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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2016.07.25.] 한국엔 "신뢰훼손" 일갈하던 왕이, 북한엔 "관계개선" 손짓

  • 김흥규
  • 2017-01-31
  • 707
◆ 격동의 아시아 / 아세안안보포럼 '한미일 vs 북중러 구도' 뚜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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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에서 열리고 있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에서 한반도 당사국 간 갈등이 확대되며 동북아 정세가 짙은 탁류에 휩싸이고 있다. 한·미·일과 북·중·러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주한미군 배치 결정으로 촉발된 긴장 속에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계기로 더욱 예리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한·중이 가까워지고 한·일이 접점을 찾지 못해 동북아 신냉전 구도가 희석됐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북핵과 사드로 인해 진영 간 피아(彼我) 구분도 훨씬 명확해졌다.

25일(현지시간)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연쇄 회담을 열었다.

이날 오후 윤 장관은 케리 장관과도 만나 대북 제재·압박 상황을 점검했다. 케리 장관은 회담 모두발언에서 "한·미는 북한의 무기 개발이라는 도전과 무책임한 핵 활동, 역내 불안정이라는 큰 문제를 안고 있다"고 말했다. 윤 장관도 "현재 우리는 북한 등으로부터의 핵심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동맹이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며 깊고 넓다는 매우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야 할 때"라고 화답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회담 후 기자들과 만나 "양국 장관은 이번 주한미군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한 동맹 차원의 결정을 평가하고, 이것이 한·미 연합 방위력 향상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다"며 "사드 배치 이후에도 한·미 양국이 중국과 소통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런 기회가 더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미 장관은 올해 안에 미국 워싱턴에서 양국 외교·국방장관 '2+2' 회의를 개최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외교·국방 2+2 회의가 올해 열리면 4차로, 직전 회의는 2014년 10월 워싱턴에서 열렸다.

앞서 윤 장관은 같은 날 오전 기시다 외무상과 지난해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처음으로 회담을 했다. 양측은 회담에서 북핵 문제는 물론 28일 설립될 것으로 알려진 위안부 지원재단 기금 거출 등 합의 이행 문제들을 논의하며 한·일 관계 정상화 작업을 지속했다. 일본 언론들은 7개월 만에 만난 한·일 외교수장이 작년 말 위안부 합의를 착실히 이행할 것을 재확인했다고 전했다.

반면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중국 측 왕이 외교부장과 고위급 회담을 하고 부쩍 개선된 북·중 관계를 증명했다. 리 외무상과 왕 부장은 라오스 현지에서 ARF를 계기로 2년 만에 회담을 했다.

이날 북·중 간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도 양측이 상당한 관계 개선 의지가 있음을 시사했다. 회담에 앞서 왕 부장은 리 외무상에게 "취임한 것을 축하한다"고 인사했다. 이에 리 외무상은 상호 관계 발전을 언급하고서 "보내주신 축전을 감사히 받았다"면서 덕담을 주고받으며 부드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반면 이날 윤 장관의 한·미·일 3각 공조 행보는 전날인 24일 밤 왕 부장의 숙소를 찾아가 사드 문제를 놓고 '심야 논쟁'을 벌인 것과는 사뭇 달랐다. 당시 왕 부장은 밤늦게 개최된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최근 한국 측의 행위(사드 배치 결정)는 쌍방 신뢰의 기초에 해를 끼쳤다"고 예민하게 반응했다.

왕 부장은 윤 장관의 모두발언을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듣고 있다가 손사래를 치는 등 외교적 '결례'로 해석될 수도 있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당초 양국은 회담 모두발언을 공개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했다. 그러나 중국 측은 회담 직전 양국 취재진이 입장을 요구해 왕 부장의 불편한 심기를 여과 없이 노출하는 '심리전'을 구사했다.

이에 윤 장관은 '추신지불 전초제근(抽薪止沸 剪草除根·장작불을 빼면 물을 식힐 수 있고, 풀을 없애려면 뿌리를 뽑아야 한다)'이라는 중국 고사성어를 인용하며 중국이 북핵 문제 해결에 보다 적극 나설 것을 우회적으로 촉구했다.

이와 관련해 중국 전문가인 김흥규 아주대 교수는 중국이 어떤 식으로든 사드 배치에 대해 한국 측에 모종의 '대응'을 할 가능성을 높게 전망했다. 김 교수는 "일단 한·미가 합의한 대로 '사드가 한반도 방어를 위한 기능만을 수행할 것'이라는 점을 확실히 하는 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중국과 대화하며 접점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이날 남북 외교수장은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가 열리고 있는 라오스 현지에서 조우했다. 윤 장관과 리 외무상은 회의 장소인 비엔티안 국립컨벤션센터 1층 휴게실에서 마주쳐 인사와 악수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윤 장관이 회담 일정에 참석하기 위해 휴게실을 나서는 리 외무상 일행에게 "만나서 반갑습니다"고 인사했고 리 외무상도 "반갑습니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양측은 안부 인사 외에는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