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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내란음모' 판결, 조선시대 역적죄 처형과 뭐가 다른가

NEW [칼럼] '내란음모' 판결, 조선시대 역적죄 처형과 뭐가 다른가

  • 이솔
  • 2014-02-21
  • 22859

지난 17일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사건 1심판결에서 수원지법 형사12부(김정운 부장판사)는 이석기 피고인에게 징역 12년과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했다. 이상호·조양원·김홍열 피고인은 징역 7년과 자격정지 7년, 홍순석 피고인은 징역 6년과 자격정지 6년, 한동근 피고인은 징역 4년과 자격정지 4년을 각각 선고했다.

형법상 내란의 죄는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자를 처벌한다. 형법 제91조는 국헌문란에 대하여 헌법 또는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것과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으로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헌법은 헌법개정과정에서 민주적․절차적 정당성을 요청하고 있고, 각 국가기관에 일정한 권한과 책무를 과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형법은 헌법의 명에 따라 국가와 헌법의 안전을 도모하는 법이다. 형법은 내란의 죄를 처벌함으로써 헌법을 방어하는 호위무사와 같은 구실을 하는 것이다.

헌법을 의인화하자면, 매우 자존심과 자신감이 강한 법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헌법 제1조 제2항). 헌법은 곧 국민의 법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대한국민은”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헌법 전문)하고 있음을 천명하였다. 아울러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있고(헌법 제10조 제1문), 사상․양심의 자유(헌법 19조)와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헌법 제21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권력에 각인시키고 있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개인들이 모여 국민이 된다. 헌법은 국민이고 국가이며 주권자이다. 어느 누구도 국민으로부터 국가로부터 주권자로부터 배제될 수 없다.

그런데 재판부는 헌법을 허수아비로 만들었다. 이들이 ‘내란 모의를 통해 대한민국의 존립과 자유민주주의 질서에 실질적이고 명백한 위험을 초래하였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설령 내란을 모의했다고 해도 내란음모죄로 처벌하려면 내란의 폭동행위를 일으킬 구체적 의사와 계획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녹취록 말고 아무것도 없었다. 총, 폭파, 타격이란 말이 곧 행동으로 의제가 되었다. 그렇다면 내란음모는 전국에 차고 넘친다. 불만과 격한 말은 곧 체제를 비판하는 것이니 그 사람들의 연결고리를 만들면 내란음모조직을 만들어내어 처벌하는 일은 일도 아니다. 녹음기만 들고 뛰어다니면 된다. 내란음모 파파라치, 국가보안법 파파라치가 황금알을 낳을 판이다. 말로는 무슨 짓을 못하겠는가. 헌법을 허약한 존재로 내세우고 헌법을 참칭하여 권력의 칼을 휘두른 꼴이다.

두 번째로 재판부의 판단은 논리 모순과 비약의 연속이다. 과도하게 피고인들의 판단에 의존하고 있다. ‘전쟁 상황’, 즉 ‘혁명의 결정적 시기’가 임박할 수 있는가, 130여 명의 사람이 ‘지체 없이 각 권역에서 국가기간시설 파괴 등 전국 다발적인 폭동’을 할 수 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RO’ 또한 몇몇 사람들의 상호 호칭만으로 혁명조직이 되었다. ‘지휘체계를 갖춘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하지 않고는 납득하기 어려운 표현들’만 있었다. 내란을 일으킬 만한 실체가 있는지가 입증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재판부의 논리는 피고인들의 예정, 정부의 기능 장애, 사회 혼란, 북한에 유리한 국면, 전쟁수행에 치명적 결과 등으로 이어진다. 이는 대한민국 군대와 경찰, 국가정보원 등에 대한 과잉불신이다. 각 기관은 명예훼손소송이라고 걸어야 하지 않을까? 실제로 폭력적인 행위를 하거나 임박했을 때 공익건조물파괴죄나 폭발물사용 등의 죄로 처벌하면 될 일이다. 폭력적인 행위로 생길 수 있는 인적․물적 피해를 고려하여 범죄를 예방하면 좋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처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사건 회합 당시가 전쟁위기 국면이었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전시에도 인권을 보장하라는 헌법의 명령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그렇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재판부의 판단은 그저 상상의 연쇄반응이 일으킨 과대불안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제보자의 진술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진술의 일관성과 구체성, 진술태도의 신빙성은 내란음모의 입증 요소 중 하나일 수 있어도 전부는 아니다. 한 사람의 말이라도 귀담아들어야 하는 것은 법원의 좋은 덕목이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전적으로 외면한 것에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제보자의 말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물질적 증거가 없다는 점이다. 조선 시대나 그 이전의 역적죄 처단과 다를 바 없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인간 존엄, 사상․양심, 표현․신체의 자유를 보장하여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해서만 처벌할 수 있다는 규정(헌법 제12조)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결국 이번 내란음모사건에서 형법은 헌법을 보호하기는커녕 헌법을 볼모 삼아 정치권력의 수단이 되었다. 불행하게도 형법은 국가보안법에 짓눌리다가 그만 그 앞잡이가 되었다. 법원은 대한민국이 ‘헌법보다 국가보안법의 국가’임을 선언하였다. 헌법은 한 차례 회합에서의 몇 마디 말만으로도 겁을 먹은 허수아비가 되었다. 법원은 보편적인 인권과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를 담은 국민의 약속으로서의 헌법을 저버렸다. 헌법은 국민을 지켜주지도 못하는, 그저 쓸모없는 허언(虛言)으로 전락했다.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사람조차도 ‘헌법의 밖’으로 내치지 않는, 그 헌법이 아니었다. 대한국민의 헌법을 되살리는 일, 주권자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신민(臣民)으로 전락할 것인가의 문제가 되었다.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민중의 소리 2014.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