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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뉴스 2023.09.20] 러시아에 ‘엄중 경고’ 중국엔 ‘대화’…정부 전략 통할까

  • 김흥규
  • 2023-09-27
  • 78

■ 한덕수 총리 중국 방문·한중일 고위급 회의…관계 개선 급물살?

 

"개막식에 참석해 시진핑 주석과 서로 만날 기회가 있다면 대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총리가 가는 것을 '한중 관계가 잘 진행됐으면 좋겠다'는 하나의 시그널로 받아들여도 좋다."


-한덕수 국무총리(19일, 출입기자단 간담회)

 

오는 24일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식에 참석하기로 한 한덕수 국무총리가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한 말입니다. 아시안게임 개막식엔 통상 장관급 인사가 우리 정부 대표로 참석해왔는데, 이번엔 격을 높여 총리가 가기로 결정하며 한중 관계 개선 의지를 드러낸데다 시진핑 주석과 대화를 희망한다는 직접적인 메시지까지 보낸겁니다.


정부는 중단됐던 한중일 정상회의 재개를 위한 준비에도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한중일 3국의 차관보급 고위 당국자들은 26일 서울에서 회의를 열기로 했습니다. 2019년 12월 중국 청두 정상회의를 마지막으로 열리지 못하고 있는 한중일 정상회의 재개를 3국이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한국 방문에도 정부는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11일 채널A 방송에 출연해 "외교적으로 풀어서 방한을 성사시켜보겠다."면서 "(시 주석의 방한은) 올해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기대하셔도 괜찮을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지난 6월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면 반드시 후회한다"는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발언 이후 급격히 냉랭해졌던 한중 관계를 생각하면, 불과 석달만에 관계 개선 움직임이 그야말로 급물살을 타는 분위기입니다.

■ 러시아 향해선 '엄중 경고'…"북한과 군사협력 즉각 중단하라"

 

반면 정부는 북러 군사협력 움직임과 관련해 러시아를 향해선 직접 경고장을 날렸습니다. 장호진 외교부 1차관은 19일 안드레이 보르소비치 쿨릭 주한 러시아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들여 북한과의 군사협력 움직임을 즉각 중단하고 안보리 결의를 준수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습니다.


장 차관은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를 채택한 상임이사국이자 국제 비확산 체제 창설을 주도한 당사국 중 하나인 러시아가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할 것"이라면서 "정부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며 우리 안보를 중대하게 위협하는 어떤 행위에 대해서도 국제사회와 공조하여 분명한 대가가 따르도록 강력히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 이후에 나온 우리 정부의 첫 구체적인 '행동'인 셈입니다.

■ 러시아엔 '엄중 경고', 중국엔 '대화' 배경은?…북중러 밀착 차단

이 같은 정부 움직임엔 북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본격화한 북·러 군사협력 움직임이 북·중·러 연대로 굳어지기 전에 서둘러 차단하려는 전략이 담겨있습니다. 한미일이 안보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상황에서 북러 밀착에 중국까지 가세해 한미일 vs 북중러 구도가 고착화 되면,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7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 참석해 "모든 유엔 회원국은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를 지켜야 하는데, 특히 상임이사국은 책임이 크다"면서 북·러 군사 협력 시도에 대한 경고를 보내면서 중국을 향해선 한중일 정상회의를 고리로 대화하고, 협력하자며 손을 내민 바 있습니다.

관건은 중국이 이런 우리 정부 움직임에 어느 정도 호응할 것이냐입니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은 "한미일 협력을 강화하는 정책에 대해선 중국이 대단히 경계하고 불쾌감을 갖고 있지만, 한중 관계는 중국의 전략적 입장에서 봤을 때도 중요하고, 이를 완전히 파괴하는 쪽으로는 갈 수 없다는 게 중국의 판단" 이라고 짚었습니다. 그러면서 "중국은 러시아, 북한과는 다르다는 걸 분명히 하고 있다"면서 중국이 북-러 연대에 깊이 개입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김 소장은 "중국이나 러시아를 동시에 적으로 돌리는 그런 행보를 하는 건 우리가 현실적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면서 "항상 신중하고 명민하고 유연하게, 모든 변화하는 상황들에서 기민하게 분석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북한과 러시아의 정상회담이 끝난 뒤 미국, 중국, 러시아 고위급의 회동은 연일 바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유엔 총회를 계기로 미국 국무장관과 중국 국가 부주석이 회동했고, 중국과 러시아 외교장관 회담 뒤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다음 달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회담할 것이라는 러시아 측 발표도 나왔습니다.

각국이 국익을 위해 치열한 외교전을 벌이는 상황에서 한미일 밀착 구도를 넘어 중국을 지렛대로 북러의 '위험한 거래'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지, 우리 정부의 외교 전략도 본격적인 시험대에 선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