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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인칼럼

[칼럼] 아빠를 부탁해

NEW [칼럼] 아빠를 부탁해

  • 이솔
  • 2015-02-23
  • 21408
기골이 장대하고 때깔이 그럴싸한들 뭐하나. 꿩 한 마리 제대로 못 잡으면 매의 품계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이래서 생긴 속언이 ‘꿩 잡는 게 매’. 한때 방송가에선 시청률만 잘 나오면 비난이 무성해도 승진은 무난하다는 뜻으로 통했다. 
 
이번 설 연휴 성적표는 어떤가. 각 진영마다 꿩(시청자의 마음)을 잡기 위해 긴급작전을 수립했다. 드디어 출정식을 마친 매(파일럿 프로그램)들이 전파에 몸을 싣고 비행을 시작했다. 사냥꾼들은 심쿵(심장이 쿵쾅쿵쾅). 돌아온 매들의 사냥 결과는? S본부의 웃음소리가 컸다. 50대 아빠와 20대 딸들의 조곤조곤, 서먹서먹한 추억 만들기 ‘아빠를 부탁해’가 1위 고지를 점령해서다.
 
시간은 차분했고 공간은 넉넉했다. 기존의 ‘아빠 어디 가’ ‘슈퍼맨이 돌아왔다’ ‘유자식 상팔자’에도 부녀가 등장하지만 ‘아빠를 부탁해’에 비하면 딸들이 사뭇 어렸다. 이번에도 아빠들 눈에는 여전히 물가의 어린아이로 비쳤겠지만 스물이 훌쩍 넘은 딸들은 오히려 아빠를 걱정한다. 성장한 딸들이 고상한 아빠보다 자상한 아빠를 원하는 건 인지상정일 터.(4행시를 즐기는 나는 일찍이 ‘부자유친’을 ‘부드럽고 자상하고 유연하고 친절하게’로 확장한 바 있다.) 과연 24시간 관찰카메라가 포착한 부자유친 지수는? 마음은 비슷해도 표현은 높낮이가 달랐다. 가장 아래쪽에 조재현씨가, 맨 위쪽에 강석우씨가 보였다. 그 사이로 이경규씨, 조민기씨가 오르락내리락했다.
 
시청자는 무엇에 홀렸나? 가족의 가치라는 불멸의 주제와 더불어 출연자의 신선도(가족의 민낯 공개라는 면에서)가 상큼했다. 섭외된 아빠들의 면모가 간단치 않다. 평균 30년 이상을 활동했으니 시청자에겐 가족처럼 친숙한 존재이지만 정작 본인의 가족을 이처럼 적나라하게 노출시킨 적은 없었다. 일터와 쉼터를 엄격히 구분했던 그들은 왜 느지막이 문을 열어주었을까. 웬만한 출연료로도 그들의 빗장(마음과 가정)을 동시에 풀긴 어려웠을 텐데. 
 
짐작할 뿐이다. 연기자 이전에 아빠인 그들은 머지않아 찾아올 이별을 천천히 연습하는 중이다. 딸들은 어느 날 짐을 꾸린다. 적막한 밤에 잠을 뒤척이던 아빠는 딸의 부재를 눈치 채고 슬며시 침대맡의 비디오를 뒤적일 것이다. 까르르 웃다가 그예 눈물을 보이는 귀여운 딸이 아직 그곳에 있다. 볼륨을 올린다. 가슴을 파고드는 간지러운 딸의 속삭임. “아빠를…부탁해.”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중앙일보 2015.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