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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인칼럼

열역학적 사고와 지속가능한 발전

NEW 열역학적 사고와 지속가능한 발전

  • 박성숙
  • 2008-07-16
  • 36991

흔 히 21세기를 환경의 시대라고 한다. 지구온난화, 오존층 붕괴, 환경 호르몬 등 한 때 생소하였던 용어들이 더 이상 새롭지 않다. 그 만큼 환경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하나뿐인 지구가 온전히 보존되어야한다는 절박한 사정을 반영한다. 그렇다고 지난 수 천년 동안 지속되어온 인류 문명의 방향을 거꾸로 돌릴 수도 없다. 경제성장률이 조금만  떨어져도 온 나라가 못 살게 되었다고 아우성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성장도 필요하고 환경도 버릴 수 없다. 지금이야말로 환경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로운 원칙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돌아보아야할 때이다. 

지 구의 환경을 보전하고 인류 문명을 지속적으로 보장해 줄 수 있는 범지구적 원칙이 있다면 그것은 ‘지속가능한 발전’의 원칙이다. 이 원칙의 개념을 처음으로 정립한 것은 '환경 및 개발에 관한 세계위원회'(WCED)의 브룬트란트 보고서이다. 여기서 지속가능한 발전은 "미래세대가 필요한 것들을 충족시킬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원칙이 뜻하는 바를 새겨보는 것이 환경에 대한 인식의 출발이라고 생각된다.


인간의 활동은 자연의 수용능력 안에서


이 지속가능한 발전의 원칙은 유한성, 효율성, 형평성 그리고 공동체의 가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유한성은 자연환경이 인류와 그들의 행위를 수용할 수 있는 용량이 유한하다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우주 삼라만상의 운동에는 에너지가 필요한 것처럼 인간의 모든 활동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자연환경이 우리 인류에게 제공할 수 있는 에너지는 제한되어있다. 이것이 우주의 에너지는 일정하다는 열역학 제1법칙이다. 그래서 지구가 인간의 활동을 수용하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한계가 없으면 발전은 기하급수 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그러나 한계가 있을 때에는 어느 점에서가 증가 곡선의 기울기가 변하는 변곡점이 있어야하고 그 점 이 후 부터는 증가 속도가 떨어지면서 S 곡 선을 그리며 서서히 한계점으로 수렴하게 된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이고 열역학적 사고의 기본이다. 지속가능한 발전의 이념은 바로 이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모든 활동은 이 수용능력의 범위 안에서 이루질 수밖에 없다. 환경의 수용능력이 생산의 근원적 한계이며 경제성장의 근원적 한계를 설정한다는 인식이 절실하다. 

효 율성은 귀중한 자원을 이용하는 인간 행위가 포괄적으로 보다 경제적이어야 한다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에너지는 필요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형태의 다른 에너지로 변환될 수 있다. 이 때 에너지의 총량은 변하지 않으나 에너지의 유효성은 크게 변한다. 석유를 태우면 석유에 저장되어있는 에너지 량만큼의 열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한번 타버린 석유는 다시는 석유 돌아 갈 수가 없다. 그래서 타고난 후 생긴 열 에너지보다는 석유의 이용가치가 훨씬 더 크다. 이처럼 지구상의 에너지의 양은 일정하더라도 에너지가 변환될 때마다 지구의 총에너지의 이용가치는 감소한다. 그래서 에너지를 변환할 때 총에너지의 유효성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변환하여야하며 이때에 에너지 변환 효율이 가장 높다. 이것이 열역학 제2법칙이다. 자연환경도 마찬가지이다. 개발은 환경의 희생을 요구한다. 개발을 이유로 한번 파괴된 환경은 개발이 주는 이익보다 훨씬 더 큰 비용을 치러야 회복될 수 있다. 어쩌면 회복이 불가능할 수 도 있다. 귀한 것일수록 아끼고 조심스럽게 다루는 것이 동서고금의 지혜이다. 선진국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이미 소모된 자연자원과 배출된 환경오염물질만으로도 지구의 환경문제가 심각해졌다. 경제의 적정 성장과 동시에 환경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자연자원의 이용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먼저 인간의 욕망, 인류의 소비 수준과 양식이 통제되어야한다. 결국 지속가능한 발전의 개념은 환경을 포함한 경제적인 사고의 틀이 마련되어야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정신으로


형 평성의 문제는 환경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큰 과제이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열은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흐른다. 이처럼 자연의 모든 운동은 차이를 없애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그래서 지구상에서는 평형을 찾아서 끊임없이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더위와 추위가 닥친다. 그러나 자연과 달리, 인류 문명은 자연을 거슬러 끊임없이 더 큰 비평형 과정을 양산해왔다. 자연은 점 점 더 비 자연적으로 조작되고 인류의 삶은 자연으로부터 점 점 더 멀어져 갔다. 그런데 이 과정에 인간의 절제되지 않은 욕망이 개입하여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불평등이 확산되어왔다. 그리고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불평등은  다시 자연환경의 훼손을 가속화 시켰다. 선진국은 더 많은 부를 얻기 위해서 후진국의 자원과 에너지를 헐값에 이용하였다. 대도시의 쾌적한 생활을 위해서 시골의 자연은 자원 공급 기지로 희생되어야했다. 결국은 잘 사는 나라와 못사는 나라, 도시와 시골의 비대칭적 발전은 자원의 고갈과 환경오염을 가속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그래서 지속가능한 발전의 개념은 환경문제의 밑바닥에 있는 불평등의 문제, 특히 경제적, 사회적, 교육적 불평등의 문제를 해소하여야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결 국 환경의 문제는 지구 공동체의 삶의 문제이다. 공동체의 삶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생물체가 살아가려면 여러 가지 영양소가 필요하다. 결핍된 것이 있으면 그것이 생물의 성장을 제한한다. 특히 가장 결핍된 영양소가 생물의 생산을 지배한다. 이것을 생물학에서 ‘최소량의 법칙’이라고 한다. 공동체의 삶도 그러하다. 아무리 크고 훌륭한 문명을 가졌더라고 작지만 필수적인 요소가 부족하면 그 공동체는 더 이상 기능을 할 수 없다. 그래서 건강한 공동체가 되려면 부족한 부분, 약한 부분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흔히 21세기를 무한경쟁의 시대라고 한다. 이런 경쟁의 중심에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사익과 공익은 조화를 이루게 된다는 낙관적인 사고가 들어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환경에 관한한 '눈에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은 너무 느리다. 사익추구로 말미암아 환경은 눈에 뜨게 파괴되었다. 환경의 훼손으로 심지어 공동체의 생존이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지속가능한 발전의 이념은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에 앞서 우선 공동체의 이익을 먼저 생각할 것을 요구한다. 선조들이 귀하게 여겼던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정신은 지구공동체를 지켜야하는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가치이다. 현재 우리가 누리는 환경과 자연자원은 우리의 미래 공동체로부터 빌린 것이다. 우리의 후세들에게 건강한 미래 공동체를 남기려면 나의 욕망을 절제하여 우리가 빌려 쓰고 있는 환경과 자연자원을 아끼고 보호하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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