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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인칼럼

[칼럼] 콩씨네 자녀교육

NEW [칼럼] 콩씨네 자녀교육

  • 이솔
  • 2014-12-22
  • 22020
A방송사 기자가 B방송사에 출연한다? 실제로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뉴스 화면은 어느 방송사나 비슷비슷하다. 문제의 인물이 ‘출현’(‘출연’과는 다르다)하면 기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든다. 그러다 보니 인물 반경 1m에 근접한 기자들은 소속 방송사와 무관하게 여기저기 채널에 겹치기 출연을 하게 되는 것이다. 누가 열심히 일하는지 데스크는 쉽게 체크가 가능하다. 센스 있는 기자들은 카메라의 각도를 의식하며 그 와중에도 표정 관리를 한다.
 
기자라는 직업의 운명은 참 얄궂다(야릇하고 짓궂다). ‘땅콩회항 사건’의 장본인이 검찰에 출두하면서 눈물을 보이자 ‘왜 우느냐’고 연거푸 물을 때 알아봤다. 반성의 눈물인지 억울함의 눈물인지 굳이 본인의 입을 통해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반성한다면 용서해 줄 것이고 억울하다면 이해해 줄 것인가. 그러지 않을 거면서도 묻는 게 사명(숙명)이다 보니 오늘도 기자들은 집요하게 질문을 던진다. 
 
“카메라 앞에 선다는 건 설레는 일이죠.” 이건 신인 배우의 인터뷰에서 나옴 직한 말이다. 예술을 추구하는 카메라에 얼굴을 내미는데 어찌 설렘이 없겠는가. 하지만 진실을 추궁하는 카메라 앞에서라면 사정(표정)은 달라진다. 일단 고개를 숙이고 말은 최소한도로 아끼는 것이 여러모로 낫다. 기억력은 최소화하고 연기력은 최적화해야 한다. 아마도 반복적인 뉴스 화면을 통해 익힌 학습효과일 것이다. 
 
검사나 판사가 아닌 교사의 눈으로 보면 지나간 것들이 시야에 잡힌다. 키운 사람들의 불찰(조심해서 잘 살피지 아니한 탓으로 생긴 잘못)이 못내 아쉬워 보인다. 식물이 잘 자라려면 농부의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심기만 하고 내버려 두면 발육이 잘되겠는가. 모내기만 하고 김매기를 게을리하면 벼가 잘 자랄 수 없다. 그때그때 잡초(오만과 편견)를 뽑아 줘야 한다. 자식농사·제자농사라고 다르겠는가. 타이밍을 놓치면 농사를 망친다.
 
이참에 정채봉 시인의 짧은 시를 외워 버리자. “광야로 내보낸 자식은 콩나무가 되었고/ 온실로 들여보낸 자식은 콩나물이 되었고”(‘콩씨네 자녀교육’ 전문) 콩나물도 일상에 필요하지만 콩나무가 일생에 더 중요하다. 아이에게 많은 걸 알려 줄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걸 가르쳐 줘야 한다. 그래야 건강한 나무로 자란다. 콩 심은 데 콩 나는 건 맞지만 좋은 콩을 키우려면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 뉴스는 괜히 보는가. 교육의 골든타임을 놓치면 콩가루 집안 되는 건 시간 문제다.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2014.12.22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