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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인칼럼

[칼럼] 만나는 게 어때서

NEW [칼럼] 만나는 게 어때서

  • 이솔
  • 2015-01-19
  • 21632
출판사가 ‘저자와의 만남’을 제안하는데 어째야 할지 모르겠다며 후배가 자문을 한다. 그는 첫 번째 책이 나온 후 설렘의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내가 물었다. “너 자랑하는 거지?” 저자와의 만남 자리를 아무나 제의받진 않기 때문이다. “너 책을 왜 냈어? 설마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 목적으로 쓴 건 아니지?” 그가 웃는다.
 
저자와의 만남은 출판사가 매상을 올릴 요량으로 붙인 제목이다. 엄밀하게는 독자와의 만남이다. 저자가 독자와의 만남을 피할 이유가 뭐 있나? 기자와의 만남과는 사뭇 다른 자리다. 기자회견장엔 아무나 들어갈 수도 없다. 손 든다고 질문을 다 받아주지도 않는다. 각본이 있느니 없느니 뒷말도 무성하다. 대통령이 기자들과 만난 후엔 심지어 지지율도 바뀐다.
 
안심해라. 독자는 기자가 아니다. 단,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 약간의 준비는 해라. 우선 책 팔아보려고 애쓴다는 오해(?)는 각오해라. (돈 좀 밝히나?) “책엔 온갖 좋은 말 다 써놓았는데 정작 들어보니 별로더라.” “글은 유려한데 표정과 태도가 어색하더라.” “글재주랑 말솜씨는 별개더라.” “사진으로 볼 땐 멋있었는데 눈앞에서 보니 좀 아니더라.” (심하게는) “예쁜 여자한테는 나보다 사인을 더 성의 있게 해주는 것 같더라.”
 
결국 저자와 독자가 거는 기대는 한 글자 차이다. 만나보니 별로더라 vs 만나보니 별(星)이더라. 하기야 별은 멀리 있으니 별이다. 돈이나 미모가 아니라 어둠을 밝히니 별이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지 않고 제 자리를 묵묵히 지키니 별이다. 그러니 아무나 별이 될 순 없다.
 
저자와의 만남엔 단골손님도 있고 단골질문도 있다. 사례 하나. 젊은 여성이 손을 들고 질문한다. 본인은 어디 비서실에 근무한다고 밝혔다. “‘양서(良書)는 네모다’라고 할 때 선생님은 네모 속을 뭐로 채우실지 궁금합니다.” TV를 많이 본 모양이다. 예능 자막에 네모가 많이 등장하던 시기였다. 순발력이 요구되는 순간이다. “양서는 비서다. 저는 비서라고 쓰고 싶은데요.” 장내가 조용해진다. “비서는 중요한 걸 ‘리마인드’시켜주잖아요. 책을 읽고(read) 저자의 마인드(mind)를 살피고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는(remind) 게 독서의 효용이죠. 좋은 책은 제가 지금 잘 살고 있는지, 제대로 가고 있는지 늘 상기, 환기시켜주거든요.” 재치문답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비서가 환하게 웃는 모습이 멀리서도 또렷했다.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2015.1.19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