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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2016.12.05.] 외교부, 대중 ‘주눅 외교’ 넘어 ‘알아서 기는 외교’

  • 김흥규
  • 2017-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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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한국 기업들을 상대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분풀이성’ 경제 보복으로 의심되는 조치를 잇달아 내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하고 ‘냉가슴’만 앓고 있다. 중국과 일본과의 영토 분쟁 와중에 중국에서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을 벌이는 등 경제 분야로 불똥이 튀자 일본 정부가 강경하게 대응했던 것과 비교되는 모습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자신의 국익도 지키지 못하는 ‘주눅 외교’ ‘알아서 기는 굴욕외교’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중국이 한국 기업들의 중국내 활동에 본격적으로 ‘몽니’를 부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달 중순 내려진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 조치)부터다. 그 후 롯데그룹의 중국내 영업시설 일제 소방점검 등 한국 업체들을 향한 이례적인 조치를 계속 쏟아내고 있다. 중국이 ‘사드 보복 매뉴얼’을 미리 만들어 놓은 다음 상황에 따라 하나씩 꺼내들며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는 의심이 들 정도다.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 소장은 이같은 기류에 대해 5일 “사드 문제가 한중 경제관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란 낙관적인 사고가 그동안 국내에 팽배했지만 결국 틀린 셈”이라며 “중국의 경제구조가 진화하면서 한국을 굳이 필요로 하지 않는 상황으로 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중국의 단계적 보복은 가속화되면 한국 입장에서 견디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중국의 사드 경제보복이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우리 외교부의 대응은 혹시 중국의 심기를 건드릴까 우려하면서 눈치만 보는 모습이 역력하다. 외교부는 롯데그룹의 중국내 사업장에 대한 일제 점검 소식이 알려진 뒤 하루가 지난 뒤에야 “관련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며 “우리 기업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적절한 조치를 강구해 나갈 예정”이라는 원론적 입장만 내놓았다. 앞서 지난달 ‘한한령’ 관련 보도 때는 “중국 정부가 ‘이른바 한류 금지령은 들어본 바 없다’며 이를 공식 부인한 점에 주목한다”며 애써 의미를 축소하려는 모습을 보여 빈축을 샀다. 

이같은 외교부의 행태는 중국과 비슷한 갈등 관계에 있는 일본의 사례와 견줘볼 때 더욱 초라해보인다. 

일본 정부는 중국과 영토·역사 문제로 부딪힐 때 때로는 냉정하게, 때로는 강력하게 맞받아치면서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점을 각인시켜왔다. 최근 일본의 사드 배치 검토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크게 반발하지 못하는 것은 일본이 호락호락하게 중국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라는 분석까지 나온다. 

중국에서 일본 상품에 대한 불매운동까지 벌어질 정도로 대일감정이 최악의 상황에 빠졌던 것은 지난 2012년 9월 일본 정부가 영토분쟁중인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국유화를 선언했을 때다. 이에 반발해 중국 전역에서 일본 상품 불매운동이 벌어졌고, 공장을 습격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로 인해 일본의 대표브랜드인 도요타 자동차는 한 달 사이에 판매량이 절반으로 줄어들 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다. 당시 중국 정부 관계자가 언론브리핑에서 “양국간 경제 무역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피하기 어렵다”고 공식 경고했을 정도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일본 정부는 외무성 담당국장을 베이징에 급파하고, 대사관을 통해 일본인과 일본기업의 안전을 확보해달라고 요청할 정도로 상황은 악화됐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보복에도 일본 정부와 국민들은 침착하고 냉정하게 대응했다. 일본 내부에서 중국의 보복의 빌미가 된 센카쿠 국유화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별로 나오지 않았다. 

다만 일본은 중국의 위협을 단순히 한 번 겪고 넘어가는 홍역으로 치부하지는 않았다. 이때부터 일본 정부와 기업들은 중국에 편중됐던 생산시설을 동남아로 이전시키기 시작했고, 투자처 역시 동남아 아프리카 등 신흥시장으로 돌렸다. 일본 기업들의 최대 투자처는 더 이상 중국이 아니다. 한 외교 소식통은 “단기적으로는 자신의 손해를 감내하고, 장기적으로는 철저한 대책을 세운 것이 일본의 대응이었다”며 “중국도 일본에 대한 경제보복이 결국 자신들에게 손해였다는 것을 알게된 사례”라고 전했다. 

일본 정부는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중국 눈치를 보지 않고 강력한 대응을 주저하지 않는다. 지난 6월 9일 자정을 조금 넘은 시간 중국 군함이 영토분쟁을 겪고 있는 센카쿠열도 접속수역(영해 바깥쪽 12해리)에 중국 군함이 진입하자 일본 정부는 주저없이 강도높게 대응했다.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이 주일 중국 대사관 공사에게 즉시 전화를 걸어 항의를 한 데 이어 새벽 2시 청융화 주일 중국대사를 외무성에 불러들이는 강수를 뒀다.


일본 정부는 과거 중국이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하거나 센카쿠 열도에 순찰선이 진입했을 당시에도 주중 대사를 초치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꼭두새벽에 주중 대사를 불러들인 것은 전례없는 일이었다. 이 역시 중국의 눈치를 봤다면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송대성 전 세종연구소 소장은 “외교부는 중국이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에 대해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며 “적극적으로 할 말을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송 전 소장은 “중국의 행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와의 무역에서 용납될 수 없는 조치”라며 “우리의 국익을 위해 또, 국제적 관심과 여론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우리의 견해를 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