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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인칼럼

[칼럼] 정치인의 약속 파기

NEW [칼럼] 정치인의 약속 파기

  • 이솔
  • 2014-03-28
  • 22111
버나드 쇼는 사람들의 거짓말의 역사가 구석기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한 바 있다. 자신의 용맹을 과시하기 위해서 맘모스를 때려 눕혔노라고 거짓말을 하는 구석기 시대의 남자들이 거짓말의 원조라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이처럼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거짓말을 가장 익숙한 사람은 아마 정치인들일 것이다. 강이 없는 곳에도 다리를 놓아주겠다고 약속하는 사람이 바로 정치인이라고 하지 않던가? 지키지 못할 것을 알면서 하는 약속은 거짓말이지만, 약속을 파기하는 것이 항상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과 거짓말을 하는 것은 구별되어야 한다. 거짓말은 속이려는 의도가 있는 행위이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반드시 속이려고 의도한 것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맹자는 ‘대인자 언불필신 행불필과 유의소재(大人者 言不必信 行不必果 惟義所在)’라고 말했을 것이다. 했던 말을 꼭 지키려고 하거나 반드시 행동의 결과를 보려고 하다가 대의(大義)를 그르치는 것보다는 의를 생각하는 것이 대인의 도리라는 것이다. 물론 약속의 파기가 언제나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보다 큰 의를 행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경우 약속을 파기할 수도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안철수 의원의 신당추진 세력과 민주당이 새로운 통합신당을 추진한다고 발표하자 새누리당을 비롯한 보수 논객들이 안철수 의원이 약속을 파기했다고 앞 다투어 비판하고 있다. 안 의원이 주도하는 새 정치추진 세력이 민주당과의 선거 연대는 없고 ‘기득권 담합정치를 깨려면 신당창당 밖에 없다’는 말을 수도 없이 하더니 이를 뒤집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안 의원 측이 그토록 비판하던 선거 승리를 위한 전형적인 야합 이상이 아니며, 안 의원이 말하는 ‘새 정치’라는 것도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안 의원 측이 민주당과의 합당이 아니라, 민주당과 함께 제 3 지역에서 새로운 당을 창당하는 것이라고 말할지라도 그것은 안 의원 측의 원래의 계획과는 다른 것이고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안 의원 측은 약속을 파기했다고 비난받아야 하는가? 문제는 무엇을 위한 약속파기인가이다. 새누리당과 보수논객들은 단순히 선거 승리를 위한 정치공학적 목적 이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것도 부분적으로는 옳은 주장일 것이다. 그러나 안 의원 측의 고뇌는 현 정부의 반민주적이고 권위주의적 행태, 그리고 부도덕을 그냥 방치할 수는 없다는 데 있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지방선거를 비롯한 앞으로의 선거에서 야권이 분열될 경우, 비민주적인 현 정부의 정권 연장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터인데, 그것은 약속의 파기보다 더 큰 잘못이라고 보았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결정을 ‘유의소재’의 결과라고 볼 수는 없는가?
 
일부 논객들은 새누리당이 그런 비판을 할 자격이 있는지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사실 새누리당의 약속파기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새누리당이 파기한 약속은 경제민주화, 기초노령 연금 공약의 파기 등 헤아리기 어렵다. 다시 말하거니와 문제는 약속파기 자체가 아니라 무엇을 위한 약속파기인가이다. 도대체 어떤 대의를 위해서 기초선거 정당공천이 필요하고, 어떤 대의를 위해서 경제민주화가 뒷전으로 물러나야 하는가? 이번 안 의원 측의 약속파기의 동기는 새누리당이 기초선거 정당 공천 배제 공약을 저버리는 데서 시작되었다. 아무리 ‘뭐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랄 수 있지만 자신 때문에 겨가 묻었을 때 그것을 나무라는 것은 정도(正道)가 아니다.
 
새누리당과 보수논객들이 이번 신당 창당을 정치공학적 야합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진정 약속을 지키는 것이 새 정치의 출발이고 그것이 대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인가? 선거를 앞두고 야권의 결속에 대한 위기감의 표출이라는 것을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이번 안 의원 측의 약속 불이행이 대의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위한 것인지는 이제 유권자가 결정할 일이다.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 나서서 소모적인 논쟁을 되풀이 하는 일을 이제 거두기 바란다.
 
 
송하석 아주대학교 기초교육대학 교수/철학
 
[중부일보 2014.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