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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22.08.23] 김흥규 "韓·中 서로 적대시하면 양측 모두 지는 '루즈 게임'"[한·중 수교 30년]

  • 김흥규
  • 2022-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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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규 아주대 교수 겸 미ㆍ중정책연구소장은 17일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ㆍ중 관계가 적대적으로 흐르는 것은 결국 양국 모두에게 피해가 되는 루즈ㆍ루즈(lose) 게임”이라며 “한ㆍ중 모두 파국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현재의 위기는 오히려 양국 관계 재정립을 위한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ㆍ중 관계 악화의 핵심 원인으로 꼽히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체계 문제에 대해선 “미국과 중국이 직접 대화하도록 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현 상황을 양국이 수교한 지 30년 만에 찾아온 최대 위기라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 노선과 관련해 중국은 이미 한ㆍ중 관계가 보텀 라인(Bottom lineㆍ최하단)까지 내려간 것으로 파악했던 것 같다. 다만 최근 한국 정부에서도 특히 경제 문제 등을 고려해 극단적인 반중(反中)으로 가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의식하는 기류가 읽힌다. 중국 정부가 보이는 유화적 제스처는 이러한 한국 정부의 변화 기류를 읽은 결과일 수 있다.”

 

미ㆍ중 갈등 국면이 우리에겐 주요 외생 변수다.

 

“사실 한국의 대중 외교는 중국에 대해 너무 쉽게 얘기해왔다. 그러나 냉정하고 현실적으로 봤을 때, 현재 한국이 처한 상황 속에서 무엇이 국익인지는 판단하지 않으면 곤혹스러운 상황으로 갈 수도 있게 됐다. 현실적으로 중국은 이미 경제ㆍ무역 대국이다. 사드 보복을 통해 중국이 마음먹고 보복하는 상황을 경험했다. 만약 중국이 한국의 스탠스가 완전한 친미반중(親美反中)으로 돌아섰다고 판단할 경우 다가올 보복은 상상 이상이 될 수도 있다.”

김 교수는 갈등 양상을 심화시키는 원인으로 “양국 모두 외교를 국내정치에 활용하려 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사드 문제 등 안보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선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드 갈등이 해소되기는커녕, 기존 ‘3불(不)’에 ‘1한(限)’까지 더해지며 확산 양상을 보인다.

 

“시진핑 주석은 10월 말로 예상되는 제20차 당 대회를 앞두고 사드 문제에서만은 단호한 국내적 정치 메시지가 필요하다. 한ㆍ중 외교장관 회담을 멀쩡하게 잘해놓고, 돌연 ‘1한’을 언급한 것은 한국이나 미국 정부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닌, 중국 국내 오디언스를 의식한 말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실제 1한을 언급해 놓고 공식 표현은 순화했다면 이런 와중에도 한국과의 관계를 해치고 싶지 않다는 메시지로 봐야 한다.”

 

현 정부는 대선 기간 ‘사드 추가 배치’ 등을 공약한 바 있다.

 

“미국은 한국의 사드 체계와 인도태평양 전체의 미사일 방어 체계를 연동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고, 이를 한ㆍ중 모두가 다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드 체계를 한국 정부가 어떻게 못 하게 하거나, 추가 배치를 요구하거나 할 수 있는가. 한국 입장에선 오히려 ‘이미 배치된 사드는 주한미국의 체계일 뿐 한국과는 상관없다’는 방향의 스탠스가 바람직할 수 있다. 한국이 사드를 가지고 중국과 싸울 이유가 없다. ‘1한’을 가지고 진실공방을 벌이는 것도 오히려 한ㆍ중 관계를 악화시키는 ‘루즈 게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 매체는 한·중 외교장관 회담 직후 한국 측이 “3불1한을 선서(宣誓)했다”고 보도했으나 중국 외교부는 해당 표현을 ‘선서’가 아닌 ‘선시(宣示)’로 명기해 게시했다. ‘널리 알린다’는 뜻의 선시는 ‘맹세하다’는 선서보다 순화된 말이다.

 

미국 중심의 공급망 체계에 한국이 참여하는 데 대한 중국 측 반발은 어떻게 보는가.

 

“한국은 미국 중심의 패권 체제에서도 가장 성공한 상징적인 국가로 평가된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중국이 한국을 중국 편으로 돌리거나, 최소한 중립에 가까운 입장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새로운 국제질서에서 상당히 상징적인 사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현실적인 판단으로 중국은 최소한 한국을 계속 밀어붙여서 완전히 미국 쪽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고 있다고 본다.”

 

‘칩4’에 대한 중국 측 입장은 뭘까.

 

“중국 역시 반도체 생태계 등을 감안해 한국이 가입할 수밖에 없다는 걸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칩4’와 관련해서 미국이 그냥 ‘공급망 안정성에 대해 논의해보자’는 수준일 뿐 아직 명확한 실체가 없다. 중국도 이러한 현실을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공급망 체계와 관련한 논란은 서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허구를 놓고 싸우고 있는 양상이 될 가능성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이 미국 중심 체계에 앞장서는 듯한 모습을 보일 이유가 더욱 없다고 생각한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중국의 속내를 어떻게 보나.

 

“사실 중국 입장에서 보면 전임 문재인 정부는 기대를 엄청나게 부풀려놓은 측면이 있다. 이 역시 중국 입장에서 본다면 ‘약속’을 많이 하고 이를 제대로 못 지킨 정부라고 평가할 개연성도 없지 않다. 결국 ‘믿었는데 당했다’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란 의미다. 반면 윤석열 정부에 대해선 사실 기대보다 우려가 더 컸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이 중국에 대한 작은 제스처를 내더라도 중국이 기대치보다 높은 유화 메시지로 대응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윤석열 정부에게는 지금의 상황이 새로운 한ㆍ중 관계를 재정립할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