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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21.05.26] 전문가들 “對中외교, 흔들면 흔들린다는 인상 주면 최악”

  • 김흥규
  • 2021-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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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25일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대만 문제가 언급된 배경에 대해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중요하다는 매우 원론적이고 원칙적인 내용만 공동성명에 포함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만해협 표현을 두고 대다수 전문가가 한국이 미국의 중국 견제 구상에 사실상 동참한 것으로 해석하고, 전날 중국이 “불장난하지 말라”며 반발하자 ‘정치적 의도는 없었다’며 의미를 축소한 것이다.

이날 CBS 라디오에 출연한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은 ‘중국이 보복에 나설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너무 앞서 나간 예측”이라고 했다. 정 장관 역시 전날 KBS 인터뷰에서 “중국도 우리 정부의 이러한 입장에 대해 이해를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도 같은 날 “(공동성명에서) 중국을 적시하지 않았다는 점을 중국이 높이 평가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의 태도는 미·중 모두의 불신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미국 입장에선 한국이 3대 ‘반중(反中) 키워드’인 대만·남중국해·쿼드를 공동성명에 넣기로 합의해 놓고 서울에 가서 딴소리를 하는 상황이고, 중국 입장에선 한국이 미국과 함께 주먹질한 뒤 고의는 아니라고 발뺌하는 꼴”이라고 했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은 “일단 (미국의 반중 노선에) 발을 담갔으니 되돌릴 순 없다”며 “향후 대중 관계는 사드 업그레이드와 같은 새로운 변수들이 몰려오고 있어 한국 외교에 큰 숙제로 남겨졌다”고 했다. 앞으로 봇물 터지듯 닥칠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대중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기업 모두가 과도한 중국 의존도를 줄이며 원칙에 따른 대중 정책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온 호주·베트남 의 경우 중국이 공세적으로 나오자 서방과 관계를 다양하게 강화하는 역균형(counter-balancing) 정책을 취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경제 보복과 군사 압력을 가했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마찰은 피하고 있다. 중국으로서도 이 국가들의 전략적 가치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중 경제 의존도가 높은 뉴질랜드도 ‘반중 후폭풍’에 대한 대비를 서두르고 있다. 나나이아 마후타 뉴질랜드 외무장관은 24일(현지 시각) 영국 가디언 인터뷰에서 “중국과의 관계에서 상당히 큰일이 발생했을 때 이를 완충할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는 신호를 수출 업계에 보내고 있다”고 했다.

외교 소식통은 “정세 변화에 따라 입장은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지만 원칙은 흔들리지 않아야 중국에 존중받을 수 있다”며 “흔들면 흔들리는 나라라는 인상을 주는 것이 최악의 외교”라고 했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중국의 사드 보복을 무마하기 위해 ‘미국 MD(미사일방어) 참여, 사드 추가 배치, 한·미·일 군사 동맹을 하지 않겠다’는 ‘사드 3불’을 약속해줬다. ‘사드는 북한 핵미사일 방어용 장비로 중국의 보복은 부당하다’는 원칙을 접고 중국을 달랠 꼼수만 찾다가 군사 주권 포기 논란을 자초한 사례다.

다음 달 중순 영국에서 열리는 G7(주요 7국) 정상회의가 ‘대중 원칙 확립’의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한국은 G7 회원국은 아니지만 인도·호주 등과 함께 초청받았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이번 G7 정상회의는 예고편이었던 G7 외교장관 회의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반중 성토장’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희망적 사고에서 벗어나 반중 이슈에 대한 명확한 입장 정리와 대비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지금 청와대는 선진국 모임인 G7에 문재인 대통령이 초청된 것에 들뜬 분위기”라며 “문 대통령이 출국 전 가장 고민해야 할 것은 미국 주도의 반중 노선에 대한 입장 정리를 어떻게 하느냐”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