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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인칼럼

[칼럼] 몸속의 화석

NEW [칼럼] 몸속의 화석

  • 이솔
  • 2014-05-12
  • 21379
해부학은 사람 몸의 생김새를 가르치는 과목이다. 그런데 어떻게 생겼는지만 가르치면 재미없고, 왜 그렇게 생겼는지도 가르쳐야 재미있다. 이렇게 가르치는 데 도움 되는 것이 비교해부, 발생, 진화이다. 비교해부는 사람이 짐승과 어떻게 다른지 살피는 것이고, 발생은 사람이 태어나기 전에 엄마 자궁안에서 어떻게 바뀌었는지(발생했는지) 살피는 것이고, 진화는 사람이 먼 조상으로부터 어떻게 바뀌었는지(진화했는지) 살피는 것이다.
 
꼬리뼈를 보기로 들면 다음과 같다. <해부학> 사람은 엉치뼈 밑에 꼬리뼈가 한 개 있고, 이것을 자기 몸에서 만질 수 있다. <비교해부> 다른 포유류와 파충류는 꼬리뼈가 여러 개 있고, 이것을 움직일 수 있다. <발생> 사람도 엄마 자궁안에 있을 때 꼬리뼈가 여러 개 있었다. 꼬리가 없어지면서 꼬리뼈가 한 개로 준 것이다. <진화> 사람의 먼 조상은 원숭이처럼 꼬리뼈가 여러 개 있었을 것이다.
 
심장을 또 다른 보기로 들면 다음과 같다. <해부학> 사람의 심장에서 산소가 많은 혈액은 왼심방, 왼심실을 지나고, 이산화탄소가 많은 혈액은 오른심방, 오른심실을 지난다. 이처럼 사람의 심장은 2심방 2심실이라서 두 혈액이 섞이지 않는다. <비교해부> 물고기의 심장은 1심방 1심실이라서 두 혈액이 섞인다. <발생> 사람의 심장은 처음 발생할 때 1심방 1심실이었다가 2심방 2심실로 바뀐다. 바뀌지 않는 선천심장병의 경우, 수술을 해서 2심방 2심실로 바꿔야 한다. <진화> 사람의 먼 조상은 물고기처럼 1심방 1심실이었을 것이다.
 
이제까지의 글을 읽고 눈치챈 사람이 있을 것이다. 비교해부, 발생, 진화는 서로 관계있다는 것을. 비교해부와 진화는 다음처럼 관계있다. ‘사람이 짐승과 어떻게 다른지 살피면, 사람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사람의 먼 조상이 짐승이라는 이야기이다. 이것이 진화론이고, 창조론을 믿는 사람이 거북해하는 것이다.
 
또한 발생과 진화는 다음처럼 관계가 있다. ‘사람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살피면, 사람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진화론이고, 이것에 관한 보기는 다음처럼 많다.
 
첫째, 사람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수정해서) 이룬 단세포로 시작하였다. 따라서 사람의 아주 먼 조상은 단세포생물이었을 것이다. 둘째, 사람은 발생할 때 대뇌가 작았다. 따라서 먼 조상은 머리가 나빴을 것이다. 셋째, 사람은 엄마 자궁안의 양수 속에서 살았다. 따라서 먼 조상은 물고기처럼 물속에서 살았을 것이다. 넷째, 사람은 발생할 때 손과 발에 물갈퀴가 있었다. 따라서 먼 조상은 개구리, 오리처럼 물 위에서 살았을 것이다. 다섯째, 사람은 발생할 때 팔다리가 짧았다. 따라서 먼 조상은 앞뒤 다리가 짧은 개처럼 기어다녔을 것이다. 아기도 팔다리가 짧아서 기어다니는데, 이것을 보면 태어난 다음에 발달하는 것도 진화와 관계있다는 생각이 든다.
 
해부학 실습실에서는 비교해부, 발생과 관계있는 구조를 보게 된다. 이를테면 막창자꼬리가 초식짐승에서는 크고 소화를 돕지만, 사람에서는 작고 소화를 돕지 않는다. 따라서 곪은(염증이 생긴) 막창자꼬리를 막 떼어내도 괜찮으며, 이것을 막창자꼬리절제(충수절제, 맹장수술)라고 부른다. 발생할 때 사람의 머리와 목에는 물고기처럼 아가미가 있었고, 이 아가미의 자취가 귓바퀴, 바깥귀길이다. 발생할 때 사람의 윗입술은 토끼, 고양이처럼 갈라져 있었고, 이것의 자취가 인중이다.
 
‘비교해부, 발생과 관계있는 구조는 사람 몸에 들어 있는 화석이다.’ 해부학 실습실에서 나는 이것을 보여 주며 사람의 먼 조상을 이야기한다. 자연사박물관에서 고생물학 선생이 진짜 화석을 보여 주며 사람의 먼 조상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박물관에서 역사학 선생이 유물을 보여 주며 우리의 조상을 이야기하는 것과도 같지 않은가? 해부학을 비교해부, 발생, 진화와 함께 가르치면, 해부학 실습실의 분위기가 자연사박물관 또는 박물관처럼 바뀐다. 해부학은 재미있는 과목이다.
 
정민석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교수
[한겨레신문 2014. 5.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