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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인칼럼

[칼럼]희망마저 침몰할 순 없다

NEW [칼럼]희망마저 침몰할 순 없다

  • 이솔
  • 2014-04-21
  • 22904

2학년 담임을 맡은 새내기 교사와 면담 중이다. “저희 학급에 문제아가 몇 명 있어서 걱정이 돼요.” 궁금해서 묻는다. “누가 그 아이들을 문제아라고 말하던가요.” “1학년 때 담임이 넌지시 알려주던데요.” 의아하다. “그분은 왜 그걸 알렸을까요?” (혹시 교사의 직업윤리를 어긴 건 아닐까.) 처방이 시작된다. “소방관이 불을 안 끄고 우왕좌왕합니다. 불 안 끄고 뭐 하느냐고 물었더니 불길이 너무 세서 도저히 엄두가 안 난다네요.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당신 같으면 저런 불에 뛰어들 수 있겠냐고 되묻습니다.”

그런 소방관이 있을 리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순전히 내가 지어낸 비유다. “소방관이 불을 끄는 직업이라면 교사는 제자들을 바른 길로 이끄는 게 직분입니다. 좋은 선생님은 학생들이 문제 안 일으키도록 감시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사랑과 실력으로 풀어주는 분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어렵다고 지레 겁먹는다면 불 앞에서 떠는 그 소방관과 도대체 뭐가 다른가요.” 젊은 교사의 눈이 반짝인다. “맞습니다. 제가 왜 교직을 택했는지 어느 순간 잊어버렸네요.” 손을 잡아주며 덧붙인다. “내 기준에 벗어났다고 문제아라고 규정하면 교실은 문제아들로 가득 차겠죠. 문제아는 문제를 ‘야기’하는 게 아니라 ‘제기’하는 거라고 간주합시다. 그들은 자신들을 문제아로 모는 교사들을 향해 돌직구 대신 변화구를 던집니다. 그들의 말은 두 가지로 번역하는 게 좋습니다. ‘선생님은 사랑이 부족합니다. 선생님은 실력이 부족합니다.’”

스마트폰 메신저의 문장이 눈물 속에 젖어 있다. “엄마, 내가 말 못할까 봐 보내 놓는다. 사랑해.” 배 안에 갇힌 아이에게 뭐라고 답글을 쓸까. 무릎 꿇고 속죄하자. “어른으로서 살아있다는 게 부끄럽구나.” 그래, 지금은 착한 글쓰기보다 독한 다짐이 필요한 때다.

국가적 재난 앞에서 희망마저 침몰할 순 없다. 중학교 교과서에 잠자고 있는 오래된 말을 흔들어 깨우자. “직업윤리는 크게 소명 의식과 천직 의식, 직분 의식과 봉사 정신, 책임 의식과 전문 의식으로 나눌 수 있다.” 자동차 점검하듯이 정기적으로 직업윤리도 정비하자. 차도 고치고 엉터리 전문가도 솎아내자. 양심도 세월 따라 부식되는 걸까. 사명감 없는 기술, 도덕성 없는 전문성. 내 목숨 소중한 건 알아서 배를 버리고 재빠르게 달아나는 비정한 선장과 항해사가 남아있는 한 아무리 세월이 흐른다 해도 처참한 비극의 행렬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중앙일보 2014.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