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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2021.10.27] "6·29, 독재의 항복선언" 文대통령…노태우 북방정책엔 "성과"

  • 김흥규
  • 2021-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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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26일 별세한 노태우 전 대통령과 노태우정부, 이른바 제6공화국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문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노태우정부(제6공화국)를 평가한 언급은 많지 않다. 유신과 군부독재에 반대했던 문 대통령의 학생운동 이력이나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계를 생각하면 썩 긍정적이기는 어렵다. 이런 평가는 문 대통령의 빈소 조문 여부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 시기 정부의 외교 등 여러 성과는 그것대로 인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文, 유신반대-군부독재 반대 이력

 

문 대통령은 27일 "노 전 대통령이 5·18 민주화운동 강제 진압과 12·12 군사쿠데타 등 역사적 과오가 적지 않지만 88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북방정책 추진,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등 성과도 있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말도 전했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문 대통령은 저서 '운명'에서 "6·29 선언은 군부독재정권의 항복선언"이라고 규정했다. 전두환 대통령 집권 말기인 1987년, 이른바 '6월항쟁' 시기에 민주화 열기가 최고조에 달했다.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자는 직선제 개헌요구가 분출했다. 당시 집권당 민정당의 대표이자 대선후보이던 노태우 전 대통령은 6월29일 직선제개헌 수용 등을 포함한 정치 선언으로 위기를 넘긴다. 이것이 6·29 선언이다.

문 대통령이 전두환정부(제5공화국)를 "군부독재정권"으로, 6·29를 "항복선언"으로 표현한 것만으로도 그의 역사관을 선명하게 알 수 있다.

문 대통령은 경희대학교 재학중이던 1975년 유신반대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 수사받았다.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입대영장을 받고 군에 징집됐다. 대학에서도 제적됐다. 제대후 1979년 사법시험 1차에 합격했고 1980년 복학했다.

문 대통령은 복학 후에도 학생운동에 참여, '신군부'에 대항했는데 그 신군부의 중심인물이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었다.

 

'6공화국'때 노무현 스타덤, 3당 합당

 

노태우정부 때는 '변호사 문재인'에게 영향을 주는 굵직한 사건들도 벌어졌다. 문 대통령은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즉 '양김'이 분열되면서 1987년 대선에 노태우 전 대통령이 당선된 사실에도 아쉬움을 드러낸 바 있다.

부산에서 변호사로 함께 일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이 된 13대 총선(1988년), 노 전 대통령을 '청문회스타'로 만든 5공 청문회, 3당 합당과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된 1992년 대선도 당시의 일이다.

야권은 1987년 대선에서 집권은 못했지만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이 이듬해 13대 총선에서 바람을 일으켰다. 강력한 야당의 존재는 5공 청문회 실시로 이어졌다. 여소야대 국면은 노태우 전 대통령과 정부에 심각한 위기감을 안겼고. 1991년 3당 합당이라는 초유의 결정을 내리는 배경이 된다.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가 '새 인물'로 영입, 초선 국회의원이 된 인물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그는 5공 청문회로 스타가 됐으며 3당합당에 반대, 수년간 독자노선을 걷다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손을 잡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노태우정부 시기에 미래의 대통령이 될 기반을 닦은 셈이다.

 

노태우, 북방정책·발상의전환 '원조'

 

노태우정부는 정책, 특히 외교정책 면에서는 문재인정부에 남긴 유산이 적잖다. 노태우정부는 국제적으로는 독일통일(1989)과 소련붕괴(1991)라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 한-소련 수교(1990),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1991), 한중 수교(1992) 등을 이뤘다. 냉전질서 해체라는 격변 속에 옛 동구권과 관계를 개선하는 '전방위 외교'에 나선 것이다.

문재인정부의 신(新)북방정책이 바로 옛 북방외교의 '업그레이드' 격이고, 그 북방외교가 노태우정부의 트레이드마크였다. 문재인정부의 '신북방정책'은 중앙아시아-러시아-유럽을 향해 우리나라 외교 지평을 다시한번 넓히고자 했다. 또 동남아시아-인도를 향한 '신남방정책'과 쌍을 이뤄, 한반도평화 프로세스와 함께 현 정부 외교의 중요한 축을 이뤘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는 페이스북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해 "이 분의 국내정치적 공과에는 여러 비판과 논란이 많다"면서도 "적어도 외교에 있어서는 큰 일을 하셨다"고 평가했다. 특히 "사회주의권이 붕괴하는 와중에 우리 외교의 발상을 바꿔 북방외교의 길을 터 놓았다"고 말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내란죄 등으로 사법처리를 받았기 때문에 '전직 대통령'으로 받을 수 있는 예우도 박탈 당했다. 문 대통령은 평소 정치적 고려보다는 '법률가'로서 원칙을 고수하는 스타일이다. 이에 비춰보면 문 대통령의 직접 조문은 어려울 수 있다.

다만 노태우 전 대통령이 북방외교를 개척한 점, 어쨌든 국민의 손으로 직접 선출한 '1987년 체제'의 첫 대통령이란 점 등을 고려해 조문을 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정부는 27일 고인의 장례를 국가장으로 결정했다. 30일까지 5일장을 치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