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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인칼럼

[칼럼] 선택한 것과 포기한 것의 차이

NEW [칼럼] 선택한 것과 포기한 것의 차이

  • 이솔
  • 2014-11-07
  • 19227
저명한 심리학자인 댄 길버트 하버드대 교수가 자주 이야기하는 실험 하나가 있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대학 졸업 전에 추억이 될 만한 사진을 캠퍼스 내에서 찍으라고 한다. 사진을 찍어 온 학생들에게 각자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 2장을 고르게 했다. 그리곤 이렇게 얘기한다. “자, 그중 1장은 과제로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포기해야 합니다.” 당연히 학생들은 자신이 더 좋아하는 사진 1장을 남기고 다른 1장을 제출한다. 
 
학생들은 이제 두 그룹으로 나뉜다. A그룹 학생들은 이런 말을 듣는다. “나흘간의 여유를 드립니다. 선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B그룹 학생들은 “지금 당장 제출할 1장의 사진을 선택하세요. 지금 선택하면 나중에 바꿀 수 없습니다.” 
 
질문의 종류와 상관없이 4일은 지났다. 그리고 두 그룹의 학생들에게 자신이 갖기로 선택한 사진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물었다. 즉 선호도를 물어본 것이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B그룹의 학생들이 자신이 선택한 사진을 훨씬 더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이 더 자신의 것을 좋아했다는 것이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그다음 실험이다. 위의 실험에 참가하지 않은 다른 새로운 학생들에게 물었다. 이 학생들 역시 마찬가지로 사진을 찍었고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 2장을 골랐으며, 자신이 가질 사진과 제출할(그래서 다시는 볼 수 없는) 사진을 가려내라고 지시받았다. 
 
그런데 이 학생들에게는 선택권이 있었다. 4일간의 여유를 가지는 A그룹에 속할지, 아니면 당장의 선택을 바꿀 수 없는 B그룹에 속할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3분의 2의 학생들이 선택을 바꿀 수 있는 4일간의 말미를 원했다. 
 
참 재미있는 아이러니다. 실험 1에서는 선택을 바꿀 수 없는 B그룹의 학생들이 더 자신의 사진을 좋아했다. 그런데 실험 2의 결과는 사람들이 자신의 사진을 더 싫어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상황으로 자신들을 몰아간다는 것이다. 아마도 “잘 선택한 걸까? 아니면 어떻게 하지? 포기한 것이 더 좋은 것 아니었을까?” 등과 같은 생각이 사람들로 하여금 현재 자신의 곁에 있는 것을 덜 좋아하게 만든 것이 아니겠는가. 
 
실제로 우리는 어떤 것을 완벽하게 포기하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여전히 기회나 여지가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현재 자신의 모습에 더 만족스러워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단순히 자기합리화의 결과라고만 볼 수는 없다. 
 
그보다는 자본주의 창시자며, 국부론 저자인 애덤 스미스가 말했듯이 인간이 불행해지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선택한 것과 포기한 것 간의 차이를 과대평가’하기 때문이다. 즉 ‘비교’라는 심리적인 과정을 잘못 사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현재를 살아가는 수많은 리더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까. 선택이라는 결정을 일단 한 이후에는 폴로어들의 생각의 양을 줄여줄 수 있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준다.
 
필자가 늘 강조하듯 선택과 결정은 단순해 보이는 정신 과정이지만 막노동과 같은 육체 활동에 버금가는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그런데도 결정 이후에도 시간과 노력을 선택한 것과 포기한 것 사이의‘비교’에 쓰게 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사람을 괴롭게 만드는 일이다. 그보다는 그 일을 제3의 다른 사람들에게 시켜야 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할 것이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매일경제신문 2014.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