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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22.08.23] 尹정부 100일 '압박·견인' 병행한 中…"당당한 실리외교 필요"[한·중 수교 30년]

  • 김흥규
  • 2022-09-16
  • 171

지난 17일로 출범 100일을 넘어선 윤석열 정부에 대해 중국은 압박과 견인을 섞어 구사하는 ‘밀당 외교’를 펴고 있다. 한·미동맹을 강조한 '가치외교'를 천명한 윤석열 정부에 예우를 갖추면서도, 이해가 걸린 사안에 대해선 결례를 불사하고 강력한 의사를 표하는 패턴을 반복하는 방식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식에 ‘오른팔’ 왕치산(王岐山) 부주석을 특별대표로 보냈다. 역대 한국 대통령 취임식에 파견한 인물 중 최고위직이다. 그만큼 격식을 갖췄다는 의미다.

 

그런데 윤 대통령을 예방한 왕 부주석은 1분가량의 윤 대통령 발언 직후 8분에 걸쳐 ‘5개 건의사항’을 조목조목 언급했다. 윤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하는 자리였음에도 '통보'에 가까운 형식으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체계 배치와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 등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외교적 결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모두 발언이 언론에 공개된다는 것을 모를리 없는 중국의 의도적 행동이었다.

중국은 상대적으로 민감도가 낮을 상황에선 이례적일만큼 윤석열 정부를 예우하고 있다.

6월 30일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한국과 일본은 아시아의 중요 국가이자 중국과 상호 중요한 협력 동반자로서 광범위한 공동이익을 보유하고 있다”며 “각측이 양자 관계를 발전시키고 아시아의 평화롭고 안정적 발전을 수호하는데 공동으로 노력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당일밤 중국 당국이 공개한 공식 문서에선 ‘일본’이 빠졌고, ‘각측’은 ‘한국측’으로 수정됐다. 한국만 협력 동반자이고, 관계를 발전시킬 대상 역시 한국으로 국한하겠다는 메시지로 해석됐다.

외교가에선 “실수가 아니라, 미ㆍ중 갈등 국면에서 중국은 한국이 필요하다는 의미를 드러낸 대목”이란 평가가 나왔다. 자오 대변인은 다음날인 7월 1일 브리핑에서도 한국에 대해 “중요한 협력 파트너”라고 하면서도, 일본엔 “군국주의 침략 역사를 진정으로 반성하라”는 논평을 냈다.

1주일여 뒤인 7월 7일엔 박진 외교장관이 G20(주요 20개국) 외교장관 회담이 열린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처음으로 대면 회담을 했다.

장소는 한국측이 제안한 리조트였다. 호스트도 한국이 맡았다. 중국은 제3국에서 열리는 회담에서 미국을 제외한 상대국에 호스트 지위를 내주는 경우가 거의 없다. 외교가에선 “의전을 중시하는 중국의 의도가 담긴 행동”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러한 중국의 태도는 '친중 성향'이란 평가를 받았던 문재인 정부 초기와 차이가 난다.

시 주석은 2017년 문재인 전 대통령의 특사로 방중했던 이해찬 전 총리를 만나면서 자신은 상석에 앉고, 이 전 총리를 테이블 옆에 앉도록 했다. 이 장면은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의 김무성 특사와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박근혜 특사가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주석과 나란히 앉았던 것과 비교되며 “의도된 기선제압에 넘어갔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시 주석을 포함한 중국 지도부는 그해 12월 문 전 대통령이 3박 4일간 중국을 국빈방문했을 때도 10차례의 식사 중 단 2번만 문 대통령과 식사 회동을 했다. ‘혼밥 논란’으로 이어진 당시 의전은 문재인 정부의 외교를 ‘대중 굴종 외교’로 규정하는 프레임의 근거가 됐다.

반면 중국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분, 특히 국내적 반대 여론이 강한 사드에 대해선 윤석열 정부에 매번 강경한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지난 9일 박진 장관은 중국에서 왕이 부장과 두 번째 대면 회담을 했다. 회담은 화기애애했고, 외교부에서도 “성공적”이란 평가가 나왔다. 특히 사드에 대해선 “사드가 양국관계의 걸림돌로 작용해선 안 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는 입장을 동시에 내기도 했다.

그런데 회담 직후 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한국이 사드와 관련 “3불(不) 1한(限)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기존의 ‘사드 3불(사드 추가 배치ㆍ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 참여ㆍ한미일 군사동맹을 하지 않겠다는 방침)’에 더해, 한국에 이미 배치된 사드운용까지 제한을 둔다고 했다는 정부 차원의 첫 주장이었다.

왕 대변인의 브리핑을 근거로 중국 매체는 “한국이 3불1한을 선서(宣誓)했다”고 보도했다. 선서는 '공개적 맹세'를 뜻한다. 그런데 중국 국민들을 상대로 한 중국 매체의 보도가 나간 이후인 당일 저녁, 중국은 해당 발언의 서술어를 ‘선서’가 아닌 ‘선시(宣示)’로 명기해 외교부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선시는 ‘널리 알린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중국이 이중적 태도와 관련 “높아진 한국의 국격에 맞는 새로운 한ㆍ중 관계를 정립할 적기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는 “중국도 미ㆍ중 경쟁 속에서 한국을 몰아세울 경우 완전히 미국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이런 상황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며 “한국이 중국이 원하는 일부를 보였을 때 중국이 기대치보다 높은 메시지를 내는 상황을 활용해 전략적 성과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사드에 대해서도 “사드는 미국의 안보 시스템의 일부라는 점을 중국도 이해하고 있다”며 “한국이 논란에 직접 대응할 게 아니라 미·중이 직접 논의하도록 유도하는 편이 현명하다”고 했다.

우수근 한ㆍ중글로벌협회 회장은 “중국 외교는 태도와 매너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중국 국내용 정치적 메시지에 과도하게 반응하기보다는, 중국이 한국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점을 활용한 당당한 실익외교를 구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