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언론

언론보도

[중앙일보 2017.08.24.] 작년 사드 결정 직후 한·중 관계 최악 “25년 로맨스는 거품”

  • 김흥규
  • 2017-08-28
  • 1144


# 2014년 7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첫 방한은 성공적이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시 주석은 “한·중 관계가 어느 때보다 가깝다”며 미래를 밝게 전망했다. 하지만 정상회담 직후 채택된 4330자에 이르는 공동성명과 부속서에 한국이 바랐던 북한의 핵 도발에 대한 중국의 명시적 경고는 활자로 박히지 않았다.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문제는 부속서에만 간단히 언급되는 데 그쳤다.
 

전문가 25인이 말하는 지난 25년
노무현 정부까지 7점대 관계 유지
천안함 때 5점대 보통 수준 떨어져


“박근혜 정부, 중국 내 북한 가치 간과
양국 차이점 충돌, 재조정 단계 시작”


# 시 주석의 방한 직후 정상회담 성과를 평가하기 위해 양국 학자들이 모였다. 중국 학자들이 공동성명의 아쉬운 점들을 지적한 한국 언론 보도를 언급하더니 갑자기 신문을 테이블에 던졌다고 한다. “시 주석 부부가 북한보다 먼저 한국을 찾아 여러 성의를 보였는데 어떻게 언론이 이런 비판을 할 수 있는가.” 중국 학자의 일갈에 분위기는 차갑게 얼어붙었다.

한·중 관계에 있어 ‘성공’이란 실제로는 ‘이견을 얼마나 잘 감추는가’에 불과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1992년 수교 이후 한·중 관계는 표면적으로는 선린우호 관계(김영삼 정부)→협력 동반자 관계(김대중 정부)→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노무현 정부)→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이명박 정부)로 발전해 왔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더 이상의 동반자 관계 앞에 쓸 말이 없어 ‘관계의 내실화’라는 표현을 썼다.
 
국제정치 전문가 25명이 한국의 정부별로 한·중 관계를 0~10점 척도(0점=최악, 10점=최고)로 평가한 결과도 김영삼 정부(6.6점), 김대중 정부(7.3점), 노무현 정부(7.6점)까지는 보통 이상의 좋은 관계라는 평가였다. 하지만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문제는 이런 현란한 관계 규정이 모두 허상이었다는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 보였다.
 



한·중 간에는 지난 25년간 5~6년 주기로 폭발력 강한 갈등 이슈가 터졌다. 그중에서도 사드가 가장 심각하다는 점이 전문가들의 평점에서도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마늘 파동(2000년) ▶동북공정(2005년 전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사건(2010·2011년) 등의 고비 때도 양국 관계가 5점 이상, 즉 ‘보통’ 수준은 유지했다고 봤으나 사드 배치 결정 직후는 달랐다. 평점이 3.8점으로 뚝 떨어졌고, 현재는 4.6점으로 평가했다. 정부별 평점도 사드 배치를 결정한 박근혜 정부(5.4점)가 최저였다. 이명박 정부는 5.8점을 받았다.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은 “한·중이 서로 관계를 개선하고자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에 최악은 면하고 있지만, 시진핑 주석이 사드 문제를 중국의 핵심 이익과 등치시키면서 양국 관계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박근혜 정부가 북한의 4차 핵실험 뒤 사드 배치 결정으로 치달은 것은 중국에 ‘왜 미국처럼 해주지 않느냐’고 투정을 부린 것”이라며 “시 주석이 김정은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상관없이 중국에 있어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한·중 관계가 ‘구동존이(求同存異·차이점은 인정하되 공동의 이익을 추구)’에서 ‘구동화이(求同化異·이견의 격차를 줄이며 공동의 이익을 추구)’의 관계로 진화해야 하며, 차이점을 애써 서로 모른 척하며 아슬아슬하게 공존했던 과거가 오히려 비정상이었을 수 있다고 봤다.
 
이희옥 성균관대 성균중국연구소장은 “한·중이 서로 상대방에 대해 갖고 있던 이미지와 실체가 분리돼 보이기 시작하는 재조정의 단계로 접어들었다”며 “있는 그대로의 한·중 관계를 관리해야 하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고 분석했다.
 
이성현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한·중 관계는 열여덟 살 불 같은 사랑을 하다가 결혼할 생각을 하니 서로의 처지가 너무 다른 것을 깨닫게 된 거품의 로맨스 같은 관계”라며 “사드는 그런 거품이 터지는 계기였다”고 말했다. 

[출처: 중앙일보] 작년 사드 결정 직후 한·중 관계 최악 “25년 로맨스는 거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