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jou Vision 5.0 Global Campus

Video

NEW 미술의 색다른 평론가 이주헌 제4강좌 - 서양 미술로 본 서양 정신

서양미술은 왜 사실적인 표현을 고도로 발달시키게 되었나?

서양미술의 사실주의 전통은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시작한다. 그 어느 고대 문명도 그리스 미술과 같은 고도의 사실주의를 발달시킨 적이 없어 그리스의 현상은 매우 예외적인 현상이라 하겠다. 하지만, 오늘날 서양의 시각문화전통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 그리스의 사실주의는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시뮬레이션’이라는 말은 어쩌면 그리스에 기초한 서양의 시각문화전통의 핵심을 드러내 보이는 말이다. 고대 그리스 미술에 기초해 사실주의가 발달한 원인을 다음 두 가지 현상에서 찾아본다.

1) 신위의 인간 :고대 미술에서 조각은 무엇보다 신의 형상을 표현한 것이었다. 그리스의 경우 다른 문명과 달리 신과 인간이 거의 동격이다. 신이란 죽지 않는다는 점과 인간보다 약간 나은 능력이 있다는 점에서 인간과 구분될 뿐이지 인간과 흡사한 욕망과 한계를 가진 존재들이었다. 그러므로 조각가들이 신을 빚는다고 할 때 그것은 이상화된 인간을 빚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또 그리스의 종교는 도덕적 측면에서 취약했다.

  착한 사람은 천국에 가고 악한 사람은 지옥에 간다는 관념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스 사회에서 도덕은 오히려 정치가 담당했고(민주주의 제도에서 보듯), 종교는 통합의 기능에 우선권을 두었다. 이런 환경에서“인간은 만물의 척도”가 될 수 있었고, 인간의 시각으로 세계를 재현하는 것이 당연시됐다.

2) 투철한 현세주의 : 그리스인들은 불멸의 삶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죽어 망령이 된 아킬레우스를 오디세우스가 만났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죽어 지하세계의 왕이 되는 것보다 살아서 가장 가난한 자의 노예가 되는 게 낫다." 그리스인들은 이처럼 현실을 사랑했고, 현실을 직시했다. 올림픽 게임처럼 인간의 능력과 한계를 시험해 보고 그 충실한 생명감의 정점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다. 그러므로 현실을 움직이는 실증적이고 실제적인 힘과 원리가 중요하게 여겨졌고, 이런 태도가 미술에 반영될 때 사실주의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자연에 대한 객관적인 관찰과 그것의 사실적인 표현이 중요시된 것이다. 이렇게 표현된 미술품은 자연과 똑같아서 자연과 현실에 대한 우리의 욕망과 동일한 욕망을 자극하는 실제적인 대상이 된다. 소피스트가 흥한 데서 알 수 있듯 표현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의 발달 또한 사실주의 미술의 발달에 큰 힘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