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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인칼럼

[칼럼] 빛바랜 일기장과 생활 기록

NEW [칼럼] 빛바랜 일기장과 생활 기록

  • 이솔
  • 2015-01-13
  • 22056
“신축년 1월1일이 되었다. 나는 쓰라린 경험과 역사를 가진 경자년을 더듬어 가면서 4294년은 좀 더 계획있는 생활을 하여 뜻있는 해가 되고, 올해의 주요 목표는 고교에 합격하는 것이다. 학교에 가서 신년축하식을 했는데, 교장선생님이 우리 민족의 숙원인 남북통일을 하는 것이 제일 첫 과제이라고 했다… 나는 올해는 고등학교 시험도 있고 여러 가지 계획이 있음으로 꿈 많고 공상 많고 경험 많은 신축년이 되기를 바란다”
 
위의 내용은 필자가 중학교 3학년인 1961년(단기 4294년) 1월1월에 쓴 일기의 한 부분이다. 중학교 3학년인 1961년부터 일기를 써왔으니, 54년째 일기를 쓰고 있는 셈이다. 결코 짧지 않은 기간 일기를 쓴 것을 생각하면 한편으로 대견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반면 그 많은 기간 과연 내가 일기를 쓰면서 매일의 생활을 얼마나 성찰하면서 인생을 보람 있고 부끄럽지 않게 살았는지 새삼 반추하게 된다.
 
필자가 일기를 쓰게 된 경위는 중학교 시절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이하윤 (異河潤·1974년 작고) 교수의 수필 ‘메모광(狂)’을 읽고 난 후부터로 기억된다. 이하윤 교수는 그의 글에서 “어느 때부터인지 나는 메모에 집착하기 시작하여, 오늘에 와서는 잠시라도 이 메모를 버리고는 살 수 없는, 실로 한 메모광이 되고 말았다… 요컨대, 내 메모는 내 물심양면이 전진하는 발자취며, 소멸해 가는 전 생애의 설계도(設計圖)이다… 내 메모는 나를 위주로 한 보잘 것 없는 인생 생활의 축도(縮圖)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일기와 메모는 다소 다를 수 있다. 메모는 매일의 생활에서 일어나는 일을 잊지 않기 위해서 또는 남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글로 간단하게 요점만 적은 것이라고 한다면, 일기는 매일 매일의 활동과 생각을 규칙적으로 기록하는 것으로 자서전적 글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기든 메모든 자신의 매일의 생활과 관련된 내용을 기록한다는 면에서 공통점이 있으며, 이를 통하여 자신의 생활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은 일기와 메모가 가지고 있는 귀중한 가치일 것이다.
 
1960년대는 중·고등학생들이 일기를 쓰는 것은 상당히 유행하였던 학생생활 풍속도의 하나였다. 당시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었던 ‘학원’잡지를 발행하던 학원사 등에서 만든 자유일기(自由日記), 실용일기(實用日記)란 이름 하에 제작된 일기장은 크리스마스와 신년 선물의 하나로 인기가 있었으며, 필자의 일기장도 당시 친지로부터 선물 받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선생님들도 학생들에게 일기를 쓰는 것을 강력하게 권유하였으며, 많은 학생들이 이에 동참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형식적으로 짧게는 1-2개월, 길게는 1-2년 정도 쓰다가 고등학교, 또는 대학에 진학하면 그만두었다. 그러나 필자는 이하윤 교수의 수필에 많은 영향을 받았는지 학창시절은 물론 중동부전선에서의 ROTC출신 소대장 시절, 미국 유학 시절, 그리고 교수가 된 이후도 계속하여 일기를 씀으로서 자연스럽게 나의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지금도 과거에 있었던 일 중에서 잘 기억나지 않는 것이 있으면 일기장에서 찾아보곤 한다. 특히 중·고등 시절 방학 때 당시 유행하였던 친구들과의 무전여행, 전방 GOP에서 병사들과의 생일 파티, 유학시절의 에피소드, 교수가 되어 첫 강의를 할 때의 느낌 등이 적힌 일기장을 보면 새삼 과거가 회상되며, 때론 절로 웃음이 나기도 한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로 이뤄진다는 토인비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일기는 중요한 역사적 기록이 될 수 있다. 특히 일기는 나의 망각증을 보완해 줌은 물론 매일 매일의 생활을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있어 더욱 애착이 가기에 오늘도 오래된 만년필로 일기를 쓰고 있다.


김영래 아주대 명예교수
[2015.1.13 경기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