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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차 구술인터뷰: 신용백 교수

면담일자 2019.10.01 


구술시간 : 00:00:00


제가 아주공과대학 공업경영학과 교수로 올 때가 1976년 02월 21일자입니다. 그 당시에 우리 아주공과대학은 기계공학과, 전자공학과, 화학공학과 그리고 공업경영학과(현 산업공학과) 네 개 과에 전체 교수 숫자가 50명이 채 안됐습니다. 전체 학생 수 한 1,500명 정도. 진짜 아담한 공과대학이었죠. 그런데 이 당시에는 우리 아주공과대학이 수원에 있다는 존재를 많은 사람들이 잘 몰랐습니다. 간간히 아는 지인들도 아주공과대학에 있다고 하면 ‘아! 인천?’ 인하공과대학하고 아마 혼돈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때는 우리 아주대학교 대로변 정문에서 지금 원천관까지 오는 길이 불과 한 5-600m밖에 안됩니다마는 비오는 날은 천 리길 같았습니다. 길이 질퍽거렸고 아주 안 좋았습니다. 


학교 면학분위기로 따진다면, 아주공업고등학교 그런 택으로 생각이 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나중에도 그런 이야기가 반복이 되겠습니다만 선생님들이 하나같이 젊었고, 역사 없는 학교에 선배 없는 학생들 잘 가르치려고 많은 공부를 시켰고, 숙제도 많이 주다 보니까 심지어 학부형까지 찾아와서 ‘좀 숙제 그만 줬으면 좋겠다’고 이런 경우를 저도 몇 번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왜 고등학교 같다 하냐면 공부를 많이 시키는 것도 있었지만, 우리 공업경영학과 경우에는 교수로서는 김원중 선생, 김광섭 선생, 나 셋이 있었습니다. 이러니 전공과목에 한 사람당 서너 과목을 A반. B반에서 가르칩니다. 이렇게 가르치면 보통 주 20시간 이상을 강의를 합니다. 요즘처럼 12시간 이하로 뭐 어떻게 한다~, 꿈같은 이야기였죠. 우리는 24시간 강의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대학이라기 보단 고등학교같았고~, 시간에 쫓기다 보니까 낭만도 없고 공부만 열심히 하는 공과대학이었죠.

現) 산업공학과 명예교수 


- 2007.08 퇴임 


- 1987.02 한양대 박사 


- 1976.03 부임 


- 1973.10 과학기술처 시행 제 10회 기술사 시험합격(공장관리기술사 등록-19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