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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인칼럼

1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세계 최고 권위의 노벨상

NEW 1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세계 최고 권위의 노벨상

  • 박성숙
  • 2008-07-16
  • 48215
뉴 스나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화제이면서도 그 내용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지난해 말 논란이 되었던 줄기세포나 여기서 소개하고자 하는 노벨상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소문을 보면 최근 문제를 일으킨 우리나라 배아줄기세포 연구자가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도록 정치인들이 중심이 되어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였다고 한다. 만약 추진위원회를 만든 사람들이 노벨상과 줄기세포 연구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면 이런 해프닝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부터 노벨과 노벨상, 노벨상의 의미에 대해 좀 더 알아보도록 하자.


20여개국 94개사 거느린 최초의 다국적 기업의 총수 알프레드 노벨

         노 벨에 의해 노벨상이 만들어졌다는 것,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여 막대한 재산을 모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제외하고 노벨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1896년 노벨이 사망하고 1901년 최초로 노벨상이 수여되기까지의 우여곡절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노 벨은 1833년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태어났다. 당시 스웨덴은 지금의 노르웨이를 지배하고 있던 북구의 강대국이었다 - 이 때문에 노벨상 중 평화상만은 지금도 노르웨이에서 수여하고 있다. 노벨 가문은 많은 유명한 기술자를 배출한 가문이었고 노벨의 아버지 역시 기술자였다. 러시아에 이주하여 무기를 생산하여 부자가 된 아버지의 덕택으로 노벨은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노벨을 학교에 보내는 대신 우수한 가정교사로 고용하여 노벨에게 과학, 언어, 예술, 철학 등 수준 높은 가정교육을 시켰다. 이 덕분에 노벨은 스웨덴어 이외에 5개 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게 되었다. 또 1850년에는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에 머물며 화학교수 펄루즈로부터 1년간 화학을 배우게 되었는데 이때 운명적인 니트로글리세린이라는 액체폭약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니트로글리세린은 매우 불안정하여 조금만 충격을 받아도 폭발하기 때문에 당시 아무도 이를 사용하려 하지 않았다.

        1850 년 러시아가 크림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아버지의 무기 공장이 파산을 하게 되었다. 이에 아버지 대신 노벨의 세 형제가 회사를 일으키기 위해 니트로글리세린을 이용한 안전한 폭약의 개발에 나서게 되었다. 우선 니트로글리세린을 대량생산하는 방법을 발견하였고 많은 실험을 거쳐 니트로글리세린과 폭발력이 약한 기존의 흑색화학을 섞은 후 뇌관을 달아 터뜨리면 강력한 폭발력을 가진 폭약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아냈다. 발명에 대한 특허권도 얻고 폭약을 만들어 돈을 벌게 된 노벨은 스웨덴으로 돌아가 폭약공장을 차렸다. 이후 사업가로서의 기질을 발휘하여 스웨덴뿐만 아니라 독일, 미국 등에도 공장을 세워 큰 부를 얻게 되었다. 1866년 독일 공장에서 일어난 폭발 사고를 계기로 더 안전한 폭약을 개발하려고 노력하던 중 니트로글리세린을 규조토에 섞은 후 뇌관을 단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게 되었다. 다이너마이트는 이전 폭약보다 폭발력은 약하지만 매우 안전하였다. 또한 당시 전 세계적으로 철도, 도로, 터널, 다리 건설이 늘어나면서 다이너마이트에 대한 수요 역시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어 노벨의 부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1880년대 후반 노벨은 총 20여 개국에 94개의 회사를 가진 세계 최초의 다국적 기업의 총수가 되었다.

        노 벨은 평생 독신으로 지내다 죽었다. 그는 사람들과의 교제를 싫어했으며 여가시간은 독일,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에 있는 자신의 저택을 오가며 저택에 마련한 실험실에서 실험을 하거나 독서를 하며 보냈으며 시나 소설을 쓰기도 했다. 만년에는 바쁜 사업일정, 유명인에 대한 호기심, 폭약 발명에 대한 세상의 따가운 시선 등으로 정신적 고통을 받았고 1895년 협심증 증세가 악화되자 노벨상 제정의 뜻을 담은  마지막 유언장을 작성해 스웨덴의 은행에 보관했다. 1896년 12월 10일 노벨은 이탈리아 산레모 저택에서 뇌출혈로 사망하였다.


(노벨의 최종 유언장의 노벨상 관련 부분)

나의 전 재산을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처리할 것을 밝혀둔다.

원 금은 나의 집행인들에게 맡겨 안전한 곳에 투자해 기금을 조성하게 하고, 기금에서 나오는 이자는 지난해 인류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들을 선정해 상을 주는 형태로 매년 지급하도록 한다. 앞서 언급한 이자는 5개 부문에서 공헌한 사람들에게 골고루 분배하도록 한다. 첫째, 물리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사람, 둘째 화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사람, 셋째 생리학이나 의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사람, 넷째 문학 분야에서 가장 탁월한 이상주의적인 경향의 작품을 쓴 사람, 다섯째 국가간 우애를 돈독히 하거나 군대를 폐지 또는 축소시키거나 평화회담을 주창 또는 개최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에게 상을 주도록 한다.

물 리학상과 화학상은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에서 수여하도록 한다. 생리의학상은 스웨덴 스톡홀름의 카롤린스카 의학연구소에서 수여하도록 한다. 문학상은 스웨덴 아카데미에서 수여하도록 한다. 평화상은 노르웨이 의회에서 선출된 5인위원회에서 수여하도록 한다. 상을 수여하는데 있어 어떠한 경우에도 후보자의 국적이 고려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따라서 상은 스칸디나비아인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수상할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 수여되어야 한다.


노벨의 유언에 따라 2000억원 기부로 노벨상 제정

        노 벨이 사망한 후 노벨의 최종 유언장이 공개되자 그의 친척과 세상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노벨의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을 것으로 기대했던 친척들은 대부분의 재산을 ‘지난 해 인류에게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상을 수여하도록 기부한다’라고 적힌 유언장의 내용을 믿을 수가 없었다. 노벨이 기증한 재산은 지금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여 2000억 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친척은 자신들의 몫이 거의 없기 때문에, 스웨덴 정부는 상금이 외국인에게 지급된다는 사실 때문에 노벨의 유언에 불만이었고 소송이 잇달았지만 모든 소란이 가라앉은 1901년 12월 10일(노벨 사망일) 노벨이 소망한대로 최초의 국제적인 상인 제1회 노벨상이 수여되었다. 

        노 벨의 유언대로 처음에는 문학상, 평화상,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의학상의 5개의 상이 수여되었고 1969년 스웨덴 국립은행 창립 300주년을 기념하여 경제학상이 신설되어 현재 모두 6개의 노벨상이 수여되고 있다. 각 상은 유언에 따라 각기 다른 기관의 노벨위원회에서 수상자를 선정하며 기금 및 시상식 관리 등은 노벨재단이 전담한다.

        노 벨상 수상과 관련하여 우리가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이 바로 노벨상 수상자의 엄정한 선정과정이다. 우선 매해 9월부터 다음 해 수상자의 추천을 시작한다. 보통 3000명 이상의 저명 학자(이전 노벨상 수상자, 노벨상 수여기관의 회원, 전 세계 유명 대학 및 연구소의 교수, 학자나 연구원 등)에게 추천을 의뢰한다. 따라서 국제적인 인맥을 형성하지 못하면 후보자에 끼일 수조차 없다. 다음 해 1월 31일 후보자 추천이 완료되면 이때부터 노벨 위원회에서 추천 후보의 연구 업적, 중요성, 파급효과 등을 심사하게 된다. 이때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도움을 받는데 과학상의 경우 업적 자체도 중요하지만 업적의 파급효과와 학문에 미친 영향력을 매우 중요시한다. 연구 성과의 영향력이 낮다면 아무리 연구 성과가 좋아도 노벨상을 수상할 수가 없다. 각 노벨위원회에서는 심사를 완료해 9월 말까지 노벨상 수여기관에 보고하고 11월15일까지는 투표를 통하여 수상자를 결정해야 하며 결정이 끝나는 즉시 언론을 통해 발표를 한다.

        노 벨상 시상 초기에는 주로 수상자가 한 명이었으나 차츰 수상자의 수가 늘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많아도 분야별로 3명을 넘지 않도록 규정되어 있다. 3명 이상이 거의 같은 시기에 비슷한 업적을 남겼을 경우 나이순으로 3명을 선택한다. 비록 서양이지만 연장자에게 기회를 우선 제공하는 점이 흥미롭다. 매년 12월 10일에 열리는 시상식에서 노벨상 수상자에게는 상장(개인별로 달리 디자인)과 메달, 상금이 수여된다. 상금은 현재 분야별로 15억 원 정도이며 3명인 경우 수상자의 업적에 따라 각각 1/3씩, 또는 한 사람은 1/2, 다른 두 사람은 1/4씩으로 배분한다.


국가간의 자존심 경쟁이 된 노벨상의 현대적 의의

        이 제 100여년의 역사를 지닌 노벨상은 명실상부 세계 최고 권위를 가진 상으로 자리를 잡았다. 또 노벨이 희망했던 대로 국적에 상관없이 과학, 문학, 세계 평화에 크게 기여한 사람들을 선발함으로써 학문 발전과 인류 복지의 증진에 기여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노벨상 제정 초기에 노벨상은 노벨의 유언처럼 국가와는 관련이 없는 완전히 개인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상의 권위가 커지면서 자국민이 그 해에 노벨상을 몇 개 수상했느냐를 놓고 국가 간의 자존심 경쟁이 치열해졌다. 마치 국가의 과학 수준이 노벨 과학상의 메달 수에 비례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노벨상을 탈 수 있는 분야를 국가가 지정하여 막대한 연구비, 인력을 지원하고 심사에 영향력을 미치려고 로비를 하는 등 부작용도 나타나기도 했다. 특히 옆 나라 일본에서는 2001년 정부 주도로 향후 50년간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 30명 배출이라는 야심찬 과학기술 기본계획을 확정하고 정부 예산을 집중 투자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행위이다. 구미의 선진국들이 과거 노벨 과학상을 독식하다시피 한 것은 과학문화가 정착되어 있고 과학을 전공하지 않지만 과학을 사랑하는 저변 인구가 많기 때문이지 결코 막대한 연구비의 지원이나 로비에 의한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한 두 사람의 스타가 바람을 일으킬 수는 있지만 바람이 지속되어 결과를 얻기까지는 여러 사람들의 동참과 오랜 동안 과학을 가꾸는 정성이 필요하다. 자기 분야에 열정을 가지고 노벨의 유언대로 인류에 공헌할 업적을 얻기 위해 노력할 때 노벨상을 수상할 가능성이 커지며 그렇게 수상한 노벨상만이 노벨이 바라던 진정한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다. 

 

<아주대학교 종합정보지 인간존중 5호 특집 \'노벨상, 가까이 다가서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