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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마이더스 2017.09.08.] 한·중 수교 25년, 야누스의 중국

  • 김흥규
  • 2017-09-19
  • 961
한·중 수교 25년, 야누스의 중국


사드로 시험대… 미·중 힘겨루기에 외교 기로

                                                              

1992년 8월 24일 베이징에서 우리나라 이상옥(좌) 외무장관과 중국 첸치천 외교부장이 ‘한·중 외교관계 수립에 관한 공동성명서’를 교환한 뒤 밝은 표정으로 악수하고 있다. 연합DB

7월 6일 베를린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악수를 나누는 문재인(좌)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배재만 연합뉴스 기자

  한국과 중국이 8월 24일로 수교 25주년을 맞았다.
  수교 후 지난 사반세기 동안 양국 관계는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6·25전쟁 때 수많은 희생자를 내가며 싸웠고, 그 이후 40년 가까웠던 냉전의 세월을 뒤로 하고 전격적으로 단행된 1992년 8월의 국교 수립은 한국 현대사에 획을 긋는 역사의 한 페이지였다.
  수교 첫해인 1992년 64억 달러였던 양국 교역 규모는 2016년 2천113억9천만 달러(수출 1천244억3천만 달러, 수입 869억6천만 달러)로 약 33배 늘었다. 중국은 우리의 최대 수출·수입국이자 부동의 최대 교역 대상국으로 자리매김했다. 중국 입장에서도 한국은 수입 1위국이자 수출 3위국이다.
  한국관광공사 통계에 따르면 양 국민의 왕래는 1993년 총 15만2천 명이던 것이 2015년 약 69배인 1천42만8천 명(방중 444만4천 명, 방한 598만4천 명)으로 증가했다.
  이런 경제적 상호 의존과 인적 교류를 발판으로 양국 정부는 1998년 ‘협력동반자’에서 2003년 ‘전면적 협력동반자’를 거쳐 2008년 ‘전략적 협력동반자’로 관계를 격상해왔다.
  2000년 마늘 분쟁, 2000년대 초중반엔 동북공정을 포함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논란 등으로 삐걱대기도 했지만 활발한 경제교류의 기반이 있었기에 양국 관계는 뿌리째 흔들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중국의 국가전략이 도광양회(韜光養晦; 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힘을 키운다)에서 대국굴기(大國堀起; 대국으로 우뚝 선다는 뜻)로 전환하고,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미국과 중국 간의 패권 경쟁이 본격화될 조짐을 보이는 과정에서 한·중 관계는 새로운 도전을 맞고 있다.
  특히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문제를 둘러싼 최근 심각한 갈등 양상은 양국 관계가 표면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극복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음을 보여줬다.
  그동안 잠복해 있던 지정학적 갈등 요인들이 북핵 위기와 미·중 간 전략경쟁 와중에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한·중 관계는 이제 ‘본질’과 대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드 갈등은 수교 25주년을 맞이하고도 양국 정부가 공동의 기념행사도 갖지 못할 처지를 만들었다.
  한·중 관계를 잘 아는 외교 소식통은 “사드에 대해 한국은 안보 문제로 생각하는 반면, 중국은 미·중 전략경쟁의 틀에서 바라보고 있어 기본적으로 접점을  찾기가 어렵다”고 분석했다.
  현재의 사드 갈등을 극복하고 한·중 관계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것은 한국 외교가 당면한 최대 과제다.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은 “공개적 언쟁보다는 비공개적 방식을 통해 소통을 강화하면서 서로 이익의 공통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현재의 사드 갈등은 마늘 분쟁이나 동북공정과는 다른, 다자(多者) 간의 문제이자 미·중 전략경쟁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문제로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중국이 주시하는 사드 등의 현안에 대해 한국이 국익에 기반해 입장을 명확히 가져가야 한다”며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한다면 미·중 모두로부터 받는 압박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