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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2020.11.09][美 대선] ‘트럼프 때깔 벗기기’에 엄청난 혼란과 갈등 초래할 듯

  • 김흥규
  • 2020-11-13
  • 419
바이든 시대의 만만찮은 대내외 도전
자국 문제로 상당한 시간 소모될 전망



미국 대선이 끝났다. 예상과는 달리 바이든의 압승이 아니었다. 트럼프는 6대 경합주 가운데 플로리다와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애리조나·미시간·위스콘신·펜실베이니아에서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11월5일 오후 6시 현재 6인의 선거인단을 지닌 네바다의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만약 여기서 바이든의 승리가 확정된다면 바이든은 승리를 선언할 수 있다. 그러나 대선 현장투표가 종결된 지 24시간이 지나도록` 여전히 누구도 승리를 선언하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는 미시간과 펜실베이니아에서 개표 중지를 요구하는 소송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화당 성향의 보수 대법관이 미국 대법원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을지라도, 이번 대선 결과를 대법원이 결정하지는 못할 것으로 본다. 정치 문제를 법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미국 국내 정치는 안정을 되찾기보다는 불복으로 인해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충돌로 치달을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이번 선거가 전례 없는 격전을 펼쳐 미국 국민이 정파 간에 감성적으로 크게 상처를 입었고 분열되었다는 점이다

바이든에게 강력한 리더십 기대하기 어려워

미국은 연방제도를 선택하고 있어 각 주 자치와 독자성을 인정하는 간접선거 형태로 대통령선거를 치른다. 각 주마다 투표 규칙과 개표 제도가 다를 수 있어 어느 후보가 압승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최종 결과 선언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전국 득표수는 앞섰는데, 대통령 선거인단 경쟁에서는 질 수도 있다. 2000년대 들어서도 민주당의 앨 고어와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그런 상황에 직면해 대통령이 되는 데 실패했다. 이러한 제도는 주로 도시에 강한 지지 기반을 가진 민주당에 불리하다. 주 단위로 단 한 표라도 더 이긴 후보에게 선거인단을 몰아주는 선거제도가 주류인 상황에서, 도시 지역에서 많은 지지를 받은 민주당 후보가 전체 선거인단 수에서는 지는 경우가 종종 나오기 때문이다.

이처럼 문제가 많은 제도임에도 미국이 이 제도를 고수하는 것은 건국 이념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초기 미국 국민 대다수는 유럽에서 왕정과 권력독점의 폐해를 절실히 경험한 사람들이다. 미국 건국 당시 연방주의자인 토머스 제퍼슨과 반연방주의자인 알렉산더 해밀턴이 미국 정치체제의 형태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했다. 미국은 강력한 권력의 집중 대신 이를 분산시키는 데 동의했다.

삼권 분립은 결코 효율성을 추구한 제도가 아니다. 대신 견제와 균형을 통해, 과도한 권력 집중의 폐해를 방지하려는 목적을 지녔다. 미국의 대통령선거 제도 역시 각 주의 입장을 존중하고, 반영하는 형태를 취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이미 건국 시절부터 이질적인 사람들과 지역으로 가득찬 미국은 더욱 분열되고, 갈등과 폭력으로 점철된 역사를 경험했을 것이다. 아마도 오늘날의 미국이 존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트럼프의 미국은 이러한 미국의 건국 정신에 상당한 손상을 가져온 듯하다. 그간 트럼프 대통령의 권력은 마치 의회나 사법부의 견제에서 벗어난 듯 거침이 없었다. 이미 지난 세계화 과정에서 해체된 미국의 핵심 중산층은 더 이상 권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 대신 더욱 곤궁해지고, 미래와 노후가 불안해진 중하층 노동자·농민·대중은 ‘미국 제일주의’ ‘보호무역주의’ ‘민족주의’ 정서에 호소하는 트럼프를 거의 맹목적으로 지지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그 지지층이 얼마나 공고하고 강력한지를 ‘샤이 트럼프’를 통해 증명해 보였다. 미국 유수의 선거 예측 기관들이 이전 선거에서의 오류를 시정하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이번 선거에서도 정확한 예측에 실패했다. 트럼프는 현장투표에서, 농촌 지역에서, 백인 여성들 사이에서, 노년층에서 강력한 지지를 획득했다.

미국 패권시대에 ‘안정’과 ‘번영’을 구가하면서 ‘자유’ ‘민주’ 등의 가치를 강조하는 민주당이나 바이든의 입장과는 사뭇 동떨어진 가치를 주장하는 강력한 계층이 미국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을 보여 준다. 이는 바이든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할지라도 미국은 이질적인 감성·이해·사고를 지닌 그룹들의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더구나 바이든에게는 과거 클린턴이나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국민에게 보여준 비전이나 개인적 카리스마가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가 전횡하다시피 권력을 집중해 온 행정부나, 행정부와 의회, 행정부와 사법부의 관계를 다시 미국 건국 정신에 입각해 제자리로 돌려놓을 상황은 아닌 듯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미국 대통령선거는 문제의 종결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트럼프 때깔 벗기기(Anything but Trump)’ 개혁은 미국에서 엄청난 혼란과 갈등을 초래할 듯하다. 바이든의 미국은 당분간 분명한 비전과 대안이 없는 상황 속에서도 이러한 국내 문제로 상당한 에너지와 시간을 소모해야 할 듯하다.

자국 문제로 對中 압박 전열 갖추기 쉽지 않을 듯

미국의 국내적 혼돈은 대외정책에 투영될 것이다. 바이든은 상업적 민족주의를 표방한 트럼프에 대비해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이는 현재 미국의 젊은 층이나 트럼프 지지자들에게는 전혀 인기 없고 낡은 정책으로 치부될 것이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지지하고 있는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과 대중국 압박 정책은 지속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이를 추진할 관료와 싱크탱크 체계 확보와 동원, 전략과 전술, 최종 목표 설정과 같은 많은 작업을 필요로 할 것이다. 미국 단독주의 대신 동맹과 우호적인 국가들과의 연대를 통해 대중국 압박을 강화하고, 트럼프가 소홀히 한 다자주의나 제도적 접근 등을 좀 더 강화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단번에 되는 게 아니고 상당히 많은 외교적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즉 대중국 압박은 그만큼 느슨해질 것이고 전열을 갖추기도 쉽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미국 국내적으로도 공화당이 우위인 상원의 인준을 받아내면서 주요 보직을 채워나가는 작업만으로도 반년, 이들이 일을 숙지하는 데 반년 등 1년여의 시간이 허비될 것이다. 그사이 중국은 미국 유수의 다국적기업들을 통해 바이든 정부의 대중국 압박을 완화하려는 노력을 집요하게 전개할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 시기의 미국은 내외적으로 간단치 않은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이를 해소하기 쉽지 않은 환경에 처했다는 것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국제정치는 당분간 관리를 포기한 정원처럼 잡초가 무성하고, 각자 도생해야 하는 정글과 같은 상황으로 변모하고 있다.

출처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