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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010.10.09] [다시 포효하는 중화제국] <7·끝> 한국, 어떻게 대처하나

  • 김흥규
  • 2015-10-21
  • 1085

한중협력 경제에만 치중… 北급변 대비 정치-안보 손잡아야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분쟁과정에서 중국이 보여준 모습은 북한 문제로 중국과의 협력관계 구축이 필요한 한국 정부에 커다란 과제를 던지고 있다. 영토 문제를 놓고 중국이 평소 외쳐온 화평발전(和平發展) 외교원칙과는 달리 국제사회와 정면으로 충돌한 중국의 좌충우돌식 행보는 향후 한중관계에서도 언제든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 시급한 정치 및 경제관계의 균형 찾기 

한중수교 이후 중국은 한국의 최대 경제파트너로 성장했지만 정치 및 안보 분야의 협력은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다. 북한을 의식하는 중국 정부가 한국과는 정치적 대화를 기피했고 이를 의식한 한국도 본격적인 접근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은 북한과는 정치군사 분야에선 긴밀한 관계를 과시하고 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방중 시 중국 공산당 최고지도부가 총출동하는 모습도 익숙한 장면이다.

하지만 천안함 문제를 유엔에서 처리하면서 한중 양국의 진솔한 정치대화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천안함 문제는 한국으로서는 핵심 가치와 연결되는 문제였지만 중국에는 부차적인 문제였다”며 “핵심 가치를 둘러싼 논쟁에서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한중관계의 미래에도 중요한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중국이 유엔에서 북한의 손을 들어주면서 한국에 빚을 졌다는 인식을 가진 것도 최근 한중관계에서 중국이 누그러진 태도를 보이는 배경의 하나다.
 

그럼에도 한중 양국의 정치적 관계 발전이 쉬운 일은 아니다.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일 정도로 성장한 중국은 한국은 물론 일본까지 미국과의 동맹을 안보의 축으로 삼고 있는 데 대해 부담을 느끼고 있다. 

신상진 광운대 교수는 “한국이 주도적으로 북한의 급변사태 등 미래를 관리하려면 한미동맹뿐 아니라 중국과의 관계도 중요하다”며 “미중 갈등보다는 미중 협력을 통해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중국과의 포괄적인 관계 재설정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관계 재설정, 중국 제대로 알기부터 

중국 군부는 센카쿠 사건뿐 아니라 천안함 사건 이후 한미 양국의 서해훈련에 대해 경고의 목소리를 내고 미국과 감정적인 충돌을 벌이기도 했다. 중국 군사과학위원회 부비서장인 뤄위안(羅援) 소장은 7월 초 “미국 항공모함 조지워싱턴이 서해에서 한국과 합동훈련을 하면 중국 인민해방군의 훈련용 과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7월 말 베트남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중국과 미국 및 일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국가들이 갈등을 빚기도 했다. 양제츠(楊潔지) 중국 외교부장은 5월 경주에서 열린 한중일 3국 외교장관회담에서 일본이 중국의 핵 군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설전을 마다하지 않았다.

중국의 공세적인 움직임에 대해 김흥규 성신여대 교수는 “중국이 2008년 하반기의 국제적 금융위기 이후 예상보다 빠른 경제 회복과 성장에 따라 어떤 대외정책을 펼쳐야 할지 고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최근 중국 내에서 “△전통적 강대국 지위에 향수를 가진 전통주의자 △중국을 세계가 아닌 지역강국으로 인식하는 발전도상국론자 △새로 부상하는 강대국에 걸맞게 외교정책을 구사해야 한다는 신흥 강대국론자의 논쟁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신흥 강대국론자의 입지가 다시 강화되고 있지만 천안함 사건 및 센카쿠 열도 사건 대처를 두고 전통주의자들이 강경론을 주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기류를 극복하는 방안의 하나는 한중 양국의 젊은 세대 간 교류 증진을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인 1980년대 출생자인 바링허우(80後) 세대는 ‘소황제’로 자라 자존심이 강한 세대로 한국이 중국을 가볍게 대하는 것을 참지 못하며 북한을 정상적인 국가로 보지도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런 중국의 신세대 이해를 위한 교류 증진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한국을 찾은 중국 유학생 8만 명을 지한파로 만드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며 “민간 교류가 돈독해질 때 장기적으로 큰 문제도 풀 수 있다”고 강조했다.


○ 다자적 접근-독자 브랜드 개발을 

중국이 최근 드러낸 외교적 충돌은 현재의 지도부가 군부를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또 중국이 추가 확전을 피한 것은 국제사회의 전반적인 냉담한 기류를 읽었기 때문이라는 평가도 있다. 미국에서도 중국이 너무 빨리 이빨을 드러내 집중적인 견제를 받게 됐다는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 

천안함 사건으로 냉기류를 형성했던 중국이 지난달 말 한중전략대화를 위해 베이징(北京)을 찾은 신각수 외교부 장관 직무대행을 환대한 것도 중국이 하나라도 우군을 얻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왕광야(王光亞) 중국 외교부 상무부부장이 이례적으로 골프회동을 제안하는 친밀감을 나타낸 것도 다른 접근법을 모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도 접근을 신중히 할 필요가 있다. 류우익 주중대사는 부임 직후 “중국이 북한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가 중국 관료들의 얼굴을 붉히게 만들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중국을 북한 문제 해결의 창구로만 보지 않고 ‘전략적 협력 동반자’의 위상에 맞는 세계전략을 논의하는 파트너로 존중할 필요성도 그만큼 시급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북핵 문제나 북한 급변사태, 주변국 정세 등 한반도의 안정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 해결을 위해 다자간 안보협력 채널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한일, 한중, 중-일 영토 문제나 역사 문제 등은 양자외교로는 해결점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동률 동덕여대 교수는 “중국의 힘이 커질수록 한국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며 “이런 격차를 좁히기 위해서라도 한국은 독자적으로 전략적 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문제는 남북관계를 통해 주도적으로 이끌고 △한국의 브랜드를 글로벌 네트워크가 강한 나라로 특화시켜 중국이 어려움을 겪을 때 한국을 통한 해결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 전문가 제언 “한국 외교, 구한말 自强均勢서 갈 길 모색을”

‘스스로 강해야 한다’는 뜻의 자강(自强), ‘길러진 힘을 바탕으로 외세를 균형 있게 활용해야 한다’는 의미의 균세(均勢).  

전문가들은 19세기 말 조선 주변에서 소용돌이치던 동북아 정세에 대응하기 위해 개화파가 제시한 ‘자강과 균세’의 비전에서 한국 외교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서진영 고려대 명예교수는 “개화파의 실패한 역사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화파는 자강과 균세를 이이제이(以夷制夷), 즉 한 세력을 이용해 다른 세력을 제어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이를 바탕으로 1884년 갑신정변을 통해 근대적 개혁을 시도했지만 3일 천하에 그쳤고 조선 내부에서 친청(淸)파, 친일파, 친러파 등으로 갈라져 반목하면서 힘을 결집하지 못했다. 이렇게 정신없이 싸우다 국제정치의 냉정한 흐름을 읽지 못한 채 국권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조선은 내부의 분열로 균세는커녕 자강도 이뤄내지 못했다”며 “부상하는 중국과 변화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균세를 이뤄내려면 외교 전략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19세기 말 개화파들이 자강과 균세를 주장하면서 모델로 삼은 영세중립국 스위스의 사례도 생각해볼 만하다. 서울대 명예교수인 김용구 한림대 한림과학원 원장은 “19세기 유럽 각국은 프랑스의 팽창을 막기 위해 스위스(1815년)를 영세 중립화하는 데 찬성했다”며 “이후 스위스는 군사력을 꾸준히 키워오면서 지금까지 중립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현재 상황에서 한국이 스위스와 같은 중립화를 하기는 어렵다”며 “다만 중국이 언제든 기존 세계규범을 파괴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한국이 중국에 대해 독자적인 전략적 가치를 유지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가치를 가질 수 있는 방안으로 서진영 교수는 “동남아시아의 지역협력기구인 아세안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했다. 아세안의 개별 국가는 중국과 게임이 안 될 정도로 약하지만 하나의 협력체로 모이자 동남아시아 전체를 적으로 만들 수 없는 중국에 다소나마 견제력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한국으로서는 한중일 3국 협의체를 만들어 이 기구를 통해 한국이 중개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