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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인칼럼

[칼럼] 한번 물먹은 사람이 계속 물먹는 이유는

NEW [칼럼] 한번 물먹은 사람이 계속 물먹는 이유는

  • 이솔
  • 2015-02-13
  • 21243
한 번 보지 않으면 별다른 이유 없이 싫어진다. 
 
선택은 의지만의 문제가 아니다. 선택하지 않는 것, 즉 배제 역시 의지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은 특정 이유로 한 번 관심을 주지 않은 대안이라면 그와는 전혀 무관한 기준으로 선택해야 할 때도 부지불식간에 배제하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키 큰 사람을 뽑을 때 당연히 배제되는 키 작은 사람이라면 키와는 무관하게 운동 잘하는 사람을 뽑을 때에도 별 다른 이유 없이 후보군에서 슬며시 배제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특정 프로젝트에서 부적격이라고 한 번 탈락한다면 그 이후 연속으로 이어지는 전혀 다른 프로젝트에서도 탈락할 때가 많다. 
 
실제로 물건을 살 때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 플로리다대학 크리스 야니셰프스키 교수 연구진은 한 가지 실험을 했다. 그는 대학생들에게 물건을 정리하는 일을 하게 했다. 어떤 학생들에게는 나중에 팔아야 하기 때문에 진열대 위에 올라오면 안 되는 물건들을 배제하는 일을 시켰다. 이런 작업을 하고 난 뒤 학생들에게 해당 물건이 얼마나 마음에 드는지 판단하도록 했다. 당연히 이전에 물건을 분류한 일과 지금 자기에게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고르는 일은 다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학생들이 자신이 이전에 무시, 즉 배제했던 물건을 좋아한다고 답한 비율은 현저히 낮았다. 
 
영국 버밍엄대학 심리학자인 제인 레이먼드 교수의 실험도 사람들의 선택과 배제가 얼마나 비합리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이 보는 화면 좌우에 각각 그림이 하나씩 있다. 한 그림 속에는 작은 사각형들이 숨어 있고 다른 그림에는 작은 원들이 숨어 있다. A그룹 사람들은 사각형이 있는 그림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B그룹 사람들은 원이 있는 그림이 어떤 것이지 재빨리 선택하는 일을 했다. 
 
이 과제를 한 후 사람들에게 이제 원과 사각형이 포함된 새로운 그림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림이 얼마나 즐거운가 혹은 지루한가를 물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시해야 했던 도형이 포함되어 있던 그림은 즐겁지도 않고 지루하다는 평가를 했다. 그런데 자신이 주의를 기울여야 했던 도형이 있는 그림에 대해서는 즐겁다는 평가를 했다. 그런데 더욱 재미 있는 것은 이런 혼동 현상은 바쁜 상황에서 더욱 강하게 일어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어떤 대상을 의식적으로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바쁜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부지불식간에 무시할 때는 이후 전혀 다른 상황에서도 그 대상을 배제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가령 인터넷에서 뉴스 기사를 볼 때 중요한 내용을 읽으면서도 귀찮은 배너광고는 끈질기게 시야에 들어온다. 우리는 이것을 의식적으로 배제해야 한다. 그러면 그 결과는? 나중에 정작 그 상품을 TV 광고에서 볼 때도 좋아하지 않게 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조직이 바쁜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는 그 일과 무관한 사람들을 별다른 생각 없이 그 근처에 놓지 말고 아예 다른 곳으로 옮겨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부지불식간에 평가절하되기 십상이고 결국 필요한 시점에 간과될 위험이 커진다. 사람, 일, 역할 어느 것이든 마찬가지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2015.2.13 매일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