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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2017.12.13] 난징대학살 80주년 핑계로 자리비운 習

  • 김흥규
  • 2017-12-14
  • 886
난징대학살 80주년 핑계로 자리비운 習


시진핑 한번도 안가던 난징行…관영매체 文방중기사 드물어
文 "한중 함께 항일투쟁" 강조…한미일 공조체제 부담 지적도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을 놓고 일각에서 제기됐던 '홀대론'이 현실화됐다. 13일 전세기 편으로 베이징 서우두공항에 내린 문 대통령 내외를 영접한 중국 최고위급은 쿵쉬안유 중국 외교부 아주담당 부장조리(차관보)였다. 4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국빈방문 당시 장관급인 장예쑤이 상무부부장 겸 외교부 당위원회 서기가 영접한 것과 비교하면 두 계단 아래 서열이다. 문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베이징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중국은 '사드 뒤끝'을 보여줬다.

더군다나 국빈방문의 중대한 행사인데도 불구하고 이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비롯한 중국 최고지도부는 장쑤성 난징에 내려가 있어 정작 수도 베이징엔 국빈에 걸맞은 상대방이 없었다. 13일은 중국인들이 역사적 치욕으로 여기는 난징대학살 80주년으로, 시 주석은 이날 오전 '난징대학살 피해동포 기념관'에서 열린 추모식에 최고지도부를 대동하고 참석했다. 난징대학살은 중일전쟁 당시인 1937년 12월 13일부터 1938년 1월까지 국민당 정부 수도였던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이 30만명 이상(중국 측 추정)의 중국인을 학살한 사건이다. 중국 정부는 2014년 2월 입법 형식으로 매년 12월 13일을 난징대학살 희생자 국가추모일로 정했다.

중국 내에서 정치적, 역사적으로 중요한 행사를 치르느라 시 주석이 난징행사에 갔다 하더라도 국가서열 2·3위인 리커창 총리와 장더장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까지 베이징을 비운 것은 외국 정상에 대한 결례라는 게 베이징 외교가의 공통된 평가다. 또 시 주석이 추모식에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불가피하게 자리를 비운 것도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선 중국 정부가 난징대학살 80주년인 13일 일제의 침략 피해를 공유하는 한국의 문 대통령을 국빈으로 초청해 일본의 과거사 왜곡에 대한 한중 공조를 모색하는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노영민 주중 대사는 당초 이날 공항 영접을 준비하다 "중국의 중요한 국가적 행사를 먼저 챙기라"는 문 대통령의 지시로 전날 급거 난징에 내려가 추모식에 참석했다.

문 대통령도 난징대학살 80주년 추모일에 맞춰 방중한 점을 십분 살려 한중 간 공통된 역사 인식을 강조하고 나섰다. 문 대통령은 이날 재(在)중 한국인 간담회에서 연설하며 "한중 두 나라는 제국주의에 의한 고난도 함께 겪었고, 함께 항일투쟁을 벌이며 어려운 시기를 함께 헤쳐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은 난징대학살 80주년 추모일"이라고 운을 뗀 뒤, "한국인들은 중국인들이 겪은 이 고통스러운 사건에 깊은 동질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날 문 대통령이 방중 첫날부터 한중이 일본에 대항해 싸웠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한 점이 한반도 안보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한·미·일 3국 공조체계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이날 한중비즈니스포럼 연설에서도 "우리는 어려서부터 공자와 맹자의 유교사상을 배우고, 삼국지와 수호지를 읽으며 호연지기를 길러왔다.

제국주의 침략에 함께 고난을 겪고 함께 싸우기도 했다"고 하는 등 두 차례 연설에서 모두 양국의 항일역사를 거론했다.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은 "중국은 일본에 대항해 한국에 역사 공동 전선을 펴자는 제안을 할 가능성이 높은데, 우리가 여기에 적극 동참하는 것은 정답이 아니다"며 "동북아 협력 증진을 위해 과거보단 미래를 바라보자는 식으로 신중히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과거사 문제에 할 말은 하더라도 한중 간 '공동 대응'은 그 효과보다 부작용이 많다는 지적이다. 의도가 어찌됐든 중국 정부의 대대적인 난징대학살 추모 분위기 조성으로 문 대통령의 국빈방문은 첫날부터 김이 빠지는 모양새가 돼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