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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22.02.18] 힘 세진 중국, 한국을 '우리 아닌 너'로 여기며 충돌

  • 김흥규
  • 2022-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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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개막해 20일 폐막하는 베이징 겨울올림픽은 더 거칠어진 중국의 모습을 전 세계가 생생하게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불과 14년 전인 2008년 베이징 여름올림픽 개최 당시엔 비교적 자유롭고 개방적인 이미지를 보여줬던 중국이 이제는 공세적인 태도를 여과없이 드러냈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느끼는 중국발 스트레스 지수도 높아지고 있다.

 다음 달 9일 대선을 앞둔 시점인 데다 마침 올해는 한·중 수교 30주년의 해여서 중국이란 화두는 우리의 신경을 더 자극할 것 같다. 중국을 포함한 외교·안보 전문가인 김흥규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장)를 만나 확연히 달라진 중국을 어떻게 인식하고 이해해야 할지, 이런 중국을 상대로 어떤 외교를 펼쳐야 국익을 극대화할지 들어봤다.
 -올림픽이 지구촌의 축제가 아니라 편파 판정 시비로 얼룩졌다.
 "이번 올림픽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시작 전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올림픽 보이콧(Boycott) 움직임이 있었다. 그 배경에는 중국의 급격한 부상과 미·중 전략 경쟁이라는 국제 정치의 패러다임 변화가 있었다. 중국도 대단히 공세적인 외교를 펴면서 올림픽을 통해서 중국의 부상을 상징적으로 세계에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한복을 입은 여성이 입장식에 등장해 '한복 공정' 논란이 벌어졌다.
 "한국을 겨냥한 도발이라고 보는 것은 확대해 해석한 측면이 있다. 특정 대상을 겨냥한 단순한 일회성 도발이 아니라 앞으로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계속 보여줄 중국 모습의 일부라고 봐야 한다. 훨씬 구조적인 현상이고, 중국의 국가 발전 전략 차원에서 앞으로도 직면할 문제다. 반감을 갖고 스트레스 받을 일이 앞으로 더 많을 것이다."

 -중국발 스트레스에 우리가 내성(耐性)을 키워야 할까.
 "중국은 세계를 천하삼분(天下三分)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미국 중심의 세계, 중국 중심의 세계, 서유럽 등 중간 지대 세계로 나눠 중국의 영향권을 확대하고 공고히 하려고 한다. 그런 과정에서 기존 강대국은 물론이고 주변국들도 엄청난 위협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문화와 역사는 현재의 영토에 기반해 모든 것을 자기 소유로 할 수는 없고, 각자 해석해야 하는 영역도 존재한다. 국제정치에서 우리가 원하는 대로 상대가 따르도록 관철하는 방법은 전쟁밖에 없다. 국가의 위신과 존망을 걸듯이 확대해석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중국이 커진 힘을 주체하지 못 해 역풍을 자초한 것인가.
 "이번 올림픽을 통해 부강해진 중국과 포용적인 중국을 동시에 보여주려 했다. 중국은 외부의 보이콧에 맞서 위구르족 청년을 개막식에서 성화 봉송 주자로 내세워 다양한 소수 민족을 배려하고 포용한다는 인상을 주려 했다. 정치적으로 단결된 강한 중국의 위대함을 과시해 올가을 3연임을 앞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리더십과 장기 집권의 정당성을 선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다. 중국은 외부 세계의 시선과 달리 국내정치적으로 올림픽이 성공했다고 판단할 것이다."
 -2008년 올림픽 때보다 더 거칠어졌다.
 "중국의 국가 정체성에 14년간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2008년의 중국은 개발도상국이어서 세계로 나가고 세계와 조화롭게 살려는 자세를 보여주려 노력했다. 2022년의 중국은 이미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초강대국의 문을 열었다고 자부한다. 훨씬 더 중국 중심적으로 사고하며 달라진 중국을 세계에 보여주고 싶어 한다."

-한국 선수들과 한복 입은 연예인에게 댓글 테러가 벌어졌다.

 "샤오펀훙(小粉紅)으로 불리는 중국의 밀레니엄 세대 네티즌은 정치·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았고 중국이 세계적 강국으로 부상하는 과정에서 자랐다. 중국 중심의 국수주의적 애국 교육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컴퓨터 게임을 하듯 승리에 집착하고 배타적인 태도를 보인다. 미국에 맞서는 민족주의 정서를 대변해온 옌쉐퉁(閻學通) 칭화대 교수조차도 '대단히 우려된다'고 걱정할 정도다."

 -한국의 20·30세대와 격하게 충돌했다.
 "한국의 젊은 세대도 권위주의와 부당함·불공정·불평등을 참지 못한다. 이 때문에 중국의 밀레니엄 세대와 한국의 20·30세대가 인터넷 공간에서 충돌했다. 쇼트트랙 종목은 한국이 최강이었는데 중국이 어떻게든 이기려고 하다 보니 반감과 혐오를 자극했다."
 -한류에 열광하던 중국인들의 최근 반한 정서가 놀랍다.
 "일각에서 거론하는 주한 미군의 사드(THAAD) 배치는 여러 요인 중 하나일 뿐이다. 오히려 중국의 부상에 따른 국가 정체성 변화가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 가난하던 시절에 중국은 미국이든 한국이든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어떻게든 국가 발전에 모든 것을 집중해야 해서 다른 것을 볼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한·중 관계를 전혀 다른 시야에서 바라보게 됐다."
 -일본보다 중국이 더 싫다는 한국인들도 적지 않다.
 "한·중 수교 이후 지난 30년간 양국 관계는 '외교의 기적'으로 불렸고 중국은 한동안 한국인들에게 '기회의 땅'이었다. 30년이 지나면서 치열한 생존 경쟁의 땅으로 바뀌었고 우리에게 중국은 압박으로 다가왔다. 보완관계이던 한·중 경제는 경쟁 관계로 전환하고 있다. 정치·군사적으로 미·중 전략 경쟁이 가속되면서 중국은 한국을 '우리가 아닌 너'라는 인식을 더 분명하게 하면서 양국의 갈등과 충돌이 잦아졌다. 사드 배치는 한국이 이제 어느 편에 서 있는지를 중국에 단적으로 보여줬다. 자기 주장을 훨씬 더 공세적으로 펴는 중국은 일본보다 훨씬 더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이제 양국 관계의 재조정과 재설정이 필요한 단계에 도달했다."

-문 정부의 저자세 외교가 혐한·혐중을 키운 것 아닌가.

 "정부 출범 초기에 정책 기조를 보면 '당당한 외교'를 하겠다고 선언했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상당한 아이러니다. '혼밥 외교'도 논란이 됐지만, 중국의 거친 언사에 제대로 당당한 입장을 밝히지 못하니 많은 국민이 실망했다."
 -대선 후보들이 반중 정서를 이용한다.
 "우려할만하다. 글로벌 여론조사를 보면 한국은 미국인보다 미국을 더 사랑하고 미국의 미래를 낙관한다. 반면 다른 어떤 국가들보다 중국에 부정적이다. 반중 여론을 따르면 국내 정치적으로 이득을 볼 수 있겠지만, 국가 전략 차원에서 냉정하게 관리하지 못할 경우 집권 이후 외교·군사적으로 상당한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국제사회의 올림픽 보이콧에 동참하지 않았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정부 대표로 파견했고 박병석 국회의장이 별도로 방문하며 성의를 보였다. 그런데 편파 판정 시비와 한복 도발에 항의하자 주한 중국대사관은 "한국 정치인과 언론이 반중 정서를 선동한다"며 논란이 된 '전랑(戰狼) 외교' 행태를 드러냈다. 한국 외교부는 "중국 대사관은 발언에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을 뿐이다.
 -중국의 도발적 행태에 대한 정부의 대응 수위가 적절했나.
 "편파 판정 같은 올림픽 공정성 문제는 정부 대표가 나서기보다는 좀 분리해서 체육계 차원에서 절차에 따라 해결하게 하는 것이 좋다. 한복 문제도 우리를 직접 겨냥한 도발이라고 확대해 해석하면 외교적으로도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 시진핑 시대에 중국 외교관들은 자국의 정치적 필요 때문에 상대국의 정서를 무시하는 껄끄러운 언행을 쏟아내는 추세다. 중국 외교관들은 불필요한 갈등을 키우지 않도록 좀 더 신중하게 처신해야 한다."

 -중국에 때로는 분명하게 'NO'라고 해야 할 텐데.

 "단순히 미국 편이기 때문에 미국이 원하는 걸 다 따라 해야 한다는 방식으로는 중국과 충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국도 세계를 단순하게 바라보지 않고, 미국도 미·중 관계를 대단히 복합적으로 바라본다. 변화된 현실을 우리가 잘 파악하고 스스로 어떤 국가 정체성을 가질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과 협력할 것은 하고, 필요하다면 분명히 NO라고 말하고, 심지어 충돌까지 각오하고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한다."
 -수교 30주년을 맞은 한·중 관계 해법은.
 "양자 관계가 항상 좋을 수만은 없다. 대단히 모호한 상태에서 회색 지대가 커지는 관계일 수도 있다. 그렇게 보면 지금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측면도 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은 어쩔 수 없다고 인정하고,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서로 노력해야 한다. 중국이 책임 있는 강대국으로 인정받으려면 국제사회에 안보와 경제라는 두 가지 공공재를 제대로 제공해야 한다. 북핵 해결을 통한 한반도 및 동북아의 안보에 기여하고, 상생할 수 있는 경제 협력 분업 구조를 만들어 내야 한다. 국내 정서에만 영합하는 외교는 서로 지양해야 한다. 중국의 급부상이라는 구조적 변화와 정체성의 변화가 수반되는 새로운 조건과 도전 상황에서 어떻게 세심하고 현명하게 적응력을 기를 수 있을지가 앞으로 한·중 양국 관계의 관건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