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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인칼럼

레몬과 피치

NEW 레몬과 피치

  • 이홍재
  • 2008-11-14
  • 28321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시장의 효율적 자원배분 기능에 대한 신뢰에서 출발한다. 만약 모든 경제주체가 재화나 서비스의 가치를 정확히 인지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대안(alternatives)을 정확하게 식별할 수 있으며 선택에 있어 아무런 구속을 받지 않는다면 자유거래는 언제나 거래쌍방의 이익을 증진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거래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얼마나 단순명쾌한 논리인가?

실제로 시장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다양한 형태의 “시장실패(market failures)”가 발생하고 있는데,  정보의 부족 또는 비대칭성(asymmetry)이 어떠한 경로로 시장실패를 결과하는지, 그에 대한 해법은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다음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애이컬로프(Akerlof) 교수의 모형을 쉽게 풀어쓴 것이다. 중고차 시장에는 쓸만한 차가 없다. 왜 그럴까? 중고차 시장에 두가지 유형의 차가 있다고 하자. 레몬은 관리부실로 성능이 열악한 중고차이고 피치(복숭아)는 성능이 매우 좋은 중고차이다. 중고차 주인은 자기 차의 성능을 잘 알고 있지만 그 정보는 소비자에게는 불확실한 정보이다 (이런 의미에서 정보의 비대칭성이 있다고 한다). 레몬 중고차의 판매자는 최소 1000만원을 받으려 하고 소비자는 만약 레몬이라면 최대 1200만원까지 지불하려 한다. 한편 피치 중고차의 판매자는 최소 1500만원을 받으려 하고 소비자는 만약 피치라면 최대 1800만원까지 지불하려 한다.
 

1) 중고차의 성능 정보가 알려진 경우

이 경우는 피치와 레몬이 서로 다른 마켓에서 거래되고, 피치가격은 1500~1800만원, 레몬가격은 1000~1200만원에 형성될 것이다. 성능을 알고 거래되므로 당연히 불만도 적다.

2) 중고차의 성능정보가 알려지지 않는 경우

소비자는 중고차가 레몬인지 피치인지 식별 불가능하다고 하자. 대신 전체 시장에서 레몬차의 비율이 p, 피치의 비율은 1-p 라는 정보만 알려져 있다고 하자. 이 경우, 소비자는 중고차에 대해 최대 얼마만큼을 지불할 것인가? 어떤 중고차가 레몬일 확률이 p이므로, 최대지불가격은 p*1200 + (1-p)*1800 이 된다 (왜그런지 생각해보라).

 당연히 피치가 거래되기 위해서는 소지자의 지불의향가격인 p*1200 + (1-p)*1800 이 피치 판매자의 유보가격인 1500보다 높아야 한다. 만약 레몬(불량품)의 비율이 매우 높다면 p*1200 + (1-p)*1800 은 1500 이하로 떨어지므로 피치(우량품) 판매자는 거래를 포기하고 매물을 거두어들일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중고차 시장에는 레몬만 남게 된다!! (유레카)

 이 이야기의 요지는 우리사회에 불량품(또는 사람)과 우량품이 섞여있고 수요자가 그 정보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사회적으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끔직한 재앙이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부정적 외부성이라고 볼 수 있다.

 좀 더 현실적인 예로 기업의 인력채용에 있어서도, 기업이 응시자의 품질을 효과적으로 식별하지 못한다면 임금은 평균적인 노동력의 생산성으로 결정될 것이다. 따라서 우수한 인력은 실제 생산성보다 낮은 임금을 받아들이던지 취업을 포기하던지 하는 선택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치” 노동자는 자신의 우수한 품질을 드러내는 신호를 보내려고 할 것이다. 이것을 전문적으로는 “시그널링(signaling)”이라 부른다. 만약 시그널링이 잘되어 레몬과 피치를 구분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시장은 이분화 되고 자신의 능력에 걸맞은 보수를 받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신호를 보낼까? 요즘 대학가에 넘치는 자격증이나 토익성적, 학력 등이 그 예이다. 혹자는 교육이 인간의 생산성을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시그널링 역할만 한다고 비판한다. 그나마 시그널링이라도 제대로 되면 다행일 것이다. 문제는 제대로 된 시그널은 “레몬” 노동자에 의해 쉽게 모방되지 않아야 하는데, 과연 그럴까? 만약 자격증, 토익, 대학 이런 것들이 노동자의 능력(생산성)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집안의 권세와 재력 또는 운에 의해 결정된다면 교육은 레몬과 피치를 구분하는 제대로 된 시그널링도 되지 못할뿐더러 부의 세습만 조장하는 도구로 전락해버릴 것이다. 어제가 대학수능시험일인데, 우리 교육의 현실과 시장의 불완전성을 다시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