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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21.06.30] “반도체·BTS 보유한 한국, 북한에 매달리는 건 낭비”

  • 김흥규
  • 2021-10-01
  • 351

“북한이 핵(核) 포기 의사를 밝힐 때까지 군사적 압박을 최대치로 가해보자.” “북한이 뭘 하든 무시로 일관하는 건 어떤가.”

한미 양국의 전직 북핵 수석대표를 비롯한 북한 문제 전문가들이 29일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의 사전 행사로 마련된 채텀하우스 토론회에서 “한미는 지금껏 북한을 다뤄온 전통적 패러다임에서 완전히 벗어날 필요가 있다”며 상식을 깨는 다양한 의견을 개진했다.

특히 “한국의 외교 자원이 지나치게 북한에 쓰이고 있다”는 지적이 관심을 끌었다. 한 토론자는 “한국은 지금 북한에만 매달리기엔 너무 크고 강한 나라”라며 “반도체 등 첨단 IT 산업, BTS를 비롯한 압도적인 문화적 자산, 세계 순위에 손꼽히는 군사력을 갖고도 세계 최빈국인 북한에만 매달리는 것은 낭비”라고 했다. 이 세션은 누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 비밀에 부치는 ‘채텀하우스 룰’이 적용됐다.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 채텀하우스 북한 세션에 참가한 한미의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바이든 행정부의 국제 현안 순위에서 북핵을 비롯한 한반도 문제는 긴급성이 떨어진다”는 데 대체로 동의했다. 미국이 자국(自國)의 코로나 극복과 경제 회복, 중국 견제에 집중하느라 북한에 쏟을 관심과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해 도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반론도 나왔지만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기 위해 보상(인센티브)을 제시했던 관행에선 이제 벗어나야 한다”는 점에선 공감대가 형성됐다.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이날 토론회엔 북핵 수석대표를 지낸 위성락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조셉 윤 전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현직 한반도 업무 총괄인 마크 내퍼 국무부 부차관보가 참석했다. 조선일보 강인선 부국장이 사회를 맡았고 김준형 국립외교원장, 이근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이상현 세종연구소장,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 수미 테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 애틀랜틱 카운슬의 오미연 국장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토론자들은 북한·북핵 문제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주문했다. 한 참가자는 “정치권이 북한에 대해 관심을 과도하게 갖고 있다”며 “아예 북한이 뭘 하든 무시하는 전략도 써볼 만하다”고 했다. 대북 제재 수준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최고치’로 올려보자는 제안도 나왔다. 한 전문가는 “북한 당국이 체제의 존속을 우려할 정도의 군사적 압력을 가할 수도 있다”며 “북한이 핵 보유 포기 등을 논의하는 협상 테이블에 나설 때 제재를 중단하면 된다”고 했다.

이와 반해 “군사행동은 1994년 (미국의) 영변 폭격 검토 이후로 시기를 놓쳤다” “(북한에 군사적 압력을 가하면) 북한보다 한국의 제도 정치가 먼저 붕괴할 것” 등의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한미가 북한에 대해 ‘예측 불가능한 전략’을 사용함으로써 북한은 물론 중국의 대미 전략도 뒤흔들 수 있다는 주장엔 토론자 대부분이 동의했다.

북한이 미국의 관심을 끌고자 이르면 올가을 도발을 택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의 도발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대북 정책 수립에 나설 가능성을 우려했다. 두 전문가가 8월로 예정된 한미연합훈련을 유력한 도발 시점으로 꼽았다.

한 토론자는 “현 상황을 관리하는 데 치중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계속되면 도발은 시간문제”라며 “미국의 ‘대북 보류 정책’은 ‘도발 초청장’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원칙 위주의 바이든 행정부 대북 정책에 대해 “공자님 말씀 같다”는 지적도 나왔다.

반대로 북한이 쉽게 도발에 나서지 못할 것이란 분석도 제기됐다. 북한이 도발을 하더라도 한미가 제시할 수 있는 보상책이 제한적이라 도발이 미미한 수준에 그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한 토론자는 “한미연합훈련에 반발해 도발을 한다 해도 얻어낼 만한 게 마땅치 않다”며 “도발 가능성이 낮다”고 했다. 또 다른 전문가도 “코로나 상황을 감안하면 북한이 쓸 수 있는 카드는 제한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