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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2023.10.23] 중국이 호시탐탐 노리는 곳… 해양 패권 경쟁이 시작됐다

  • 김흥규
  • 2023-11-17
  • 62

대만 진먼다오(金門島)에 태풍과 함께 장대비가 쏟아졌다. 바다 건너 중국 항구도시 샤먼 시가지가 굵은 빗방울 사이로 어렴풋이 형체를 드러냈다. 진먼과 샤먼을 이어주는 '소삼통(小三通: 통항·교역·우편 왕래)' 뱃길은 이미 끊어진 상태였다.

 

거제도의 절반 크기인 진먼다오는 중국 본토와 불과 4㎞ 거리다. 반면 대만 본섬과는 200㎞ 넘게 떨어져 있다. 대만해협 건너 중국 땅에는 ‘일국양제 통일중국'(一國兩制統一中國ㆍ한 국가 두 체제로 중국을 통일하자)이 적힌 대형 입간판을 세웠다. '하나의 중국' 원칙으로 대만을 흡수 통일하려는 야심이 담겼다.

 

한국의 연평도와 비슷한 곳이다. 침공 위협에 항상 노출돼 있다. 중국이 호시탐탐 노리는 ‘점령 1순위’ 지역이다. 반면 대만에 진먼다오는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막기 위한 교두보다. 반드시 사수해야 할 전략적 요충지로 꼽힌다. 인구 10만 명의 섬에 육군 소장이 지휘하는 병력 3,000여 명이 배치돼 있다.

한국일보가 8월 31일 진먼다오를 찾았다. 곳곳에는 중국에 맞서 싸운 흔적이 또렷했다. 여전히 총안구가 설치된 벙커를 비롯해 해변에는 중국군 상륙을 저지하기 위한 ‘용치(대전차 장애물)’가 빼곡했다. 1954년과 58년 두 차례 대만해협 위기 때 무차별 공격당하면서도 끝내 섬을 지켜낸 훈장과도 같았다.

주민 샤오리핑(53)은 “어렸을 때 포격을 겪었는데, 포탄이 어디에 떨어질지 알 수 없어 오후 7시 이후엔 불도 켜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1981년까지는 매달 한 번꼴로 포격을 퍼부었다"면서 중국에 대한 공포가 아직도 뇌리에 박혀 있다고 치를 떨었다. 진먼다오는 1992년까지 37년간 계엄령을 풀지 못했다.

중국의 잇단 도발...다시 불안해진 진먼다오

이처럼 일상화된 진먼다오의 불안은 한층 고조되는 분위기다. 중국은 지난해 8월 낸시 펠로시 당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항의해 무인기 19대를 일주일간 12차례나 진먼다오에 보냈다. 군사경계선인 '금지·제한수역'을 넘어섰다. 우리로 치면 군사분계선(MDL)을 침범한 셈이다.

이를 계기로 긴장감이 커지자 국제사회 시선이 대만해협으로 쏠렸다. 중국이 '힘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에 나서며 수시로 무력시위를 벌이던 차에 진먼다오의 상황이 기름을 부은 것이다.

중국의 확장, 미국의 포위...인도태평양 패권 갈등

대만해협은 동북아에서 인도태평양으로 진출하기 위한 해상통로다. 지정학적·군사적으로 가치와 중요성이 막대한 곳이다. 인도태평양으로 세를 넓히려는 중국이 언젠가 반드시 차지해야 할 전략적 요충지로 통한다. 반면 미국과 일본으로서는 중국에 절대 넘겨줄 수 없는 최전방 방어선이나 다름없다. 한국도 미일 양국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특히 미국은 대만해협 유사시 군사개입 의지를 누차 밝혀왔다. '아시아태평양 사령부' 명칭을 2018년 '인도태평양 사령부'로 바꾸고, 인도와 일본을 포함한 주변국과 공조해 중국을 견제하겠다고 천명했다. 대만해협이 대중 봉쇄와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인 셈이다. 김지용 해군사관학교 교수는 "미국은 경제적·군사적으로 중국에 상당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며 "미국의 인태 전략에는 동맹국과 함께 중국을 포위해가려는 의지가 담겼다"고 평가했다.

중국과의 해군력 격차가 줄어들면서 미국의 절실함이 가중됐다. 김 교수는 "2017년부터 중국과 미국 간 해군력 역전 현상이 가시화됐다"며 "2020년에는 중국이 함정 수에서 미국을 추월했다"고 분석했다. 태평양 해역에서 힘의 공백이 생기자 중국이 그 틈을 노리기 시작했고, 미국이 이에 적극 대응하면서 인도태평양의 중요성이 부각됐다는 것이다. 이 같은 '힘의 공백'을 인식한 영국 프랑스 인도 등 국가들도 일제히 인태 구상을 내놓으며 동참하는 추세다.

尹 "평화로운 인도태평양 지역을 만들고자"

한국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한·아세안(ASEAN) 정상회의에서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했다. 현 정부의 외교 독트린이다. 당시 윤 대통령은 "힘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은 결코 용인돼서는 안 될 것"이라며 "규칙에 기반해 분쟁과 무력 충돌을 방지하고, 자유롭고 평화로우며 번영하는 인도태평양 지역을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중국을 비판할 때마다 사용하는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이라는 표현을 고스란히 인용한 것이다. 미국과 힘을 합쳐 중국의 군사행동에 맞서겠다는 선언이었다.

이 같은 기조는 올 4월 한미 정상의 워싱턴 선언과 8월 한미일 정상회의를 거치며 훨씬 공세적으로 발전했다. 한미일 3국은 북핵·미사일 위협 대응에 그치지 않고 대만해협을 넘어 남중국해 분쟁에도 함께 공조하기로 했다. 한국의 군사행동 범위가 한반도를 벗어난 셈이다.

정부의 구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2월 인도태평양 전략 이행계획을 추가로 발표할 예정이다. 한미일 '불법어업 근절을 위한 행동준칙 태스크포스(TF)'를 비롯해 군수물자 협력 강화를 포함한 한미일 3각 협력 구상이 다양하게 담길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인태 전략 강한 동조...최선일까?

정부가 야심 차게 인도태평양 전략을 내놓으며 '글로벌 중추국가'의 뼈대를 완성했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결국은 미국의 인태 전략에 동조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외교부 1차관을 지낸 최종건 연세대 교수는 "(문 정부의) 신남방정책은 우리의 독자적 외교정책이었다"고 평가한 뒤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인태 전략에 동참할수록 우리만의 독자성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연구센터장은 "윤석열 정부는 구체성이 결여된 상태에서 미국의 레토릭(수사)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중국과의 관계 설정도 문제다. 정부의 인태 전략은 중국을 명시하지 않고, 특정 국가를 배제하지도 않는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그뿐이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인태 전략을 추진하는 일본 호주 인도네시아 등 다른 국가들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이들 모두 현상 변경을 추구하는 중국을 견제한다는 점에서 방향이 같지만, 중국을 압박하는 데 주력해온 미국의 외교안보 셈법을 자국의 전략에 그대로 적용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추구 방향, 구체화하는 작업 필요하다"

일본의 경우 1980년대부터 동남아시아와 인도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원조정책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 동남아 국가들의 지지와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간파했다. 베트남 전쟁 등의 여파다. 서태평양 일대에서 미국의 외교 공백도 인지했다. 이에 일본은 아세안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법에 근거한 대만해협과 남중국해'를 추구하면서도 "특정 국가를 배제하지 않는다"며 중국과 전략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지렛대를 동시에 강화해왔다. 태평양도서국가들과는 '서태평양공동체'를 구성해 외교지형을 넓혔다.

인도는 미국, 일본과 함께 인도태평양 개념을 만든 당사자다. 그럼에도 인도는 '비동맹 외교' 전략에 기반해 미국과 중국 중심이 아닌, 다자협력주의를 바탕으로 인도태평양 해역 일대의 질서 유지를 추구하고 있다. 프랑스는 중국이 민감해하는 '항행의 자유작전'을 미국과 가장 먼저 실시했다. 하지만 독자적인 해양 전략을 토대로 미국의 대중국 견제 기조에 과도하게 편승하지 않으면서 중국의 해양 진출을 통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인도태평양을 차지하기 위한 미중 양국의 경쟁은 갈수록 격해지고 있다. 청와대 국가안보회의(NSC) 자문 경험이 있는 한 전직 해군 제독은 "대만해협 문제는 더 이상 한반도 안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제가 됐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지난해 8월과 올 4월 대만 포위 훈련에 나섰을 당시 중국의 군사행동이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중러 양국의 해상훈련으로 이어졌다. 대만을 포함한 인도태평양의 상황이 한반도 안보와도 직결된다는 의미다. 우리가 인도태평양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이 추구하는 해양 안보는 무엇이고, 이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 어떤 정책결정 과정을 거쳐 방향을 잡을 것인지 구체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