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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스브스프리미엄 2023.07.22] 미국과 중국 사이 어딘가에... ‘디커플링’보다 더 무시무시한 ‘디리스킹’

  • 김흥규
  • 2023-07-24
  • 124

 

 

미국과 중국 사이 어딘가에... ‘디커플링’보다 더 무시무시한 ‘디리스킹’

각자의 해석과 셈법이 난무한다.. 도대체 디리스킹은 뭘까?

 

 

✏️ 뉴스쉽 네 줄 요약
  

 

  • 디커플링(De-Coupling, 탈동조화)을 대신할 디리스킹(De-Risking, 위험 완화)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 고립 전략인 디커플링은, 트럼프 정부에서 시작돼 바이든 정부까지도 이어졌으며, 미중 간 무역전쟁과 첨단 기술 패권 경쟁 등의 주요 원인입니다.
  • 디커플링이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 미국의 동맹들이 먼저 디리스킹을 제안했지만, 미국은 디리스킹을 오히려 더 강력한 패권 전략으로 재정의하길 원하고 있고, 중국은 당연히 반대합니다. 
  • 엇갈린 해석과 셈법 속에, 우리 정부가 ‘미국 아니면 중국’ 식의 선택을 내린다면 대단히 위험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습니다.

 

 

첫 만남에 무지개는 떴지만...

지난 7일,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시진핑 주석의 최측근이자 2인자인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를 만났습니다. 둘은 서로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었지만,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그 순간 리창 총리는 옐런 재무장관이 도착했던 날 하늘에 무지개가 떴다며 운을 뗐습니다. 미중 관계에서도 이제 비바람은 지고 무지개가 뜰 것이라는 의미였습니다.

방중에 앞서 지난 4월, 옐런 재무장관은 한 강연에서 중국과의 ‘디커플링(탈동조화, De-Coupling)’은 ‘재앙’이 될 것이라 경고했습니다. 미중 관계에서 디커플링은 국제사회에서 중국을 적극적으로 배제하고 고립시키는 패권 전략을 뜻합니다. 옐런의 이런 경고는 국제사회가 직면한 기후, 인플레이션 등 문제들에서는 전보다 중국과 더 많이 협력하지만, 미국의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반도체 등 특정 분야만큼은 따로 떼어내 관리하겠다는 ‘디리스킹(위험완화, De-Risking)’을 선언한 것이기도 합니다.

얼핏 들으면, 디리스킹은 미국이 한 수 접고 중국과의 갈등을 최소화하겠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리창 총리는 큰 반감을 드러냈습니다. 옐런의 방중을 앞두고 열린 한 포럼에서 “디리스킹을 확대하고 정치화하고 이데올로기화해서는 안 된다”며 맞받아 쳤습니다.

디커플링과 디리스킹, 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여전히 매우 모호합니다. 나름의 답을 제시해 줄 것이라 기대를 모았던 옐런의 첫 방중은 화답하듯 나타난 무지개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 채 모호함만 더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이미 디리스킹이라는 새로운 전략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있었습니다. 중국 관영 매체 ‘글로벌 타임스’도 전문가의 입을 빌려 이유를 옐런의 첫 방중이 빈손으로 끝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뿌리 깊은 두려움


미국은 냉전 시대 내내 소련을 철저히 봉쇄했습니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의 외교관 조지 캐넌이 제안한 전략이었습니다. 덕분에 조지 캐넌은 냉전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데, 바로 이 냉전에서 중국은 미국의 최고 파트너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중국의 최대 위협은 미국이 아닌 국경을 접하고 있는 소련이었습니다. 그래서 중국도 미국의 봉쇄 전략에 힘을 보탠 것입니다. 그 대가로 미국은 중국과 1979년에는 국교를 정상화하고 1980년부터는 중국에 최혜국 대우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덕분에 중국은 최상의 조건에서 미국의 강력한 소비 시장과 자본, 첨단기술에 의존하며 개혁개방을 성공적으로 이뤄냈습니다.

 
하지만, 톈안먼 사태를 기점으로 기류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중국은 자유주의 자체가 자신들의 공산주의 체제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걸 경험했습니다. 이듬해 CNN을 통해서 생중계됐던 걸프 전쟁은 중국에게는 또 다른 충격이었는데, 미국의 군사력이 너무나도 강력했기 때문입니다. 화룡점정은 1991년 소련 붕괴였습니다. 전쟁 없이도 봉쇄 전략만으로 초강대국 소련을 무너뜨리는 것을 중국은 바로 옆에서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소련이라는 위협이 사라진 순간, 중국 앞에는 미국이라는 더 큰 위협이 나타났습니다. 이 순간 가장 시급했던 일은 미국을 비롯해 주변 국가들에게 중국이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을 납득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혹시라도 미국이 소련 다음으로 중국을 봉쇄할 경우 머지않아 체제가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을 향한 중국의 두려움과 의심은 그 연원을 찾으려면 30년 전으로 돌아가야 할 만큼 뿌리 깊습니다. 그리고 '도광양회(韜光養晦, 어둠 속에서 실력을 기른다)' 전략은 이처럼 미국으로부터 처음으로 실존적 위협을 느낀 순간 나타났습니다.

 

 

 
중국의 반격① : 미국의 손발을 묶다
 
 

최근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중국에 대한 최혜국 대우를 박탈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재임 시절부터 중국에 강경했으니 별로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도광양회의 한 단면이 담겨있습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매년 미국 의회는 중국에 최혜국 대우 지위를 부여할 것인지를 결정했습니다. 혹시라도 의회에서 불승인 결정이 난다면 중국 경제가 심대한 타격을 입을 것이 불 보듯 뻔했습니다. 가뜩이나 냉전 이후 미국은 최대 위협으로 부상했는데, 그런 미국 의회에 이렇게 큰 약점을 잡혀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중국은 10년에 걸친 로비와 파격적인 양보로 2002년에서야 영구적인 최혜국 대우 지위를 확보했습니다.
 
중국은 도광양회라는 전략 아래서 그저 힘을 감추고 때만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미국이 어느 날 갑자기 밥줄을 끊으며 위협하려 들더라도 대비할 수 있게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걸어놨습니다. 적은 비용과 노력으로도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전략인 셈인데, 유일한 초강대국이 돼버린 미국을 상대하려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당시 중국은 경제는 물론, 정치, 안보 등 여러 영역에서 비슷한 전략을 전개했는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APEC(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를 둘러싼 중국의 노력이 또 다른 예입니다.
 
중국은 소련 붕괴 이후 APEC을 가만히 놔뒀다가는 미국 주도 하에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처럼 변모할 것이라 의심했습니다. 나토가 소련을 봉쇄하며 압박하는 전초기지 역할을 했던 것처럼 APEC이 비슷한 역할을 하게 될까 봐 우려한 것입니다. 그래서 1993년에 APEC에 가입한 다음 미국이 APEC에 패권주의적 의도를 투영시킬 때마다 어깃장을 놓으며 좌절시켰습니다.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누구도 가질 수 없게 망가뜨려놓는 식입니다.
 
실제로, 1993년 의장국이었던 미국은 APEC 가입국에게 ‘새로운 태평양공동체(New Pacific Commnunity)’를 제안했지만 중국은 자신들을 압박할 의도가 있다고 보고 ‘APEC은 협력체(Cooperation)로 남아야지 공동체(Community)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훼방을 놨습니다. 심지어는 공동체가 되고자 한다면 첫 글자 ‘C’는 대문자가 아니라 소문자여야 한다며 처절하게 버텨냈습니다. 결국, 중국의 훼방 전략에 APEC는 미국이 구상했던 다자기구로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이 전략의 효과는 냉전 종식 이후 러시아의 행보와 비교하면 극명하게 나타납니다. 러시아는 스스로를 미국과 힘을 합쳐 냉전을 끝낸 승전국이라 믿었고 가까운 미래에 자신들도 나토에 가입해 지역 안보를 함께 결정할 수 있으리라 꿈꿨습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나토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미국은 과거 소련에 속했던 국가들을 포섭하며 '동진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깼고 러시아를 다시 고립시켰습니다. 하지만, 그저 바라보는 것 외에 달리 방도가 없었습니다.
 
끝내 나토가 소련의 전초기지였던 우크라이나까지 끌어들이려 하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일부를 강제 합병하는 것을 넘어 전면 침공했습니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전쟁이 1년 넘게 이어지면서 러시아는 밝히기 힘들 정도의 군비 손실과 전례 없는 경제 제재, 충격적인 내부 반란까지 겪으며 안팎으로 휘청이고 있습니다. 냉전이 끝나고 러시아와 비슷한 처지에 있었던 중국이 180도 다른 미래를 마주하게 된 건 바로 도광양회라는 ‘가성비’ 좋은 전략 덕분인 것입니다.
 
중국의 반격② : 수성전


2000년대 중후반까지 이어져 오던 도광양회 전략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변화를 맞습니다. 금융위기는 미국의 통화 및 금융 패권은 물론, 미국이 수출하던 신자유주의 체제 자체에 커다란 균열을 냈습니다. 물론, 이 균열로 미국이 무너진 것은 아니지만 중국이 굴기를 시작할 명분과 계기를 주었습니다.
 
미국과 중국을 세계 질서를 이끄는 두 패권 국가로 인식하며 ‘G2(Group of Two)’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특히, 미국 외교가의 최고 브레인으로 추앙받는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지난 2009년 열린 미·중 수교 30주년 기념 학술행사에서 ‘G2 회의’를 주창하면서 더욱 부각됐습니다.

 

중국이 G2로 우뚝 부상한 2012년, 시진핑의 외교 책사로 잘 알려진 왕지스 베이징대 국제관계대학원장은 “서쪽으로 행진하자(March West)”며 2012년 10월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 타임스>에 기고했습니다. 지금 보면, 뜬금없다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1년 전인 2011년에 미국이 앞으로 권력의 축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옮겨두겠다며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를 선언했는데, 왕지스 원장의 제안은 이런 미국의 변화에 대한 대안이었습니다.

 
‘미국이 태평양을 건너 동진하니 중국은 이를 피해 서진하자’ 식의 단순한 접근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초강대국인 미국도 갖지 못한 중국만의 지정학적 이점, 바다를 거치지 않고도 드넓은 대륙을 통해 아시아 국가들과 긴밀히 연결될 수 있다는 강점에 기초한 전략이었습니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자신만의 영역에서 질서를 구축하겠다는 것입니다.
 
왕지스의 이런 제안은 이듬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일대일로(One belt, One road)’ 구상 발표로 이어졌습니다. 서쪽으로 눈을 돌린 중국은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통해 육상으로는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잇고, 해상으로는 동남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연결하려 한 것입니다.

실제로, 중국은 일대일로가 지나는 국가들에 철도와 항만, 고속도로, 통신, 에너지 등 여러 분야에 걸쳐 거대한 인프라 투자를 하고, 그 대가로 영향력을 행사하며 지역적 패권을 만들어냈습니다. 요충지에 미리 성을 쌓고 수성전을 준비하듯, 중국은 지정학적 이점을 살려 자신만의 질서를 구축한 것입니다. 급기야 시 주석은 이제는 아시아에는 미국도 필요 없고, 미국의 동맹도 필요 없다는 선언까지 나아갔습니다.

 

냉전의 무리한 재현 : ‘디커플링’


소련을 봉쇄한 미국부터 어둠이 걷히고 굴기한 중국까지 반세기가 넘는 이야기를 시시콜콜하는 이유는 디커플링과 디리스킹, 둘 모두 패권경쟁의 계보 위에서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무기를 무디게 만들고, 반대로 미국이 넘볼 수 없는 자신만의 무기를 만들며 미국을 압박한 중국. 이런 중국의 매서운 반격에 위협을 느낀 패권국가 미국의 대응은 냉전 시대로 돌아간 ‘고립 작전’이었습니다. 한때, 지상 최대의 적이었던 소련을 무너뜨린 그 카드를 다시 꺼내 든 것입니다. 다만, 냉전과 달리 지금은 무역과 기술, 금융 등 경제 전 영역에서 복잡하게 맞물리며 미국과 중국이 상호의존적이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봉쇄가 아니라 관계망들을 하나하나 골라내 중국과 일방적으로 분리시키는 디커플링으로 이어졌습니다.
 
디커플링의 시작은 무역 전쟁이었습니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웠던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6월 중국산 제품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듬해에는 안보에 위협이 된다며 중국 화웨이 제품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한편,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까지 지정했습니다. 상품과 기술에 이어 통화 정책까지, 중국을 곤란케 한다면 미국은 무엇이든 찾아내 문제 삼고 고립시키려 들었습니다. 중국은 이런 미국의 행보를 두고 “포위, 제약, 대립, 위협이라는 냉전의 사고방식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트럼프의 재선을 막은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신냉전 구도는 이어졌습니다.
 
미중 간 디커플링이 한창이던 지난 2020년, 미국의 싱크탱크 폴슨연구소(Paulson Institute) 소속 중국 분석가인 데미안 마는 자신의 SNS를 통해 모든 걸 다 파는 가게인 아마존을 끊을 수 없는 것처럼 “모든 걸 다 만들어내는 중국을 떠날 수 있을까?”라는 뼈 때리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짧은 물음은 디커플링으로 인한 파열음이 쉽게 가라앉을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냉전을 극복하고 도래한 세계화 시대에서 G2라 불리는 중국을 따돌리고 고립시키려는 전략 자체에 대한 의문인 것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위기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공급망 대란이 심화되면서 이 파열음은 더 커졌는데, 결국 디커플링을 멈춰야 한다는 불만은 공식석상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당한 만큼 돌려주다 : ‘디리스킹’


지난해 11월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처음으로 대면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이 회담에는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을 비롯해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안보보좌관, 재닛 옐런 재무장관까지 총출동했습니다. 그러나 회담 이틀 뒤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 타임스’에 실린 한 칼럼은 미국 대표단 명단 끝자락에 있는 알려지지 않은 이름에 주목했습니다. 다름 아닌 미 국가안전보장회의, NSC의 중국 담당 국장 ‘러쉬 도시’입니다.

 

이 칼럼을 쓴 건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선임편집인 딩강이라는 인물입니다. 딩강은 디리스킹이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부터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국 전략의 기조가 바뀌고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인물 중 하나가 바로 러쉬 도시”라고 강조했습니다. 도시가 재작년 펴낸 책 「The Long Game : China's Grand Strategy to Displace American Order」에 대한 언급도 덧붙였습니다.

 
앞서 제가 했던 중국의 전략에 대한 설명들, 가령 ‘미국 무기 약화시키기’와 ‘중국만의 질서 구축’ 등은 책에서 도시가 제시한 사례와 분석들을 인용한 것이기도 합니다. 특히, 도시는 디커플링 전략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 역시 지적했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GDP(국내총생산) 격차가 크게 좁혀진 것에 주목하며 “소련을 포함한 미국의 적국 가운데 미국 GDP의 60%에 도달했던 나라는 중국이 유일하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소련보다 더 강력한 경쟁자인 중국을 상대하려면 냉전 때나 쓰던 전략에서 탈피해 전혀 다르게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요? 도대체 무엇이기에 중국은 디리스킹이란 개념이 등장하기 전부터 경계하고 주시하고 있던 것일까요? 도시는 중국이 미국을 위협했던 전략으로 반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즉, 지금 중국이 갖고 있는 무기는 약화시키고, 중국이 갖기 못한 미국만의 무기로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디리스킹(De-Risking)이란?

 

 


비유적으로 보면, 디커플링은 후퇴 없는 정면 승부와도 같습니다. 실제로, 미국과 중국은 지난 몇 년 동안 한쪽에서 무역 보복에 나서면, 그에 맞먹는 또 다른 보복 조치로 맞대응하며 전면전을 펼쳤습니다. 자신도 상처를 입지만 경쟁자에게는 더 큰 상처를 입혀 쓰러뜨리는 일종의 치킨 게임입니다. 
 
그러나 도시는 이런 전략으로는 중국의 경제 규모나 역량을 고려했을 때 소련을 붕괴시켰듯 중국을 무너뜨릴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대신 중국이 그랬던 것처럼 적보다 더 적은 비용을 들여서 더 큰 효과를 봐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중국이 권위주의적 조치로 미국을 겁박하려 들 때, 미국은 동맹 네트워크가 두텁게 구축된 국제사회로 이 문제를 끌고 나와 무력화시킬 수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5월 중국이 미국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의 중국 내 판매를 금지시켰을 때 미국은 전처럼 즉각 보복 조치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대신, 미국은 한국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서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메우지 않도록 압박했습니다. 제재에 나선 중국이 오히려 공급 부족에 빠져 곤란에 처하도록 동맹국을 앞세워 힘을 빼놓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략을 패권주의적 색채는 덜어내고 정제된 언어로 다시 표현하면, 오늘날 부상하는 디리스킹 개념과 일맥상통합니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4월 브루킹스연구소에서 열린 한 강연에서 “디리스킹은 탄력적이면서도 효율적인 공급망을 구축해 특정 국가의 강압에 종속되지 않는 것”이라 설명했는데, 중국이 공급망을 인질 삼아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으려면 모두가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사실상 미국 혼자서는 중국을 상대하기 힘드니까 앞으로는 동맹국까지 동원해 중국이 구축한 질서를 허물고 힘을 빼놔야 한다는 도시의 제안과 다를 바 없습니다.

 

디커플링보다 더 무시무시한 디리스킹


디리스킹은 디커플링을 대신할 미국의 새로운 패권 전략으로 이해돼야 합니다. 특히나. 미국 역사상 가장 강한 적을 상대하기 위해 고안해 낸 전략입니다. 때문에, 중국에는 더 위협적인 선전포고가 될 수 있고, 미중 간 패권 경쟁을 지켜보던 주변국(동맹국)에도 더 무거운 선택과 책임을 강요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디리스킹을 둘러싼 패권주의적 의도와 가능성, 그리고 그 한계까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채 행동에 나선다면 오히려 리스크(불확실성)를 더 키울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김흥규 아주대학교 미중정책연구소장은 “디리스킹을 둘러싼 각자의 해석과 셈법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라고 조언합니다.
 

“디리스킹의 기원은 디커플링이 끝나기를 원했던 유럽의 동맹들입니다. 미국은 마지못해 받아들이긴 했지만, 자신에 유리하도록 새롭게 정의하려 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미국 내에서도 서로 엇갈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커트 캠벨 미 NSC 인도태평양조정관, 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 장관 등은 더 공격적인 전략 수단으로 삼길 원합니다. 러쉬 도시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이에 반해 헨리 키신저나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 등은 방어적인 접근을 시도합니다. 미국과 동맹국의 생각이 다르고, 미국 내에서도 견해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중국은 이런 상황을 아주 정확히 포착하고 있습니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면서도 이간책을 통한 이득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디리스킹에 대응하려면 먼저, 이런 흥미로운 입장 차를 이해해야 합니다.”

- 김흥규, 아주대학교 미중정책연구소장


중국은 20일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을 깜짝 초대했고, 시진핑 주석과도 만남을 가졌습니다. 이 둘은 “중국과 미국의 공동번영이 가능하다”라며 국제사회를 향해 메시지를 냈습니다. 디리스킹을 두고 미국과 동맹, 그리고 바이든 행정부 내부에서도 단일대오를 이루지 못하게 하려는 중국의 맞대응이 시작된 것입니다. 김흥규 소장은 "이미 시작된 패권 경쟁에서 유연하고 전략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대단히 위험한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우리의 보수는 미국이 결국에는 승리할  것이라 확신에 차 있는 반면, 진보는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세계 질서가 재편될 것이라고 이분법적으로 믿고 있습니다. 이건 우리의 카드패를 다 보여주는 것과 마찬가지라서 큰 비용과 리스크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미국 아니면 중국' 식의 극단적이고 편협한 결정과 처방은 지금 국면에서는 대단히 위험하기 짝이 없습니다."

- 김흥규, 아주대학교 미중정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