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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인칼럼

[칼럼]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

NEW [칼럼]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

  • 이솔
  • 2014-04-24
  • 22141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사고 소식을 듣고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여객선이라는데, 망망대해에도 아닌 진도 앞바다라는데 어렵지 않게 구조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얼마 후, 탑승객 전원이 구조되었다는 소식에 “그랬을 거야” 하며 안도했었는데, 그게 오보였다니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보도는 우리의 안전의식, 위기관리 시스템의 바닥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21세기 10대 경제대국 대한민국의 민낯,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사고가 발생하고 난 지 일주일이 지났건만 여전히 여객선에 탑승한 정확한 인원과 명단에도 혼선이 있다. 사고 이틀째까지 정확한 구조인원과 인적사항조차 파악하지 못했고, 심지어 사건이 발생한지 나흘째 나온 보도는 승선자 명단에는 없는 사망자가 나왔다니 할 말이 없다. 또 사고 이후 구조작업이 시작되어 일주일이 지나도록 단 한 명의 생존자도 구조하지 못하는 것은 사고 직후의 불리한 자연환경 탓 때문이었을까? 좀 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구조 활동은 불가능했던 것인가? 구조 활동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예인선이 시급하게 도착해야 하는지 비전문가들은 알 길이 없지만, 분명한 것은 책임 소재와 경비 문제, 실효성 등을 놓고 쉽게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우왕좌왕 한 모습은 구조 활동 전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사기에 충분하다.

구조 활동만 그런 것은 아니다. 세월호 사건 이후 생겨난 대책본부만 몇 개인지 모르겠다면서, 10년이 넘는 기자생활 중에 사고대책본부가 이렇게 많고 불협화음을 내는 경우는 처음이라고 말하는 기자가 있다. 한 대책본부에서는 “선내 진입에 성공했다”고 발표하여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는 국민을 희망에 부풀게 하더니, 조만간 해양 경찰청에서는 이를 부인하여 다시 실종자 가족의 가슴을 까맣게 태웠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SNS 등에 이 사건과 관련된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유포하는 행위를 자제해줄 것과 그로 인해 피해가 발생할 경우 엄벌할 것이라는 엄포로 국민들의 불만과 의혹을 잠재우려고 하고 있다. 국민의 의혹과 불만은, ‘입다물라’고 명령한다고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 구조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정부의 모습과 신뢰할 만한 정부의 발표, 그것이 바로 국민의 불신과 의혹으로부터 퍼져 나오는 괴담성 정보를 잠재울 수 있는 것이다.

사고 이후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세월호의 선장과 승무원들에 대해 “용납할 수 없는 살인과도 같은 행위”를 했다고 비난하고, 자신은 “정부에 3천개가 넘는 위기관리 매뉴얼이 있지만 현장에서 내용을 모르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매뉴얼대로 작동하는지 점검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참사의 책임은 전적으로 선장을 비롯한 부도덕한 승무원과 무능하고 안일한 공무원 때문이라는 뜻이다. 국정 책임자로서의 반성과 책임감은커녕, 모든 것을 아랫것들의 탓으로 돌리는 제왕의 모습을 본다. 무책임한 선장이 승객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사실로부터 박 대통령이 배워야 할 교훈은 자신이 키를 잡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배는 자신의 무책임으로 침몰할 수 있다는 사실, 그래서 대한민국 호에 승선한 국민들을 위협에 빠뜨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지난 정부의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명칭을 변경하자 도대체 그 차이가 뭔가 의아해 하는 국민들에게 (중앙부처의 명칭을 바꾸는 데는 상당한 예산이 소요된다) 국민 안전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현 정부는 국민 행복형 신산업의 첫 번째로 “안전, 재난대비 시스템”을 들었다. 그래서 정말 달라진 것이 무엇인가?

지금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분노와 비난이 아니다. 기본부터 다시 점검하려는 겸허하고 책임감 있는 자세다. 참사가 일어난 근인(近因)에 대해서 비난하고 단죄한다고 문제가 나아지지 않는다. 사고의 원인(遠因)에 대해서 분석하고 거기에 메스를 대지 않으면, 안타깝지만 이번과 같은 참사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출항 조건 심사 과정, 선박 개조의 허가과정에서의 의혹, 거기에 개입되어 있다는 소위 ‘해피아’의 실체, 그리고 승객의 안전보다 회사의 이익을 우선하는 기업의 행태, 이런 것들이야말로 ‘사회의 암 덩어리’ 아닌가?

21년 전 292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해 훼리호 침몰 사건 이후, 우리는 무엇을 배웠는가? 다시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서 배울 것을 배워야 한다. 피어보지도 못한 젊은 수백 명의 영혼을 대가로 지불한 교훈이라기에는 너무 초라하지만 다시는 이런 비극적 참사가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이라고 변해야 한다. 젊은 넋을 위한 우리의 진혼곡은 부끄러운 자화상을 지우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

 

송하석 아주대학교 기초교육대학 교수/철학

[중부일보 2014.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