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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인칼럼

[칼럼]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말

NEW [칼럼]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말

  • 이솔
  • 2014-12-01
  • 19770
어제는 11월의 마지막 날이었는데 오늘은 12월의 첫날이다. 처음과 마지막이 붙어 있다는 게 참 좋다. 올해의 마지막 날과 새해의 첫날도 사이 좋게 붙어 있다.
 
얼마 전 초등학교 선생님들을 만나러 가는 길. 비는 내리고 차는 막히는데 라디오에서 누나의 목소리가 들린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참 한결같다. 누나가 누구냐고? 양희은씨다. PD라는 직업의 좋은 점은 방송에 나오는 사람들을 형, 누나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형님, 누님은 왠지 정이 덜 간다. 처음에도 누나였고 지금도 누나다.
 
누나가 청취자에게 묻는다. “실례지만 몇 학년이세요?” “4학년 7반이에요.”(반은 안 물었는데….) 47세라는 얘기다. 언제부턴가 나이를 학년에 빗대어 말하는 게 유행이다. 30대 이하가 그런 식으로 나이를 밝히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인생학교는 4학년부터 입학시키는 모양이다.
 
운동장엔 떨어진 은행잎들이 옐로 카펫처럼 깔려 있다. 영화제에 초대받은 느낌으로 사뿐히 그 위를 걷는다. 불현듯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그림이 떠오른다. 칠판을 기준으로 위에는 급훈이 있었고 옆에는 시간표가 붙어 있었다. 6년 동안 가장 많이 본 글자가 ‘국산사자’였다. 한국에서 태어난 사자? 아니다. ‘국어·산수·사생(사회생활)·자연’을 줄인 말이다. 노래 하나가 뚝딱 만들어진다. “국어시간에 배웠지. 주제를 파악해라. 산수시간에 배웠지. 분수를 지켜라. 사생시간에 배웠지. 사이 좋게 지내라. 자연시간에 배웠지. 자연에 대들지 마라.”
 
교실 앞에 선생님이 나와 계신다. “저 약속 지켰죠?” 올해 가기 전에 선생님들 찾아뵙고 대화 나누겠다고 언약한 게 봄의 일이다. “시간도 잘 지키셨어요.” 4학년으로 보이는 선생님이 반색을 하며 손을 잡아준다. 나를 과대평가해주는 분이다. 기쁨도 주고 부담도 준다.
 
간단한 퀴즈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가 누나라고 부르는 양희은씨가 얼마 전에 새 노래를 발표했거든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말’이라는 노래인데 그 ‘아름다운 말’이 혹시 뭔지 아세요?” 사랑도 나오고 희망도 나왔지만 정답은 아니다. 목을 가다듬고 나는 12월의 노래를 시작한다. 
 
“계절이 바뀌고 사람도 바뀌고/ 내 마음도 바뀔까 두려워/ 어린 아이처럼 울고 싶을 때/ 생각나는 이름 있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말/ 그대” 4, 5학년 혼합교실의 ‘그대’들이 환하게 웃는다.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중앙일보 2014.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