 대한 구체적인 아동 사례를 발표하면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조들이 영상을 통해 환아가 처해있는 상황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시킨 후 사례의 세부적인 특징들에 대해 설명하는 방식이 주를 이었다. 예를 들면 이 아동의 행동은 어떤 진단기준들을 충족시키므로 어떠한 진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속해있는 조는 지적장애 파트를 맡았는데 구체적인 한 사례 대신 지적장애군 내의 다양한 장애들을 소개했다. 이러한 조 과제가 여타와는 다르게 특별했던 것은, 발표를 하고 들으면서 심층적인 이해가 동반되기 때문이었다.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제시되지 않아도 조원들은 사례에 대한 해석을 자처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현 상황에서 주어지지 않는 필수불가결한 장애인 복지에 대한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지적장애아동의 범죄에 관해서는 사후대책보다 예방이 필수라고 생각해, 복지관에 대한 국가의 재정 투자와 더 엄격한 감독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병명(病名)에 갇힌 이론이 아닌 배움을 스스로도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은, 대학에 와서 진정한 학문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던 내게 숨통이 트이는 일이었다.

 

임상심리학이라고 하면 대부분 질병에 대한 유병률, 주요원인과 그 외의 것만을 배우게 된다. 꼭 임상심리학이 아니더라도, 학문은 너무나 추상적이었다. 그리고 이상적이었기 때문에 나는 학문을 배움에 있어서도 어떠한 계층이 나뉠 거라는 생각을 했다. 심리학은 배부른 학문인 것만 같았다. 내가 심리학을 배워야겠다고 처음으로 마음먹었던 것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더 나아가 사람을 도울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의 첫 다짐, 남을 돕고 사는 것은 근원적으로 내가 편입을 하면서까지 심리학과를 오게 된 이유였다. 그러나 성인이 되고나서, 대학이라는 공간 안에 나 자신조차 돌아볼 기회는 많지 않았다. 내가 꿈꾸었던 이타적인 목표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흥미위주로, 그리고 좀 더 잘 살기 위해서 어떤 길로 가야할지에 생각을 쏟았다. 그런데 이 수업에서 토론을 통해 의견을 나누고 있자면 어떤 현상, 그러니까 우리 주변에서 시시각각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사실을 가슴으로 느끼게 된다. 시험공부를 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삶의 질이 높아진다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과연 내가 돈을 더 많이 벌게 된다고 해서 진정한 인생을 산다 말할 수 있을까? 사춘기의 청소년마냥 나의 인생에 대한 고찰을 했다. 그러자 그토록 귀찮아했던 봉사와, 약자를 외면해왔던 모습들이 떠올랐다. 임상심리학자가 되어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돕겠다고 했던 예전 모습이 새롭게 느껴졌다. 잊고 있었던 것들을 떠올리며 초심이란 지키기 얼마나 힘든지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다시금 강의를 들으며, 내가 집중할 것들이 무엇인지를 쌓아간다.

 

아직까지 어떤 길을 가겠다고 분명히 정한 것은 없다. 방향을 정하는 건 강의가 아니라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러한 생각을 하도록 일깨워준 것은 토론을 통한 깊이 있는 소통과 의견을 제시하기까지 일어나는 모든 생각 때문이다. 교육의 방식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 느끼게 된 학기였다. 이제 와서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내가 이 학교에, 이 학과에 오게 된 것은 어떤 원대한 목표나 취업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위함 때문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