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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21.05.26] 미·중 대결 ‘대만해협’에 발딛었다···정부 오락가락 땐 외교 참사

  • 김흥규
  • 2021-06-24
  • 365

지난달 2일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왕이(王毅) 외교부장과 회담을 위해 중국 푸젠성 샤먼(廈門)에 갔다. 샤먼은 대만을 코앞에 마주보는 해안 도시로 정 장관의 취임 후 첫 출장이었다. "베이징 회담은 방역 상황상 어려웠고, 샤먼은 한국과 직항이 있었다"는 게 당시 정부 당국자의 설명이었다. 대만을 둘러싸고 미ㆍ중 신경전이 첨예한 가운데 미국을 자극할 수 있는 행보란 우려가 나왔다.
 

반면 이로부터 불과 한달여 뒤인 지난 21일(현지시간) 한ㆍ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엔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문제를 적시하며 대만 문제를 놓고 미국에 더 다가서는 모습을 보였다. 정부는 과거에도 "양안관계의 발전을 지지한다"는 원론적 입장은 여러 차례 표했지만, '대만'에 대한 메시지를 낸 적은 거의 없다. 앞서 지난 2014년 박근혜 정부 당시 한ㆍ중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대만은 중국 영토라는 중국 입장에 충분한 이해와 존중을 표시한다"며 중국 정부의 ‘하나의 중국’ 원칙을 재확인해준 정도가 전부다. 

 

한ㆍ미 공동성명에 "대만해협 평화ㆍ안정"
워싱턴 내 떠오르는 '중국의 대만 침공설'
정부 입장 번복 땐 외교적 파장 불가피

 
한ㆍ미정상회담의 '대만 해협'을 놓고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이 회담 막판까지 공동성명에 꼭 넣자고 주장한 반면 중국은 공동성명을 놓고 "불장난"이자 "내정 간섭"이라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런 대만해협 문제에 문재인 정부가 발을 디딘 만큼 향후 오락가락 행보를 보였다간 외교적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제언이 나오고 있다.

‘하나의 중국’ 폭발력, 대만해협

대만해협은 중국 대륙과 대만 사이에 있는 길이 400km, 폭 150~200km 정도의 해역이다. 중국과 대만의 관계를 뜻하는 ‘양안 관계’(兩岸關係ㆍCross-Strait)도 이곳을 사이에 두고 양쪽이 마주보고 있다는 뜻이다. 해협 중간선은 중국과 대만을 가르는 사실상의 군사분계선이다.
중국·대만 사이 중간선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중국·대만 사이 중간선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하지만 중국은 이에 구애받지 않고 군함과 군용기를 수시로 띄운다. 대만이 자국 영토니까 대만 해협도 당연히 자국 앞바다란 논리다. '탈중국'과 '대만 독립'을 내세우는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지난달 15일 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표단을 만나 "중국이 대만 주변 바다와 상공에 역내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대만 또한 중국의 군사행동에 전투기 등을 띄워 맞대응하곤 한다.
 
미국은 어느 나라든 이 해역을 독점해선 안 되고 누구나 자유롭게 항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자국 함정을 대만해협에 보내 해역을 통과하는 '항행의 자유' 작전을 펼치는데, 지난해에만 12번,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올해 들어서도 5번 이뤄졌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한 달에 한번 꼴로 늘어난 셈이다.

'중국의 대만 침공설'도 계속

외교가에선 바이든 행정부 들어 워싱턴 내에서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이 비중있게 검토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중국의 대만 침공설이 어제 오늘 이야기는 아니지만 미 싱크탱크 등에선 실제 미국이 중국의 침공으로부터 대만을 보호해낼 수 있을지 따져보는 '워 게임' 등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지난 3월 미 인도태평양사령관 청문회에서도 중국이 예상보다 빨리 대만을 침공할 능력을 갖춰 6년 내에 실제 행보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됐다.
 
미국이 일본과는 52년만에, 한국과는 역대 처음으로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대만을 꼭 명기하자고 주장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쿼드(Quad)가 지금은 군사적 성격을 숨기고 있지만 사실상 대만 해협을 둘러싼 잠재적 미ㆍ중 충돌에 대비하는 목적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미국은 1979년 중국 수교에 따라 대만과 단교하기 전, '대만관계법'을 만들어 유사시 의회가 참전을 권유해 군사적 개입 가능성을 열어뒀다.
지난 21일(현지시간) 한ㆍ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 및 "남중국해의 평화와 안정, 항행ㆍ상공비행 자유" 등 내용이 적시됐다. 밑줄은 기자가 표시. [청와대 홈페이지 캡쳐]

지난 21일(현지시간) 한ㆍ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 및 "남중국해의 평화와 안정, 항행ㆍ상공비행 자유" 등 내용이 적시됐다. 밑줄은 기자가 표시. [청와대 홈페이지 캡쳐]

다만 대만해협을 둘러싼 긴장이 미ㆍ중 모두 국내정치적 목적에 따른 제스쳐에 그칠 거란 전망도 있다. 또한 대만이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인 TSMC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어느 쪽도 대만을 쉽게 건드릴 수 없다는 분석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일 기사에서 "TSMC는 미ㆍ중 모두에게 필수불가결한 존재"라며 중국의 대만 침공 시 세계 반도체 시장에 미칠 후폭풍을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미ㆍ중 사이 전략적 모호성을 내려놓은 건 고무적이지만 자칫 외교 원칙이 정세에 따라 조변석개(朝令暮改)하는 듯한 인상을 주지 않는 게 관건이라고 지적한다. 제임스 김 아산정책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이 한ㆍ일에 대한 확장억제력 제공 강화 등 동맹 중심의 안보 협력에 집중하는 가운데 한국이 여기서 이탈하는 움직임을 보여선 안 될 것"이라며, "이번 한ㆍ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이 길고 구체적이었다는 건 그만큼 미국으로선 한국 차기 정부 등에서도 일관적인 모습을 보이길 바란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또한 중국의 날선 감정을 달래기 위한 카드도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김흥규 아주대 미ㆍ중 정책연구소장은 "미국이 주도하는 탈중국 프레임에 동참하는 데 따른 부수적 결과는 현 정부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클 수 있다"며 "한국으로서는 외교적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상당한 도전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출처: 중앙일보] 미·중 대결 ‘대만해협’에 발딛었다···정부 오락가락 땐 외교 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