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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08.09.26] "핵 유출 막고 통합 이루려면 4강(强)과 공조 강화“

  • 김흥규
  • 2015-10-20
  • 932

김정일(66)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 이후 북한 변동 시나리오 가운데 가장 우려되는 것은 김 위원장의 생존 여부와 관계 없이 여러 요인들로 인해 무정부 상태가 발생하는 이른바 '급변사태(急變事態)'이다. 서재진 통일연구원장은 "급변사태가 일어난다면 통일 과정이 실질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날은 벼락처럼 올 것이고, 그래서 준비는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한다"(허남성 국방대 명예교수)는 주문들이다.

◆급변사태 발생 시나리오들

김 위원장에게 유고(有故)가 발행해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이 우선 제기된다. "핵무기를 끌어안고 미국과 대결하는 극단적 모험주의와, 개혁적 쿠데타 등 양갈래로의 가능성이 모두 있다"(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것이다.

식량난과 인권 탄압이 계속 악화되면서 주민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송대성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현재 북한 주민들의 충성도는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때와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낮다고 봐야 하기 때문(김용현 동국대 교수)이다.

김 위원장 후계가 불안정하면 내부 권력투쟁이 발생, 정권 붕괴→체제 붕괴로 이어져 배급 체계가 완전히 끊기고 군과 주민들이 동요해 무정부 상태가 될 개연성도 있다(송대성 박사).

◆급변사태 발생시 예상되는 상황과 단기 대응책

①대량 탈북 → "북한난민국제회의 구성"

북한 내부에 급변사태가 발생해 정권의 통제력이 약화되면 북한 주민들의 대량 탈북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이 일이 닥친다면 일단 휴전선과 해상부터 봉쇄해야 한다(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는 주장이다. 여기에 기근 등 다른 요인까지 겹쳐 '탈북 러시'가 발생한다면 "그 규모는 2개월간 30만 명에 이를 것"(남성욱 고려대 교수)으로 추정된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때도 2개월간 18만 명의 동독 주민이 서독으로 탈출했다(남 교수).

제성호 중앙대 교수는 "군대 휴양소, 폐교, 체육관, 종교시설 등을 (수용소로) 활용하고 해상으로 오면 외딴섬에 일시 격리하는 방안 등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여인곤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유엔·중국·러시아 등과 '북한난민국제회의'(가칭)를 구성해 수용시설과 비용 문제 등을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②대량살상무기 유출 → "한미 연합군의 예방적 자위권"

가장 민감한 국제안보상의 위기상황은 핵·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의 유출이며 이는 "미국의 최대 관심사"(박관용 전 국회의장)란 분석이다. 백승주 국방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이 경우 미국은 한·미 연합군에 의한 예방적 자위권(自衛權) 행사를 고려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미국과 중국이 북한의 지위를 놓고 모종의 합의를 할 가능성"(정부 당국자)도 거론된다. 전성훈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량살상무기의 통제권이나 행방에 대한 정보가 불충분한 상황에서 (우리측이) 섣불리 군사적 움직임을 보이면 중국의 군사적 개입 빌미를 줄 수도 있다"고 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미국·중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하면) 평양~원산을 연결하는 축의 북쪽과 남쪽으로 갈릴 수도 있다"고 했다.

이런 상황들에 대비한 관련국들과 사전협의와 협조체제를 구축해 정교한 외교안보상의 대비를 해두어야 한다는 주문들이다.

③내전 상황 → "유엔평화유지군 개입 가능"

홍관희 안보전략연구소장은 "북한은 비정규군까지 700만 군대의 병영 국가"라며 "급변사태 발생시 내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특히 제한된 식량이나 물자를 놓고 군대 간, 주민 간 유혈 충돌 같은 사태가 우려된다(홍관희 박사)는 것이다. 외교 당국자는 "유엔은 내전으로 인한 유혈사태나 아사(餓死) 등의 인도적 문제가 일어나면 '유엔평화유지군'을 보낼 수 있다"고 했다.

④중국 개입 → "한·미·일 공동 대응"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최근 "무정부 상태가 발생한다면 중국 군대가 주둔할 가능성은 100%"라고 했다. "중국이 난민 대처나 '북한 요청이 있었다'는 명목으로 북한에 군대를 기습 투입해 '친중 정권 수립'에 나설 수 있다"(허남성 교수)는 얘기다. 이에 맞서 "한국군과 미군도 가서 다국적군으로 북한을 관리"(황 전 비서)하고, "북한 영토에 관심 없는 미국, 민주국가인 일본과 공동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한 국책연구소 연구원)는 의견들이 있다.

◆결국 통합(통일)으로 가야

①"북한에 대한 우리 권한부터 천명해야"

급변사태가 오면 결국은 남북통일로 갈 개연성이 높아질 것인 만큼 그에 대한 중장기적 대책도 서둘러야 한다는 주문들이 나온다. 유호열 교수는 "외세가 단독 개입하거나 간섭하지 않도록 북한에 대한 우리의 정당한 권한과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선언적으로 천명해야 한다"고 했다.

②"북한 안정화를 서둘러야"

제성호 교수는 북한 안정화를 위해 "북한에서 비상 통치를 담당할 '북한자유화행정본부'(가칭) 같은 기구를 설치해야 한다"고 했다. 남주홍 경기대 교수는 "북한군 무장해제와 군 통합 작업도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비행기 등을 이용해 북한 주민 생존을 위한 식량과 의약품 등을 신속히 공급해야 하는 상황도 예상된다(홍관희 박사).

③"대북 마셜플랜 갖고 있어야"

북한 급변의 경제적 파장에 대해선 "남한 경제에 큰 부담과 불안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경제부처 당국자)는 견해와 "남한이 36분의 1 규모의 북한 경제를 감당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김석우 전 통일부 차관)는 전망으로 나뉜다. 조성렬 박사는 "남한 정부가 (남북 경제통합을 위해) 미리 장기적인 북한판 마셜플랜(2차대전 이후 미국의 서유럽 경제부흥계획)을 갖고 있어야 하며, 중기적으로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같은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통일 비용을 위한 '통일세 신설'(허남성 교수) 제안도 있다.

④"남남·남북 사회 통합 방안 강구해야"

남북 사회 통합을 위해 평소 대북 방송 등을 활용, 북한 간부와 주민들에게 통일이 돼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한민족 정체성과 남한 주도 통일의 필연성을 강조해야 한다(서재진 원장)는 주장이다. 남한에서도 통일 비용 등을 놓고 국론이 분열될 수 있기 때문에 "남한 내 의견 수렴이 우선"(남주홍 교수)이라는 견해도 있다.

⑤"미·중·일·러의 협조부터"

김석우 전 통일부 차관은 "독일은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미국의 전폭적 도움이 없었다면 영국·프랑스 등의 반대로 통일을 못했을 것"이라며 "현재 국제 질서 주도국인 미국과의 동맹을 바탕으로 일본, 러시아의 협력을 얻어야 한다"고 했다. 북한 급변 시 중국이 어떤 식으로든 개입할 것이기 때문에 "한반도 통일이 중국 안보와 내정에 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민·관 채널을 통해 꾸준히 중국 측에 전달해야 한다"(김흥규 외교안보연수원 교수)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