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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2022.08.22] 美 산업부활·中 반도체굴기 충돌… 시험대 오른 韓 외교력 [한·중 수교 30년… 격동의 동아시아]

  • 김흥규
  • 2022-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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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4일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는 동아시아 정세가 미국과 중국의 격렬한 충돌로 새로운 변곡점에 진입했다. 30년 전 한국과 단교했던 대만이 미·중 전략대결의 승부처로 부상한 것이다.

 

미국은 인도태평양과 경제안전보장이라는 새로운 전략개념을 제시해 군사안보적 ‘불침(不沈)항모’이자 경제안보상 반도체 제조 강국인 대만을 고리로 대중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반면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와 해공군력 강화로 해양진출을 도모하는 중국은 대만 제압을 통해 미국의 대중 포위망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지난 5∼13일 찾은 미·중 대립의 최전선 대만은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후폭풍이 강타하고 있었다. 내부적으로는 비교적 안정을 유지했으나, 외부적으론 중국의 군사훈련과 대만의 대응훈련, 미군의 견제기동 등 군사적 긴장이 고조돼 양안(兩岸: 중국과 대만)과 미·중 사이에 일촉즉발 분위기가 이어졌다. 자칫 오판이나 실수로 미·중의 신냉전식 대립이 열전(熱戰)으로 비화할 경우 한반도와 일본열도로 불똥이 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 수도 타이베이(臺北)에 거주 중인 교민 박모(46)씨는 “20년 동안 대만에 살면서 한국 지인들한테 이렇게 전화를 많이 받은 적이 없었다”며 불안해하는 외부 시선을 전했다.

 

대만의 분쟁지역화는 약 50년간 계속된 미·중 협력 기조가 대립구도로 변화하면서 지정학적 중요성이 재인식되면서 비롯됐다. 미·중은 소련에 맞서기 위해 1972년 당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방중을 계기로 전략적 협조 관계를 유지했으나 2010년대 들어 새로운 기류가 조성됐다.

 

2012년 10월 중국공산당 총서기에 올라 권력을 잡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을 의미하는 중국몽(中國夢)을 앞세워 강군 양성, 일대일로 추진, 미국 경제 추월, 대만 무력통일 가능성 비배제 등 공격적인 대외노선을 과시하고 있다. 미국도 2017년 1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래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대중 대결노선을 계속하고 있다.

 

대만의 싱크탱크인 아태화평(和平)기금회 탕카이타이(唐開太) 부(副)집행장은 “대만은 제1도련선(島鏈線·Island Chain) 중앙에 있어 북쪽엔 한·일, 남쪽엔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이 있다”며 “미국이 제1도련선의 지정학적 전략성을 중시한다는 것은 바로 대만의 역할을 중시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탕 부집행장은 “만약 미국이 중국과 왕래하고 싶다면 대만은 발판이 될 수 있고 중국과 대결하려 한다면 대만은 전선이 된다”며 “대만은 중국의 굴기(崛起: 떨쳐 일어남) 행보를 견제할 위치에 있다”고 했다

 

도련선은 1950년대 미국이 중국·소련 봉쇄를 위해 고안한 구상인데 중국은 1980년대 미군을 방어·저지하는 전략개념으로 발전시켰다. 제1도련선은 일본 남부 규슈(九州)∼오키나와(沖繩)∼필리핀∼인도네시아∼남중국해를 잇고, 제2도련선은 일본 도쿄에서 미국령 괌, 파푸아뉴기니를 연결하는 가상의 선이다. 제1도련선의 혈(穴)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대만이다.

 

최근 중국은 항공모함 등 해공군 전력을 급속히 강화해 제1도련선 돌파를 기도하는 양상이며, 미국은 제1도련선을 봉쇄해 중국 해군의 태평양 진출을 차단하겠다는 전략적 의도를 보인다.

 

위성락 한반도평화만들기 사무총장(전 주러 대사)은 “중국에 대만은 국가적 과제다. 새로운 중국을 보여주기 위해 해야 하는 마지막 과업 중 하나가 대만과의 통일”이라며 “중국이 국력이 커지면서 현 상태의 변화를 추구하려 하고, 미국과 서방은 어떻게든 막으려고 한다”고 했다.

 

특히 최근 미·중 대립이 과거 양상과 다른 점이 반도체 제조 강국이라는 대만의 경제안보상 지경학(地經學)적 위상이 미·중 대립을 격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만은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TSMC(대만적체전로제조공사)를 보유하는 등 한국과 함께 세계의 반도체 제조·생산 분야를 주도하고 있다.

 

반도체는 산업의 쌀로 불리는 핵심 부품이다. 일반적인 전기전자 제품뿐 아니라 우주개발, 인공지능(AI), 양자컴퓨터, 5세대 이동통신(5G) 및 전자전·사이버전 분야에서 없어서는 안 된다.

 

중국 정부는 2010년대 들어 자국 완결적인 반도체 공급망 구축을 위해 대만 업체와의 협력 토대에서 반도체산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 미국도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는 동시에 자국의 반도체 생산능력 부활과 안정적인 글로벌 공급망 확보를 위해 대만과의 협력을 중시하고 있다.

 

대만 경제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중화경제연구원(CIER) 리춘(李湻) 세계무역기구(WTO)센터 부집행장은 “중국과 전략적 경쟁 관계에 있는 미국이 대만과 전체주의에 맞설 수 있는 공동의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이 중요하다”며 “공급망 관점에서 봐도 대만은 미국의 경제발전에 필수불가결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했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은 “미·중의 새로운 전략경쟁 상황은 경제 분야, 과학기술 분야에서 전선이 형성되고 있으며 대만은 제4차 산업혁명의 쌀이라고 할 수 있는 (파운드리) 반도체 생산능력이 세계 최고”라며 “과거 지정학적으로 중요했던 대만이 이제 지경학적으로도 더욱 중요한 존재가 됐다”고 말했다.

 

미국이 제시한 인도태평양 시대의 화두인 경제안보와 관련해 한국도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 미국이 쿼드(Quad: 미국·호주·인도·일본의 안보대화체), 오커스(AUKUS: 동맹국 미국·영국·호주의 안보협력체),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에 이어 한·미·일·대만의 반도체 동맹 칩(Chip) 4에 의욕을 보이면서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연구센터 공유식 책임연구원(중국·대만 전문)은 “탈냉전 시대 미·중 관계가 좋을 때는 한국과 대만 모두 안미경중(安美經中: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정책으로 적절한 스탠스를 유지했지만 이제는 한·대만 모두 확실한 입장을 요구받고 있다”며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한반도는 양안 상황과 연동되어 있어 앞으로 양안 상황을 주시하면서 우리 방향을 잡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