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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20.04.26] 2년전 막힌 '민간출신 국방장관'···"사드사태 막을수 있었다"

  • 김흥규
  • 2020-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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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ㆍ15 총선’에서 여당이 압도적으로 승리하면서 집권 후반기 국방개혁의 속도가 빨라질 전망이다. 지난 2018년 문재인 정부가 준비하다 포기한 ‘국방개혁 2.0’의 핵심 과제인 ‘민간 출신 국방부 장관 임명’에 다시 나설 수도 있다. 문민 장관 임명을 법률로 확정하려던 당시 개혁안의 핵심 사항이 대통령 보고를 하루 앞두고 급작스럽게 누락된 구체적인 정황도 이번에 처음 확인됐다. 

문재인 정부는 당초 국방개혁 2.0을 추진하면서 국방부 장관 문민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이는 지난 대선에서 문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기도 했다. 이에 따라 ‘민간인 국방부 장관 임명 법률화’를 비롯해 ‘군 출신은 전역한 뒤 7년 뒤 장관 임명, 국ㆍ실장은 2년이 지난 뒤 가능’하도록 한 내용이 개혁안 초안에 담겼다.  
 
그러나 2018년 7월 대통령 보고를 하루 앞두고 문민화 관련 내용이 최종 보고서에서 빠졌다. 복수의 소식통은 “육군 출신 국가안보실 핵심 인사가 수정했다”며 “이런 과정은 송영무 장관도 사전에 알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당시 안보실 핵심 인사는 지금은 청와대를 나왔다.
 
문민 장관 임명은 그동안 정치권 내 보수 세력과 장성 출신 예비역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 15일 총선에서 여당이 과반의 의석을 차지하면서 인사청문회를 무리 없이 통과시킬 여건이 생겼다. 여기에 외교안보 부처 개각설도 나온다. 다음 국방부 장관은 문민 출신으로 교체하면서 동시에 빠졌던 문민화 개혁도 다시 추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국방부 장관 문민화에 나서야 다른 국방개혁 과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국방개혁이 군사혁신 수준에 머물고 있다”며 “국방개혁의 시작은 결국 사람일 수밖에 없어 문민 장관 임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해군 영관급 장교 출신이다. 


“문민화 추진, 대통령 보고 하루 전날 취소”

처음부터 국방부 장관을 군 출신이 독점한 건 아니다. 광복 이후 제1공화국이 출범할 때 광복군 출신 이범석 초대 장관이 취임했고, 이후 문민ㆍ군 출신이 번갈아 등용됐다. 4ㆍ19 혁명으로 탄생한 제2공화국에선 문민 출신만 국방부 장관에 임명됐다. 

1961년 5ㆍ16 군사정변이 변곡점이었다. 군부 정권이 출범한 이후 국방부 장관은 군 출신 장성의 몫으로 돌아갔다. ‘군 출신 국방부 장관 임명은 군사정권 시절에 자리 잡은 왜곡된 민군관계를 상징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문민 장관 임명에는 대체로 찬성하는 분위기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는 “문민 통제를 확립하는 건 시대적 흐름”이라며 “유럽과 일본에서는 여성 정치인 출신 국방부 장관도 나왔다”고 지적했다.  
 
현역 해군 A 제독은 “문민화 필요성을 논쟁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왔다”며 “국방부 장관의 책임과 권한에 맞는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가 중요할 뿐 나이와 출신 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역 해군 B 중령은 “야전에서도 문민 장관이 주도해야 실질적인 국방개혁이 추진될 수 있다고 공감한다”고 전했다


“국방개혁 군 출신에 맡길 수 없어” 

군 출신 장관은 육ㆍ해ㆍ공군 출신에 따른 자군 이기주의를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에 국방개혁을 추진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군 안팎에선 “이번 정부에서 해군 출신 장관 아래에선 해군 우선주의, 공군 출신 장관은 공군 봐주기가 심했다”라거나 “해ㆍ공군 출신 장관은 육군에 미안한지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전차 도입 사업을 두 차례나 승인해 줬다”는 불만이 교차한다. 김흥규 교수는 “군 출신은 조직의 이해관계에 갇혀 있고, 기존 관행과 타성에 젖어 있다”고 평가했다.
 
군 출신 장관이 합참의장 권한에 지나치게 개입한다는 지적도 오래전부터 나왔다.
 
국방부와 합참 주변에선 “정경두 장관이 군사적 사안이 생길 때마다 번번이 합참으로 달려가 합참 의장의 지휘권에 개입한다”, “장관은 아직도 자신을 합참의장으로 생각한다”는 불만이 나온다. 
현역 공군 C 중령은 “국방부 장관은 국방 정책에 초점을 둬야 하고 합참의장은 군사력 운용에 중점을 둬야 한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국방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지낸 부승찬 연세대 겸임교수는 “군 출신 장관이 관성과 관행을 벗어나는 건 쉽지 않다”고 평가했다. 부 교수는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공군 영관급 장교 출신이다.
 
김동엽 교수는 “군 출신 국방부 장관이 국회에 출석해 국방과 군사의 차이점을 이해하지 못한 발언을 종종 꺼낸다”며 “국방정책과 군사전략은 서로 다르며, 국방개혁과 군사혁신도 상이하지만, 이처럼 다른 두 가지 개념을 혼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방부 장관이 합참의장 수준의 군사전략과 작전지휘에 갇혀있어 포괄적인 안보환경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김흥규 교수는 “국방부 장관은 미·중 패권 경쟁과 남북관계 변화 등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안보 환경에 유연하고 창의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고 평가했다. 
 
이어 “민간인 국방부 장관이 있었다면 중국에서 크게 반발했던 고고도 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논란도 막을 수 있었다”며 “군 출신 장관의 경직된 사고방식 때문에 큰 피해를 봤다”고 평가했다. 
 
국방부 개혁실장을 지냈던 홍규덕 숙명여대 교수는 “군대는 태생적으로 창의성보다 헌신과 신뢰에 특화된 조직”이라며 “창의성은 문민화를 통해 보완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국방부 장관은 군사 작전 나서지 말아야”  

2004년부터 국방부 공무원 비율을 70% 수준으로 올리겠다는 정책도 추진하지만, 평가는 엇갈린다. 25일 국방부에 따르면 실장급 고위공무원 5명 중 예비역 장군 출신은 1명, 국장급 17명에는 현역 군인 5명ㆍ예비역 군 출신 3명이 포함돼 있다. 현장에서 “예비역 출신도 문민으로 볼 수 있느냐”, “대통령이나 장관이 바뀌면 정책이 후퇴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은 문민 국방부 장관 임명을 법률로 규정했다. 군 출신은 전역 후 7년이 지난 뒤 가능하다. 부승찬 교수는 “군 출신을 국방부 장ㆍ차관과 실ㆍ국장에 기용할 경우 어느 정도 공백기가 필요하고 이를 위한 입법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무원 개방, 민군 상호 존중 필요”

예비역 육군 D 장군은 “군사적 전문성이 많이 필요한 부서에는 현역 군인을 배치하는 게 조직과 국가를 위한 선택”이라며 “무조건 어느 정도 비율까지는 민간인을 기용하겠다는 목표가 바람직한지 모르겠다”는 불만도 꺼냈다. 

익명을 요구한 국방부 고위 공무원은 “미국의 공무원 인사 체계는 고시제도가 없는 등 한국과 다르고, 일반 공무원은 보통 과장급까지 승진한 뒤 정년을 채우고 퇴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에선 한국의 실ㆍ국장급에 해당하는 고위 공무원은 대체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외부 전문가로 교체된다”고 덧붙였다.
 
홍규덕 교수는 “형식적 문민화를 극복하려면 예비역의 재취업 관련 규정도 정비하고, 과장급 이상 공무원 직위를 외부에 적극적으로 개방하는 정책도 추진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성공적인 문민화를 위해서는 상호존중과 이해도 필요하다. 익명을 요구한 장교는 “공무원은 책임의식이 낮고, 단순한 직업으로만 생각해 군인과 사명감이 다르다”며 “국방부에서 마주칠 때 인사하는 공무원이 단 한명도 없어 같은 조직에 근무하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아쉬움을 드러냈다.
 
국방부에 근무하는 군인은 보통 오전 7시 30분, 공무원은 9시께 출근하고, 퇴근 시간도 크게 다르다. 상명하복의 조직 문화 역시 공무원과 군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업무 속도와 소통의 방식도 매우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또 다른 고위 공무원은 “현역 군인의 조직 문화는 다소 경직된 부분이 아쉽지만, 업무성과는 대체로 뛰어나다”고 귀띔했다. 
 
홍규덕 교수는 “헌신과 신뢰가 장점인 군인과 창의성이 뛰어난 공무원이 상호 보완할 때 국방부와 군이 발전할 수 있다”며 “상호 존중하고 서로 다른 조직문화를 소통하고 융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출처: 중앙일보] 2년전 막힌 '민간출신 국방장관'···"사드사태 막을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