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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인칼럼

세제개편안을 보고

NEW 세제개편안을 보고

  • 구자영
  • 2008-09-02
  • 31725
현진권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 이명박 정부의 세제개편안이 발표됐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경제 재도약이라는 정책방향을 제시하고 소득세ㆍ법인세 등 많은 세목에서 세부담 인하방안이 포함돼 있다.
세금을 낮춰준다는데 싫어하는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 이번 개편안은 계층별 세부담 인하 수준에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어 전체 감세의 53%가 중산 서민층에 귀착된다고 정부는 강조하고 있다. 조세정책은 여러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경제성장에 초점을 두면서도 정치적 인기를 염두에 두고 형평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두 가지 목표를 다 잡는다는 것은 어느 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명박 정부는 감세정책을 내세워서 정권을 잡았다. 감세정책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특히 법인에 대한 감세정책은 지난 1980년대 영국 대처 정부와 미국 레이건 정부에서부터 시작돼 경제성장을 위한 정책수단으로 모든 선진국가에서 이미 채택하고 있는 정책 방향이다.
1980년대 이후 모든 선진국들이 채택해온 감세정책의 배경에는 세계경제의 개방화가 있다. 개방화로 자본과 노동의 국제 간 이동에 제약이 없어짐에 따라 조세정책으로 형평성을 달성하려는 정책의도를 달성할 수 없는 환경이 돼버린 것이다. 세금이 낮은 곳이면 어느 곳으로든 움직일 수 있는 세상에서 형평성에 관한 한 조세정책은 ‘박제가 된 호랑이’가 된 것이다.
그 결과 조세정책을 통해 더 많은 경제자원을 각국에 끌어들이기 위해 세금을 낮추는 현상이 나타나게 됐다. 실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법인세율 평균치 변화를 살펴보면 1996년 37.6%, 2002년 31.4%, 2004년 30%로 해마다 낮아지고 있다. 이처럼 세율을 서로 낮추려는 ‘조세경쟁’으로 조세정책을 통한 형평성 달성은 이제 신기루 정책으로 전락하게 됐다. 각국이 개방화로 인한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세금을 인하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정부가 법인세 인하 계획을 발표하자 감세효과가 대기업에 집중된다는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는 의견도 많다. 하지만 이제 조세정책은 국내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국제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세계의 정책흐름에 동참해야 한다. 아무런 제약조건 없이 형평성 문제를 논의할 때 형평성 제고를 반대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형평성 운운하면서 감세정책을 비판하기에는 세계의 경제시장이 너무도 변했다는 점이다. 감세정책은 시대적 흐름이므로 따라야 할 규범이지 선택해야 할 국내 정책방향이 아니다. 시대적 흐름이라고 기호품 유행처럼 따라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시대적 흐름에 동참하지 못하면 한국은 후진국으로 전락하고 말기 때문이다.
새 정부의 첫해 조세정책은 매우 중요하다. 정권 내에서 추구하는 경제정책의 방향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정권을 잡는 데 가장 중요한 정책상품이 조세이며 세제개혁에는 정권의 철학이 담겨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 발표된 세제개편안은 앞으로 이 정부가 추구해야 할 정책방향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지 않다. 국세와 지방세의 조정문제, 종합부동산세제를 포함한 부동산 관련세제, 소비세제 등 조세정책의 전체 구조에 대한 정책방향이 보이지 않는다. 정치적 지지도에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세부담을 낮추겠다는 의지만 있지 앞으로의 과세 기반인 소득ㆍ소비ㆍ재산 간의 세부담 수준을 어떻게 변화시키겠다는 정책방향이 결여돼 있다.
지금 세계 각국에서는 우리가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소비관련세 비중이 높아지고 공평하다는 소득관련세 비중은 낮아지고 있다. 소규모 개방경제를 가지고 있는 우리도 국제적 정책흐름에 거스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세제개혁은 정권 초기에 강한 의지를 나타내야 성공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세계의 정책흐름에 동참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세제’하면 형평부터 생각하는 국민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강한 개혁의지를 보여주고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지도력을 보여야 한다. 세제개편은 철학이 부재하고 정치적 지지를 염두에 둔 정책인 반면 세제개혁은 5년간의 정부 운용 철학이 있고 정치적 지지보다는 역사적 지지를 염두에 두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제개혁이지 세제개편이 아니다.
- 서울경제 2008.09.02 기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