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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인칼럼

[칼럼] 혁신 원한다면 예시 없애라

NEW [칼럼] 혁신 원한다면 예시 없애라

  • 이솔
  • 2015-01-23
  • 21173
창의적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따로 있을까. 리더라면 누구나 궁금해 하는 점이다. 이 명제는 어느 정도는 참이지만 사실 틀린 말에 가깝다. 문제는 우리가 이 주장을 필요 이상으로 믿고 있다는 것이다. 창의적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따로 있다기보다는 같은 사람이라도 창의적으로 만들 수 있는 조건과 상황이 따로 있다. 그런데도 오늘날 리더들은 창의적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가르려고 하는 생각에 지나치게 심취해 있는 듯하다. 그 결과 기업들을 비롯한 꽤 많은 조직에서 바로 직전에 성공적이었던 개인이나 조직을 그다음 혁신에 투입한다. 지난번에 이 일을 잘했으니 이번에도 비슷한 일이 주어지면 잘하겠지라는 단순한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직전에 경험한 것이 새로운 생각을 얼마나 강하게 속박하는가를 보여주는 연구는 의외로 매우 많다. 예를 들어 기억상실증 환자는 자신이 조금 전에 ‘ANALOGY’라는 단어를 보았다는 사실을 몇 분만 지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데 좀 더 시간이 흐른 후에 ‘A( )( )L( )GY’를 준 뒤 빈칸을 채워 단어 만들기를 시키면 이전에 봤던 (하지만 기억도 못하는) ANALOGY를 떠올리면서 더 쉽게 답을 완성한다. 거의 정상인 수준으로 말이다. 이렇게 직전에 경험한 것은 의식적으로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매우 강한 힘을 이후의 모든 일에 발휘한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늘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얼마든지 방해가 될 수도 있다. ‘ANALOGY’를 본 후 몇 분이 지나고 난 뒤 ‘A( )L( )( )GY’를 주고 빈칸을 채워 단어를 만들라고 한다. 사람들은 이전에 어떤 단어도 보지 않고 바로 이 과제를 시작한 사람들보다 이를 훨씬 더 어려워한다. 답은 ‘ALLERGY’다. 하지만 이전에 본 ‘ANALOGY’에 끼워 맞춰 보려는 시도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기존에 없던 새로운 생명체나 장난감을 그려 보라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의 결과가 일어난다. 다른 사람이 그린 예를 세 가지 정도 보여주고 이 일을 시키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본 다른 사람들의 그림으로부터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차라리 안 보고 시작한 것만 못하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본 예와 최대한 다르게 아이디어를 생성하도록 요구했을 때에도 이런 현상은 계속해서 일어났다.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기 직전에 보거나 들은 것이 지금 이 일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따라서 혁신을 만들어낸 직후의 한 사람이나 조직이 다른 혁신에 오히려 가장 부적절한 사람들일 수도 있을 가능성은 있다. 직전 경험이 가장 많기 때문인데 다음 혁신은 직전 혁신을 다시 한번 바꾸자는 것 아니겠는가. 
 
많은 리더들이 창의적인 사람을 원한다.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같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리더가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상황과 조건을 만들어주고 배치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그래서 필자는 창의적인 인재를 뽑자는 말은 거창하게 하면서 우리 자신을 좀 더 창의적으로 만들자는 노력은 소홀히 하는 조직들을 볼 때마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런 조직들 대부분이 현재는 쇠락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2015.1.23 매일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