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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36년 만의 사과

NEW [칼럼] 36년 만의 사과

  • 이솔
  • 2014-05-12
  • 21593
제목만 보고 일본 총리를 떠올렸다면 내가 사과한다. 많이 동떨어진 얘기다. 우연히 만난 제자가 오래전 스승에게 용서를 구했다는 실화 한 토막이다. 무대는 지난 어버이날 저녁 강남의 장례식장으로 옮겨간다.
 
옷깃을 여민 후 바로 자리를 뜨는 건 좀 그렇다. 사람들 틈에 끼어 앉아 음식도 추억도 나누는 게 예의다. 그날 조문객 중에는 내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돌아가신 분이 나의 학부형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학부형 조문까지 가냐고? 들어보면 수긍이 갈 거다.
 
1978년 국어교사로 부임한 나는 중학교 2학년 5, 6, 7반 국어와 중3 한문을 맡았다. 재일이는 2학년 7반 부반장이었다. 생활기록부에 ‘명랑 착실’이라고 쓸 만한 아이였고 유난히 나를 따랐다. 지금쯤 나의 기억력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독자가 생겼을 수도 있다. 고백하건대 기억이 아니라 인연의 힘이다. 이듬해 나는 고등학교로 옮겼는데 이번엔 재일이의 형인 주일이(오늘의 상주)가 나의 제자가 된 것이다. 지금은 ‘잘나가는’ 치과 의사지만 당시엔 ‘맹랑 엉뚱’한 아이였다. 외모도 동생과 달리 ‘이국적’이었다.
 
어느 날 학교를 방문하신 아버님(어머님이 아닌 점도 특이했다)이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나를 반갑게 맞으셨다. 인사를 나눈 후 떠나시면서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이른바 촌지. 젊은 교사는 난처하고 당혹했다. “우리 아이들 사랑해주시는데 제가 고마움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아마 이렇게 말씀하신 듯하다. 아버님은 총총히 교무실을 빠져나가셨다. (수령 및 반납 여부는 추측에 맡긴다.) 재일이 형제는 그후 36년 동안 나와 연락하는 사이가 됐고 그때마다 나는 부모님 안부를 여쭈었다. 그 아버님이 어버이날 돌아가신 것이다.
 
문상객 중에는 옛날 제자들이 여럿 있었다. 내 옆에 앉은 중년 남자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선생님, 저 키 큰 이영호예요.” 아마 그때 ‘키 작은 이영호’도 있었던 것 같다. “저 그때 선생님 많이 괴롭힌 것 같아요. 사과드립니다.” 솔직히 기억도 안 난다. 뒷줄에 앉은 아이들이 좀 떠든 기억은 물론 남아 있다. 하지만 그게 뭐 어때서? 그때나 지금이나 소신은 변함없다. “애들은 떠들어야 애들이다.”
 
명함을 내미는데 이럴 수가. 직장도 내가 사는 동네 근처다. “야, 세상 좁구나. 가끔 만나서 좀 떠들자.” 옆의 늙은 ‘아이들’이 덩달아 웃는다.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 사이에 장례식장에서 벌어진 아름다운 해후였다.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중앙일보 2014. 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