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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2010.10.08] 咄咄逼人 中國? 돌돌핍인: 기세가 등등하다

  • 김흥규
  • 2015-10-21
  • 1082

유비는 들고 있던 수저를 떨어뜨리며 짐짓 깜짝 놀라는 척한다. 조조가 “지금 영웅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은 그대와 나 둘뿐이오”라고 말하자 이렇게 행동한 것이다. 졸장부인 자신을 가당치 않게 영웅이라고 하니 소스라칠 만큼 황송하다는 시늉이었다.

중국이 부상하면서 ‘중국위협론’도 커지고 있다. 한 중국인 남성이 센카쿠 열도 분쟁이 벌어진 뒤 9월18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항일시위에서 중국 국기를 휘감고 있다. REUTERS/Aly Song

화평굴기냐 돌돌핍인이냐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 서기 199년 중국 중원에서 조조가 유비를 불러 시대의 영웅을 논할 때 나오는 풍경이다. 당시 세력이 약해 조조의 식객 노릇을 하던 유비는 몸을 낮추고 어리석은 척하며 경계심을 풀게 했다. 천하를 도모하려는 큰 뜻이 없는 듯 속이려 도회지계(韜晦之計)를 쓴 것이다. 도회는 도광양회(韜光養晦)로 하면 뜻이 분명해진다. ‘칼날의 빛을 칼집에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는 뜻이다. 덩샤오핑(1904~1997)이 개혁·개방을 추진한 이후 중국은 대외적으로 불필요한 견제와 간섭을 피하고 내부적으로 국력을 키우기 위해 도광양회를 대외정책의 기본으로 삼았다. 4세대 지도부인 후진타오(2003년 이후 국가주석) 체제에서 화평굴기(和平堀起·평화스러운 가운데 우뚝 일어선다)가 새로운 외교노선으로 떠올랐지만, 도광양회는 중국 외교의 기본 원칙으로 유지돼왔다.

그런데 요즈음 중국의 외교정책을 일컬어 ‘돌돌핍인’(咄咄逼人)이라는 말이 나온다. 돌돌은 놀라서 이상히 여기는 소리 또는 모양으로, 기예 등이 뛰어난 것을 보고 경탄함을 뜻한다. 기세가 등등하게 힘으로 몰아침을 의미한다. 중국 외교정책이 근육질을 드러내는 ‘힘의 외교’를 본격화했다는 것이다. 직접적 계기는 최근 벌어진 중-일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이다. 지난 9월7일 센카쿠 열도 인근 해상에서 중국 어선이 일본 순시선을 잇따라 충돌한 뒤 중국 선장이 체포되면서 빚어진 이번 사태는 24일 일본이 선장 석방을 발표하면서 ‘백기투항’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중국이 △가스전 개발 교섭 연기 △기업 직원 1만 명 일본 여행 계획 취소 △각료급 이상 교류 중단 △원자바오 총리의 즉시 무조건 석방 요구 △희귀금속 희토류 수출 금지 △일본인 4명 조사 등 강경한 태도를 취하면서 “국내법에 따라 엄정히 처리한다”던 일본을 힘으로 굴복시켰다는 해석이다. 이후 중국위협론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미국과 함께 ‘G2’라 불리는 위상에 맞게 행동하라는 중국책임론도 제기됐다. 중국이라는 세계경제 2위의 공룡을 의식할 수밖에 없지만, 혹 “호들갑”(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 교수)은 아니었을까? 차분히 되짚어보자.


“중국위협론은 미래에 대한

상상의 위협 인식이자 조작된 우려.”

-고성빈 제주대 교수

중국의 센카쿠 열도 분쟁 대응 태도에는 분명 자신감이 묻어났다. 미국발 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 세계경제가 중국의 성장에 의존하는 현실이 드러났고, 자신의 달라진 위상을 확인했다. 힘의 맛을 봤고, 높아진 위상만큼 목소리도 커졌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촛불을 켰다고 119에 신고할 일은 아니다. 중국은 분명 공세적이었지만, 중국위협론을 떠들 만큼 과연 과거와 달리 돌변해 위협적으로 행동했는가? 주재우 교수는 “중국이 대외적으로 발언하거나 행동을 취하면 권력, 힘, 위협 등의 수식어를 갖다 붙인다”고 지적했다. “댜오위다오 문제를 중국책임론으로 연결짓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김흥규 성신여대 정치외교학 교수)는 지적도 나온다. 호들갑 떨면서 중국의 위협을 과장하고 지나친 ‘중국 때리기’로 흘렀다는 비판이다.

REUTERS/Nir Elias (CHINA)

“역사적 인식 탓에 더 커 보여”

중국의 강경 대응은 사실 예견됐다. 중국은 2009년 미-중 전략 및 경제대화에서 핵심 이익을 분명하게 제시했다. △중국 공산당의 집정 능력 △영토와 주권 △지속적인 경제발전 및 안정과 관련해서는 절대 양보하지 않을 것이며 상호 존중하기를 희망했다. 센카쿠 열도 분쟁은 중국으로서는 영토와 주권에 관한 핵심 이익을 건드린 사항으로 절대 양보하거나 타협할 사안이 아니었고 ‘하던 대로 했다’고 볼 수 있다.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중국은 이미 고지된 메뉴얼대로 움직였고, 예상된 것인데 마치 예전에는 그렇지 않다가 힘을 과시하는 것처럼 과장돼 있다”고 분석했다. 돌돌핍인이 아니라, 화평굴기 속에서 그동안 병행된 유소작위(有所作爲·필요한 곳에서 적극적으로 행동한다)라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왜 호들갑을 떨었을까? 중국위협론은 세계 2위 경제력에 특히 천안함 사태의 잔상이 덧씌워진 측면이 있다. 한국이 천안함 사태 국면에서 중국을 무시한 뒤 중국이 불만을 터뜨리고 이명박 정부와 갈등을 빚으면서 ‘어깃장을 놓는다’ ‘고분고분하지 않다’거나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부정적 인상이 남았다. 동북공정 논란까지 머릿속에서 튀어나왔다. 중국은 화평굴기론을 통해 많은 국가들과 더불어 평화롭게 부상하겠다는 뜻을 수차례 밝혀왔다. 원자바오 총리는 9월23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중국의 개발은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며 어느 누구를 위협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중국은 강대국이 된 뒤에 헤게모니를 추구했던 과거 강대국들의 전철을 결코 뒤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왜 세계는 중국을 위협적으로 여기는 것일까? “댜오위다오 문제를 책임론으로 연결짓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는 김흥규 교수의 지적처럼, “사전에 선입견을 갖고 본 것”은 아닌가?

‘제 눈의 안경이다.’ 빨간색 색안경을 끼고 보면 세상이 온통 빨갛다. 국제정치도 마찬가지다. 인식의 문제다. 친구냐 적이냐, 보기에 따라 180도 달라진다. 중국위협론은 중국이 급속한 경제발전을 토대로 동아시아에서 패권을 추구하고, 미국 주도의 패권적 평화 체제의 상대적 쇠퇴 이후에 세계 최고 지도국으로 등장할 것에 대한 시기와 경계심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을 적대시하다 보니 위협 대상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희옥 교수는 “중국위협론의 구조는 힘과 능력과 달리, 역사적 인식의 문제인 탓에 중국의 위협이 더 커 보인다”고 지적했다.

‘중국위협론에 대한 비판적 사유: 허위의식의 그물’이라는 논문은 이런 경향을 꿰뚫고 있다. 고성빈 제주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이 논문에서 중국위협론이 “미래에 대한 상상의 위협 인식이자 조작된 우려”라고 지적한다. 그는 “중국에 대한 타자화, 경계심 등 복합적 감정이 응집된 결과로, 서구 중심주의 역사와 세계 만들기의 책략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중국위협론은 제국과 식민의 경험을 가진 양 진영- 구미·일본 대 중국- 이 상대를 경계하고 타자화하려는 사고에 여전히 지배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서구에서 중국의 이미지를 악마화하고 상대적으로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천사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신장위구르, 티베트, 홍콩 민주화, 대만, 북한 같은 중국 주변이나 국내의 문제를 부각시키면서 중국의 위협에 대한 연상 효과를 부추긴다. “미국은 중국의 부상은 위협적이라는 허위의식의 그물을 쳐놓음으로써 패권 체제를 정당화하고 유지하는 기제를 사용하고 있다”는 게 고 교수의 분석이다. 중국의 부상은 세계 패권 구도의 변화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미국은 특히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위안화 인상 압박 등 ‘중국 때리기’에 나서며 견제를 강화하고 있다. 일본도 상대적 쇠락이나 과거에 대한 복수를 두려워하는 측면이 있다. 한국도 덩달아 이웃 중국을 편견에 사로잡힌 채, 냉전의 색안경을 끼고 서구와 일본 중심의 시각만으로 재단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REUTERS/China Daily

그 덕에 웃은 것은 미국

실제로, 센카쿠 열도 분쟁에서 불거진 중국위협론 덕에 웃은 것은 미국이다. 주변국 사이에 중국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미국이 동아시아에 개입할 절호의 빌미가 됐기 때문이다. 결국 ‘믿을 것은 미국밖에 없다’는 효과가 작용한 결과다.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9월27일 “중-일 댜오위다오 분쟁에서 겉보기에는 중국이 압도적인 승리자인 것 같지만, 진정한 승자는 미국”이라며 “중국이 얻은 것은 선장 석방뿐이다. 아시아에서 미국의 역할이 강화되고 중-일 관계는 복잡해졌으며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 사이에도 이상신호가 있는 반면, 미국은 큰 전략적 기회를 확보했다”고 분석했다. <신화통신>은 26일 “미국의 ‘아시아 귀환’이 경제와 외교전선, 군사전선 등에서 전방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중국과 영토분쟁을 빚는 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해 중국의 팽창을 견제한다는 해석이다. 미국은 중국의 영토분쟁만 놓고도 개입할 거리가 여럿이다.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시사군도(西沙群島)를 두고 대만·베트남과, 난사군도(南沙群島)를 놓고서는 베트남·대만·필리핀 등과 갈등을 빚고 있다.

최근 일련의 흐름은 중국이

대국에 걸맞은 국제적 위상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은 미국 중심 세계 기구에서

더 많은 발언권을 요구하고 있다.

중국위협론이 비등하지만, 사실 중국은 수많은 약점을 가진 ‘취약한 강대국’이라는 분석도 있다. 원자바오 총리는 9월23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중국은 개발도상국에 머물고 있다. 이것이 진정한 중국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G2라고 하지만, 원자바오 총리가 이날 밝힌 대로 1억5천만 명의 국민이 유엔이 설정한 빈곤 기준 이하의 삶을 살고 있다. 심각한 불평등과 부정부패, 환경악화와 자원부족, 민주화 압력과 56개의 민족주의 분출 등 사회적 긴장 요소는 이미 터져나오고 있다. 중국은 최소한 다음 한 세대 동안 이런 심각한 국내 문제에 대처하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밝히고 있다. 엄살만으로 치부하기에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최근 일련의 흐름은 중국이 대국에 걸맞은 국제적 위상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은 미국 중심의 유엔안전보장이사회와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무역기구(WTO)에서 더 많은 발언권을 요구하고 있다. 중국은 국제질서를 무너뜨리는 도전자가 아니라, 중국의 위상에 맞는 공정하고 합리적 국제질서 구축을 바란다는 뜻을 밝혀왔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대국굴기(大國?起·큰 나라로 우뚝선다)를 외치고 있다. 이태환 세종연구소 지역연구실장은 “‘G2로 불리는 마당에 만날 도광양회만 떠들면서 스스로를 낮출 필요는 없지 않느냐, 우리의 위상에 맞게 가자’는 목소리도 중국 안에 있다”고 설명했다. 군사비 증가 추세가 주춤해지면서 군부 등 일부 강경파가 목소리를 냈다는 분석도 있다.

“한 중국 학자는 돈은 중국에서 벌고

미국과의 동맹 강화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한국의 ‘이중적 정체성’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

‘취약한 강대국’ 중국에 돌돌핍인이 아니라 여전히 도광양회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김흥규 교수는 “중국은 국제사회의 지위와 실질적 능력과 책임 사이에 괴리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며 “중·장기적인 중국의 여러 문제를 고려할 때 평화적 부상이 국익에 부합하는 길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치러야 할 대가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은 미국이 쇠락하고 있다지만, 미국이 여전히 최강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덩샤오핑은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향후 50년간 미국과는 싸우지 말라”는 유훈을 남겼다. 중국으로서도 G2의 책임보다는 개발도상국의 이점을 더 누리는 게 유익하다. 이동률 동덕여대 교수(중어중국학)는 “중국도 결국 1인자가 되고 싶겠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너무 노골화하면 승산이 없고, 외교 비용이 너무 커져서 아직은 화평굴기로 갈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중국과 일본은 선장 석방 직후 해빙 분위기에 들어갔다. 중국은 9월28일 센카쿠 열도 분쟁 이후 사실상 중단했던 희귀금속 희토류의 대일 수출 통관 작업을 재개했다. 또 군사지역에서 불법 촬영한 혐의로 체포한 일본인 4명 가운데 3명을 30일 석방했다.

센카쿠 열도 분쟁은 중국의 압승으로 끝났다. 영해 침범 혐의로 일본에 구속됐다가 석방된 중국인 선장 잔치슝이 9월27일 푸젠성 진장시 자신의 고향마을로 돌아와 성대한 환대를 받고 있다. REUTERS/Kyodo

 

남중국해 영토분쟁 지역

미국과 일본에 치우친 외교정책이 문제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한국 외교의 방향 설정이다. 한국이 중국위협론에 휘말린 채 한-미 동맹에만 치우친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위협론은 한-미 동맹 틀 속에서 중국을 종속변수로 본 결과다”(이희옥 교수)는 비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안인해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중국위협론에 편승해 현 정부의 정책이 미국과 일본에 치우쳤다는 시각이 많다”며 “중국위협론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봐야 한다. 동북아 힘의 균형을 볼 때 중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균형된 시각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흥규 교수도 “일방적으로 중국을 적대시하는 외교보다는 갈등이 가져오는 비용에 대해 고민하고 협력이 가져오는 이익에 대해 긍정적이고 복합적으로 분석해서 양자외교를 추진해야 한다. 단순히 동맹외교로는 풀 수 없는 세계로 간다”고 지적했다. 한-미 동맹이 중요하지만, 중국을 적대시하는 일방적 대미종속 외교는 해법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최근 미국의 대이란 제재 국면에서도 대미 편중외교의 결과로 미국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중국에서는 한국이 소외될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8월에 출간된 <중국의 내일을 묻다>는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와 중국 최고 지성들의 토론을 담은 책으로 주목받았다. 이 책에서 문 교수는 “‘중국이란 위협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기성찰이 필요할 것 같다”며 “돈은 중국에서 벌고 미국과의 동맹 강화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한국의 ‘이중적 정체성’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한 중국 학자의 지적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진찬룽 중국 인민대학 국제관계학원 부원장의 말은 여러가지 면에서 의미심장하다. “20년 후 중국의 변화는 중국에 대한 외부 세계의 태도에 달려 있다. 중국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중국은 비교적 온화한 모습을 보일 것이고, 아니라면 매운 분노하는 중국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