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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2019.05.10] 군사·경제 굴기로 ‘新질서’ 꾀하는 中… 곳곳서 美견제 직면

  • 김흥규
  • 2020-03-04
  • 710

- ③ 도전받는 패권전략

‘때 기다린다’→‘떨쳐 일어난다’
시진핑 이후 공세적 대외노선

강군몽·제조2025·일대일로
동북아 넘어 글로벌패권 추구
21세기 중반 美넘는 강국 꿈

美·中 군사·군비경쟁 심화 속
美, 印太전략 앞세워 對中봉쇄
中은 “패권추구 안해” 한발 빼


#1.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중국 공산당 중앙외사공작회의에서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외교사상’ 확립을 선언했다.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 진행 중인 6월 22~23일 베이징(北京)에서 4년 만에 소집된 회의였다. 시 주석은 신시대 외교사상의 핵심을 10가지로 설명하면서 중화민족의 부흥을 사명으로 하는 대국 외교, 인류운명공동체 건설 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중국의 핵심 이익과 중대 이익을 계속 견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주도적 역할을 확대하면서 강대국으로서의 위상을 굳혀 가겠다는 의지로 풀이됐다. 국가의 핵심 이익을 마지노선으로 국가 주권과 안보, 발전 이익을 수호하겠다는 최근 시진핑 외교 전략의 ‘공세적’ 특징이 이때부터 두드러졌다.

#2. 얼마 뒤인 10월 4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미국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 연설에서 중국의 미국 중간선거 개입 의혹을 제기하며 “중국은 미국의 국내 정책과 정치에 개입하기 위해 선제적, 강압적 방식으로 그 힘을 사용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중국이 ‘중국제조 2025’를 통해 로봇공학·생명공학·인공지능(AI) 등 세계 최첨단 산업의 90%를 장악해 미국의 경제적 리더십에 도전하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에 대해서는 국제법 준수를 강조한 뒤 “우리는 겁내지 않고,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맞섰다. 중국의 패권 도전을 ‘일탈’로 규정한 펜스 부통령의 이날 연설은 본격적인 중국과의 ‘신냉전’ 선언으로 받아들여졌다.

중국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뜻하는 ‘중궈멍(中國夢)’과 글로벌 인프라 프로젝트인 ‘일대일로(一帶一路·One Belt, One Road)’를 내세우며 신국제질서 구축에 나섰지만 미국의 강력한 견제에 직면한 상태다.

21세기 중반 미국을 뛰어넘는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실현하겠다는 중국에 미국이 순순히 1등 지위를 내놓지 않겠다며 사활을 걸고 나서자 세계 곳곳에서 충돌과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무역 전쟁, 기술·경제 전쟁, 군사·전략 전쟁이 망라돼 전방위적인 패권 경쟁을 펼치고 있는 형국이다. 사안에 따라 미·중 양국이 일시적 공존과 타협을 모색하겠지만 근본적인 패권 경쟁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미국은 2017년 12월 발표한 국가안보전략보고서(NSS)에서 중국을 “미국의 안보와 번영을 좀먹고 미국의 힘, 영향력, 이해에 도전하는 전략적 경쟁자, 현 국제질서의 도전자”로 규정했다.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도전을 선언했기 때문에 이를 용납하지 않고 주저앉히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는 최근 발간한 ‘미·중 전략 경쟁의 본격적인 도래’ 보고서에서 “미국 중심의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라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새로운 국제질서가 태동했다”며 “미·중 무역분쟁은 경제·기술 전쟁으로, 전략·군비 경쟁으로, 더 나아가 이념 경쟁으로 확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강대국이 신흥 강대국의 도전을 두려워해 전쟁이 발발한다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 현실화하고 있는 양상이다. 특히 군사 강국을 꿈꾸는 중국의 ‘강군몽(强軍夢)’이 현실화하면서 미·중 간 군사·군비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한반도와 동중국해, 대만, 남중국해를 넘어 서태평양과 인도양으로 진출하려는 중국에 맞서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강력한 대중 봉쇄 작전을 펼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1월 아시아 순방 당시 새로운 지정학·지경학적 개념으로 인도-태평양을 제시한 뒤 실제 해양 포위망 구축 대상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을 잇는 일대일로를 통해 미국의 포위망을 우회하면서 주변 국가에 군사기지를 구축한다는 전략으로 맞서고 있다.

미·중 경쟁은 이데올로기로도 확대되고 있다. 미국식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중국은 국가 주도 경제와 중국식 사회주의 발전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대표적 관변 학자인 후안강(胡鞍鋼) 칭화(淸華)대 교수는 21세기 중반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넘어 2078년 중국 개혁·개방 100주년에 사회주의 고급단계로 진입하는 구상까지 내놓았다. 한 중국 연구자는 “앞으로 미국과 중국이 죽기 살기로 싸울 수밖에 없는 게 두 나라의 숙명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전쟁으로 본격화한 미·중 패권 경쟁은 실제 2012년 말 시 주석 집권 초기부터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 도광양회(韜光養晦·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름)와 화평굴기(和平굴起·평화롭게 일어섬)에서 벗어나 시 주석이 분발유위(奮發有爲·떨쳐 일어나 해야 할 일을 함)를 주창하면서 대외적으로 공세적 성격이 가시화됐다는 점이 근거다.

중궈멍은 중국 대외 노선의 민족주의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첨단 제조업 강국 달성을 위한 기술 굴기와 미국의 군사적 우위에 대한 도전을 분명히 한 군사 굴기, 우주 굴기 등을 통해 중화민족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전략이다.


시 주석은 물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중국은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중국 외교부도 상호존중과 협력 공영을 특징으로 하는 ‘신형국제관계’와 ‘인류운명공동체’를 외교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미국과의 ‘신형대국관계’도 조율과 협력을 통해 안정과 균형을 도모하고 있다고 밝힌다. 왕이저우(王逸舟) 베이징대 교수는 “중국은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대화와 협력을 통해 양국 간 불일치를 줄이려고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