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jou Vision 5.0 Global Campus

Video

NEW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 - 진주검무보존회 2005학년도 1학기 제6강 진주검무

1.진주포구락무(경남무형문화재 제12호)

 

  경상남도 지정 무형문화재 제12호로 1991년 지정 된 포구락은 제기처럼 수술이 달린 채구(彩毬 : 색실로 장식한 야구공 크기의 공)를 포구문(抛毬門)의 풍류안(風流眼 : 포구문에 뚫려있는 작은 구멍)에 던져 넣는 놀이를 악·가·무(樂·歌·舞)로 형상화한 궁중정재의 하나이다. 마치 농구가 공을 바스켓에 집어넣는 것으로 점수를 환산하는 것과 비유할 수 있고 실제 포구락무에는 농구무라는 춤사위가 포함되어 있다.

  풍류안에 공을 넣은 무희에게는 상으로 꽃을 주고, 실패한 사람에게는 눈주위에 먹으로 원을 그려 벌을 준다. 조선시대에는 공을 넣은 상으로 비단 등의 옷감을 주기도 하고, 아예 천민에서 해방시켜 주는 후한 상을 주기도 했다. 궁중정재에서 유래했을 진주포구락무는 궁중정재의 그것보다 몹시 축소⋅변화되면서 진주지역의 특성에 맞게 전승되었다.

   이 춤은 진주 감영의 연회는 물론 매년 춘추에 촉석루에서 개최되던 의암별제(義巖別祭)·한시백일장(漢詩白日場)·향사례(鄕射禮)·투호례(投壺禮)·향음주례(鄕飮酒禮) 등에 공연되었다고 한다.


2.의암별곡


  1868년 고종 5년 당시 진주목사였던 정현석은 매년 6월중 길일을 택해 논개에 대한 대규모적인 기생들의 제례의식을 창제했는데 이것이 바로 ‘의암별제’이다. 엄장한 제례의식과 악.가.무로 이루어진다. 무엇보다 ‘의암별제’는 여성을 위한 전례라는 점이 특별하며 기악악공을 제외하고 제례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여성으로만 구성된 제례의식이라는 점도 유일무이하다.

  우리나라의 가곡은 판소리, 범패와 더불어 3대 성악으로 뽑혔으며 판소리나 잡가와 달리 글을 아는 선비계층이 많이 불렀는데 여창가곡과 남창가곡으로 나눈다. 하지만 의암별제에서는 여자만이 제례에 참여했으므로 여창가곡으로 불리었다.

 

3.입춤


  우리의 춤은 몸체를 중심으로 태극으로 형상화한다. 이 태극의 근본 요소는  음과 양인데 결국 이것들이 동작들간의 기본이다. 이러한 기본동작을 근간으로 하여 즉흥적으로 짜여지게 되는데 조직적이지 않기 때문에 산만하지 않고 춤이 자연스러운 것이 특징이다. 입춤은 살풀이나 승무 등의 민속무를 추기 전에 기본으로 배웠던 기본무를 공연화 시킨 것으로 허튼춤이라 불리우기도 한다.


4.해금과 아쟁 병주곡


5.진주검무(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는 8명의 무희(舞姬)가 춘다고 하여 진주팔검무라고 하기도 한다. 검무는 현존(現存)하는 궁중계열의 무용중에서 그 역사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지며 궁중계열의 춤에서 지방 민속무용으로 변화되어 왔고, 예부터 여러 애국 행사에는 진주검무를 추어 헌무(獻舞)로 올리는 것이 상례(常禮)였다. 무복(舞服)은 남색치마에 옥색회장 저고리를 입고, 치마를 걷어 사대(絲帶)로매고 맨위에 전복(戰服)을 입으며 전대 혹은 홍띠라고 하는 끈으로 가슴부위를 매어줍니다. 머리에는 조선시대 군모(軍帽)를 본뜬 전립(戰笠)을 쓴다.

무엇보다 무구로 쓰이는 한쌍의 칼은 다른 검무와 달리 목이 꺽이지 않는 칼을 사용하며 장단의 구성이 독특하고 춤사위가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춤의 처음은 색동한삼을 양손에 낀 한삼 평사위로 시작되며 맨사위로 이어지다가 본격적인 검무라 할 수 있는 칼을 사용한 칼사위로 마무리하게 된다. 진주 검무는 현존(現存)하는 무형문화재 중에서 그 원형(原型)이 잘 보존된 춤이라고 학계의 평을 받고 있다.

Previous

저자 - 전인권 2005학년도 1학기 제5강 남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Next

한국금융연구원장 - 최흥식 2005학년도 1학기 제7강 시장경제에 관한 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