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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인칼럼

카지노 경제의 종말 (이홍재, 경영대학)

NEW 카지노 경제의 종말 (이홍재, 경영대학)

  • 이홍재
  • 2008-10-02
  • 29082
전통적으로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잠 덜자고 뼈저리게 노동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정주영회장을 생각해보자). 물론 대부분 여전히 그렇다. 하지만 노동이 몸으로 때우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굴리는 노동으로 많이 바뀌고 있다. 이걸 지식경제 뭐 이렇게 부르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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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이야기부터 시작해보련다. 카지노 게임 중 그래도 제일 확률이 좋은 것은 블랙잭 21이다. 룰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딜러와 경기자의 승률이 52대 48 정도 된단다 (물론 딜러가 유리하다, 그렇지 않으면 딜러는 뭐 먹고 살까?). 100명이 게임하면 52명은 잃고 48명은 딴다, 뭐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게임을 오래할수록 이 정도 승률이 절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100명중 따서 돌아가는 사람은 불과 5명도 안된다. 그러기에 정선카지노는 국내기업 중 최고의 영업이익률을 자랑한다. 왜 그럴까? 인간의 탐욕이 냉정하게 털고 일어날 지혜를 가려버리기 때문이다. 20불을 들고 시작해서 100불을 따면 고맙다 하고 냉정하게 접어야 한다. 작은 칩은 딜러에게 보너스로 안기면서 체면도 차리고 …

블랙잭이나 슬롯은 단순한 도박게임이다. 다른 사람의 게임과 관계없이 본인의 성과 그 자체로 따고 잃는 금액이 정해진다. 하지만 복합적인 게임도 있다. 마카오나 시드니의 도박장에 가면 블랙잭 테이블 뒤에서 경기자에게 베팅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관상에 능하면 직접 게임하는 것보다 이게 더 승률이 높을수 있다. 자기가 건 플레이어가 이기면 그만큼 따는 단순한 복합상품도 있고, 모든 플레이어가 동시에 잃으면 건 돈의 3배를 주거나 더 지면 건 돈의 3배를 벌금으로 내는 복잡한 복합상품도 있다. 금융용어로 이러한 복합상품을 파생상품이라 부르는데 깊이 들어가면 나도 잘 모르므로 그냥 넘어가자. 요즘 문제가 되는 KIKO도 이러한 종류이다.

이러한 복합머니게임에 이기려면 경우의 수와 확률계산에 매우 능해야 하고 그래서 요즘은 로케트 공학자나 수학, 물리학자들이 월스트리트에 많이 진출해서 이코노미스트로 명함을 걸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일반인들이 이 사람들(흔히 금융공학자라고 한다)하고 붙어서 이길 수 있으리라고 절대 생각지 않는 게 좋다 (잠시는 가능해도 오래는 절대 안 된다. 이게 통계학에서 말하는 대수의 법칙과 중심극한정리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파생상품이 매우 복잡한 구조로 서로 얽혀있어 한쪽의 사고가 모든 시장으로 급속 확산된다는 점이다. 사실 주식시장이나 외환시장 들도 일종의 전세계적인 영업망을 가진 카지노라고 보면 된다. 가격의 움직임을 잘 맞추면 따고 그렇지 못하면 쪽박을 찬다. 자본주의 사회는 대부분 이렇다. 주식을 사는 것이 로또를 사는 것과 원리상 별로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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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국제금융위기의 본질은 무엇일까? 금융 카지노게임에서 잃은 사람이 너무 많고 딴사람이 매우 적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투자자가 엉뚱한 방향을 예측하고 (애널리스트, 펀드매니저 들의 책임이 크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예측을 180도 수정하고 전혀 미안해하지 않는다. 이 사람들을 절대 신뢰하지 마라.) 극소수 타짜 들만이 그 반대로 예측한 관계로 판돈(자금)이 한쪽으로 쏠려 더 이상의 게임이 불가능해진 것으로 이해하면 쉽다 (미진하지만 나의 고유한 해석이다).

돈을 잃은 쪽에는 은행도 있고 국가도 있다. 누가 땄는지는 드러나지 않지만 외계인일수도 있다. 드디어 지구정복의 시나리오가 시작된 것인가? 어쨌거나 시장이 혼란스럽다. 정직한 노동의 대가로 돈을 벌지 않고 잔머리로 타인의 노동가치를 앗아가려는 미국식 카지노 자본주의의 몰락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다. 우리나라는 예외일까? 매한가지다. 국민도 기업도 정부도 매캐한 카지노 객장에서 최소한 본전이라도 건지려고 충혈된 눈, 갈라진 목소리의 절규만이 가득하다.

과연 뭐가 잘못된 것일까? 해법은 무엇인가? 파산은행과 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은 사실상 국가가 인민의 세금으로 판돈을 다시 빌려주는 것임에 다름없고 그 판돈도 조만간 고갈된다. 답답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선배 경제학자인 아담 스미스는, 칼 맑스는 우리의 현실을 어떻게 읽어내고 있을까? 해법을 잘 모를 때 나는 이런 표현을 사용한다,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