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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음모설에 멍드는 사회

NEW [칼럼] 음모설에 멍드는 사회

  • 이지윤
  • 2013-06-27
  • 28615

정치적 음모설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한다. 히틀러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한 이유가 좌파 및 유태인의 사보타지 때문이라는 ‘등 뒤의 비수론’을 퍼뜨려 정권을 잡았다.

미국의 경우에는 ‘에이즈가 CIA에 의해 퍼지기 시작했다’는 것부터 ‘9ㆍ11테러 미국정부 자작설’까지 다양하게 있다. 음모설은 현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그 원인을 음모에서 찾는 행태라고 할 수 있다.

음모설의 일란성 쌍둥이로서 현실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조작설이다. 일본에는 조선의 종군위안부에게 조직적으로 자행된 인권유린을 부정하거나, 중국 난징에서 다수의 사상자가 나왔을 뿐 ‘난징대학살’이란 국민당의 조작이라고 보는 세력이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6ㆍ25전쟁이 북한이 스탈린과 모택동의 허락을 받아 시작한 남침이 아니라 한국과 미국에 의한 ‘남침유도설’이라는 것이 미국의 사학자 브루스 커밍스에 의해 유행하였다. 이것은 음모설과 조작설이 결합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음모설이나 조작설이 횡횡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정치적 이해관계에 있다. 자신들이 차마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은 조작이거나 상대방의 음모에 의한 것으로 봄으로써 도덕적 추락을 막고자 하는 것이지만, 그 결과 특정한 정파를 지지하는 다수 대중의 사고를 크게 호도하게 된다. 음모설이나 조작설에 의해 사회는 황폐해지고 그 구성원들 사이에는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극단적인 증오가 나타난다.

현재 우리나라에도 각종 조작설과 음모설이 횡횡하고 있다.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가 아니라 자작극 혹은 다른 원인에 의해 침몰되었다는 주장이나 광주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직접 개입하였다는 주장은 일종의 음모설로 피해자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있다. 또 남북회담 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발언 여부와 내용을 두고 또 조작설이 등장하고 있다.

음모설이나 조작설을 막기 힘든 이유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사상의 자유에 의해 누구나 자신의 견해를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커밍스의 6ㆍ25전쟁의 기원에 대한 잘못된 견해도 이 분야의 연구를 활성화시켰다는 이유로 업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법에 의한 제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영향이 적다면 놔둘 수도 있지만 크다면 방치할 수도 없다.

결국 정치집단, 언론, 학자의 도덕적 양심, 그리고 사실과 원인을 판단하는 권위 있고 신뢰할 수 있는 공적 기관 없이는 음모설이나 조작설의 영향을 차단하기 어렵다. 양심이나 권위란 쉽게 얻을 수 없는 전통의 영역에 속하지만 더 미룰 수 있는 일도 아니다.

홍성기 아주대 기초교육대학 교수

[경기일보 2013.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