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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20.10.23] “미·중 전쟁 시대, 한국 기업들이 살 길은 미국 주도 자유경제권에 있다”

  • 김흥규
  • 2020-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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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간의 전략 갈등(이하 미·중 전쟁으로 약칭)은 최소 5년에서 최장 50년 지속될 것입니다. 30여년간 진행된 세계화(globalization)로 양국간 경제적 상호연결이 깊숙이 진행됐다는 게 과거 미·소 냉전과 다릅니다. 하지만 미·중 전쟁은 먼저 꼬리 내리는 나라가 지고, 중재하는 나라도 없이 막판까지 가는 '치킨 게임(chicken game)’ 양상입니다. 이런 구도가 장기화할수록, 우리나라 리더들의 안목과 역할이 중요합니다.”

 

미국과 중국 전문가인 김흥규 아주대학교 미중(美中) 정책연구소 소장의 진단이다. 서울대 외교학과와 같은 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김 소장은 미국 미시간대학교에서 케네스 리버썰 교수(Kenneth Lieberthal·중국명 李侃如·전 백악관 아시아 담당 선임국장, 현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지도 아래 ‘중국의 중앙-지방 관계’를 주제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2019년부터 국내 전문가 40여명과 2개월에 한번씩 만나 ‘미중(美中) 전략경쟁시대 한국의 나아길 길’을 주제로 공부하는 연구포럼을 이끌고 있다. 김 소장을 이달 20일 서울 시내에서 만났다.

 

◇"美 젊은이들은 트럼프에게 매력 느껴"

- 미국 대선이 2주일 남짓 남았는데, 누가 당선될 것으로 보는가?

“대체로 바이든 우위를 점치지만 박빙(薄氷) 양상이다. 트럼프가 이길 가능성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먼저 경합주에서 지지율 격차가 크게 좁혀지고 있다. 미국 젊은 세대들이 불법 이민 단속과 일자리 창출, 제조업 부흥을 강조하는 트럼프에게 매력을 느끼고 있다. 중국과의 전략 갈등, 코로나 확산 같은 국가 위기 상황일수록 강하고 터프(tough)한 지도자를 원하는 게 미국인들이다.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가 3일 만에 퇴원한 트럼프가 미국인들에게 ‘영웅(英雄)’처럼 비쳐지는 것도 유리하다.”

 

- 바이든과 트럼프가 각각 대통령이 될 경우, 미·중 전쟁은 어떻게 달라질까?

“대중 압박이라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나 바이든은 동맹 및 파트너들과의 협력을 더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마초이즘’과 같은 기존 태도를 견지한다면, 대중(對中) 연대 구성이 쉽지않아 보인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올들어 ‘민주주의의 새로운 동맹(a new alliance of democracies)’을 주창하고 있는 만큼, 어떤 형태로든 집단화를 꾀할 것이다.”

 

◇"누가 당선돼도 글로벌 공급망에서 中 퇴출 시도할 것"

- 미·중 전쟁에 임하는 미국 행정부와 의회의 의지(意志)나 단호함은 어느 정도인가?

“미국의 대중(對中) 인식은 최근 50년을 통틀어 가장 나쁘다. 당파에 관계없이 70%가 넘는 국민들이 중국에 대해 부정적인(negative) 인식을 갖고 있다. 따라서 미국 대선 결과에 상관없이 정부나 의회 모두 중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완전 퇴출하는 게 현재로선 불가능에 가깝지만 그런 시도는 분명히 지속될 것이다.”

 

- 미·중 간의 군비 경쟁과 군사적 대립이 고조되고 있다. 군사적 충돌 가능성은?

“대만과 중국간의 양안(兩岸) 해협에서 우발적 군사적 충돌 개연성이 가장 높다. 이 와중에 이달 6일 대만의 국민당은 미국과 대만간의 재수교(再修交) 권고안을 입법원에 제출해 통과시켰다. 대만 야당까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깨고 대만 독립 노선을 택한 것이다. 중국은 2005년 제정한 반(反)국가분열법에서 ‘대만이 독립의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비평화적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규정해 놓고 있다. 양안에서 군사적 충돌이 언제든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는 국면이다. 그 다음 미중 군사 갈등은 한반도에서 벌어질 개연성이 높다.”

 

◇"中이 우리 기업에 좋은 대우해줄 가능성 거의 없어"

- 미·중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우리나라 기업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한국 대기업들 입장에서는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경제 진영에서 활동 공간을 늘리는 게 유리하다고 볼 것이다. 글로벌 공급망을 여전히 미국이 장악하고 있고, 하이테크 장비와 기술, 표준 모두 미국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게 첫 번째 이유이다.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 퇴출 시도가 계속된다면, 중국의 경제력 약화가 일정정도 불가피하다. 한·중간에 직접 경합하는 산업 업종이 많아 양국간 경쟁이 심하며, (미국과의 전쟁을 벌이는) 중국이 선진 산업분야에서 우리에게 특별히 좋은 대우를 해줄 가능성이 거의 없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서방 주도 경제권에서 중국이 빠진 공간을 메우며 활동할 때, 우리에게 더 많은 기회와 경제적 이득이 생길 것으로 볼 것이다. 정부가 할 일은 성급한 판단 보다는 기업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시간과 공간을 확보해주는 일이다. 중소기업이나 분야에 따라 달리 판단할 수도 있다.”

 

-미·중 전쟁의 승자(勝者)를 판가름짓는 관건을 꼽는다면?

“세가지로 본다. 첫째 반도체와 우주, 인공지능(AI), 양자 정보 등 첨단 하이테크 경쟁에서 누가 이기느냐이고, 두 번째는 어느 나라가 세계 각국의 ‘마음’을 사느냐이다. 마지막으로 누가 자국 경제를 튼실하게 하고 내적 안정성을 이끌어 내느냐이다.”

 

◇"反中연대 강화한 유럽 강대국들, 美에 독립적 외교도"

- 미·중 전쟁은 어떻게 결말날 걸로 예상하는가?

“현재로선 어느 한 나라가 일방적으로 승리해 단독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체제가 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두 나라가 격렬하게 경쟁하는 가운데, 상당 국가들은 이쪽도 저쪽도 아닌 회색 지대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지는 예단할 수 없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 강대국들의 향배가 중요하다. 미국 국내의 내구성(耐久性) 문제도 변수이다. 최근 유럽 강대국들은 중국의 홍콩보안법 제정 등을 계기로 중립 또는 친중(親中) 노선에서 반중(反中) 노선으로 돌아서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독립적, 실용적인 외교를 펴고 있다.”

 

◇"한국 정치인들, 미·중 전쟁 문제의식 갖고 공부해야"

- 우리 정부나 지도자들은 미·중 전쟁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한국은 대만에 이어 두 번째로 미·중 전쟁의 최전선(最前線)에 있다. 미·중 전쟁 파고 속에 단 한 번의 국가 정책 실패가 나라의 존망(存亡)을 뒤흔들 것이다. 정치인과 지도자들이 미·중 전쟁을 ‘먼 산에 불 구경’하듯 할 게 아니라 엄중한 문제의식을 갖고 공부하고 식견과 안목을 갖춰야 한다.”

김 교수는 “우리가 잘못된 대응을 할 경우 경제와 국민의 삶이 완전 파탄날 수도 있다”며 “집권당은 물론 수권 정당을 자임하는 야당(野黨)도 미·중 전쟁의 엄중함을 절감하고 당 차원은 물론 정치인 개인적으로도 이 문제를 제대로 들여다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野黨과 시민단체, 中에 독자적인 목소리 내야"

- 세계 문화의 아이콘인 방탄소년단(BTS)의 수상(受賞) 소감에 대해 최근 중국 네티즌들과 언론이 일방적 공격을 퍼부었는데, 중국의 이런 안하무인(眼下無人)적 태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정부 당국자가 직접 전면에 나서는 것은 여러 역효과가 있으므로 바람직하지 않다. 대신 정치권이나 시민단체에서 우리 입장을 밝히고 중국에 대해 할말은 하는 게 필요하다. 특히 야당이나 시민단체들이 중국에 대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낸다면 정부의 공식 외교 수행에 도움될 수도 있다.”

- 미·중 전쟁과 관련해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주문한다면?

“미·중 전략경쟁과 같은 외교 안보 이슈가 경제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생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임을 국민들도 깨달아야 한다. 이제는 경제와 외교안보 영역의 구분이 없다. 대통령 선거를 포함한 주요 선거 때는 물론 평시에도 정당과 정치 지도자들에게 미·중 전략경쟁 등 외교안보 분야에 대한 입장을 묻고 대응책을 요구해야 한다. 리더의 자질, 리더십의 품질과 대응 방향에 따라 미·중 전쟁이 우리에게 엄청난 위기 또는 기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