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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2019.05.24] “中, 디커플링 통해 국제질서 재편” - “30년내 패권장악 불가”

  • 김흥규
  • 2020-03-05
  • 789

▲  신정승 전 주중 대사(현 동서대 중국연구센터장·왼쪽)와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이 지난 21일 문화일보 5층 편집국 회의실에서 열린 ‘기로에 선 차이나 파워’ 기획시리즈 대담에서 중국과 한·중 관계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⑨ G2 전략경쟁 시대 ‘中 어디로’… 전문가 대담 <끝>

- 대담 : 신정승 前 주중 대사(現 동서대 중국연구센터장),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

- 사회 : 신보영 정치부 차장

올해 수교 27년을 맞은 한·중 관계가 2016년 7월 박근혜 정부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결정 이후 냉각기에서 여전히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양국은 2017년 10월 사드 갈등을 일단 봉합했지만, 한·중 정상회담은 문재인 정부에서 3차례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중 관계 불확실성을 높이는 변수만 늘어나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이 무역전쟁에서 외교·안보 갈등으로까지 번지면서 한국은 선택을 종용받는 ‘샌드위치’ 신세에 처했다. 이 때문에 신정승 전 주중 대사(현 동서대 중국연구센터장)와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은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안정돼 보이지만 내부는 빈곤한 ‘외안내빈(外安內貧)’의 현 한·중 관계가 당분간 회복이 어렵다고 전망했다. 신 전 대사는 미·중의 한국 포섭 전략과 관련해 “중국의 ‘일대일로’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동시 참여”하는 게 좋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한·중 관계가 “리셋을 해야 하는 관건적 시기에 직면했다”면서 한국이 한쪽을 택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지 않게 ‘선제적 외교’를 펼쳐야 한다고 주문했다. 대담은 지난 21일 문화일보 5층 편집국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 먼저 지금의 한·중 관계를 평가해 달라.

△김흥규 교수(이하 김) =‘외안내빈’이다. 외적으론 평안해 보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소통·교류가 잘 안 되고 있다.

△신정승 전 대사(이하 신) = 특별히 뭐가 문제라고는 못 느끼지만 그렇다고 양국이 긴밀히 협력해서 움직이는 것 같다는 느낌도 안 든다.


― 2008∼2009년 주중 대사를 지낸 신 전 대사는 10년 전과 비교한다면.

△신 = 2008년 당시 중국 국내총생산(GDP) 총량이 30조 위안이었는데, 작년 말 90조 위안이 됐다. 국력 신장에 따라 국가 위상도 높아지고, 그러다 보면 대외적 발언도 점점 자기주장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중국 내에서 한국에 대한 인식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김 = 일단 제일 중요한 것이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다. 특히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집권 이후의 중국과 그 이전의 중국은 확연하게 구별되는 것 같다. 두 가지 구조적 변화가 있었는데, 첫 번째는 미·중 전략경쟁 본격화다. 두 번째는 글로벌 밸류 체인(가치사슬)에 있어 한·중 간 분업구조가 깨져 나가면서 더 이상 중국이 한국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특히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변수가 제4차 산업혁명이다. 과거 계획경제 시대 때는 비합리적이고 체제 유지에 비용이 많이 들었지만,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 소위 ‘갓파더’라고 하는 최고 지도자가 필요한 정보·자원에 대한 통제, 관리, 배분이 가능해지는 사회가 된다. 그렇게 되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한 다른 체제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사회 개조 및 운용이 가능하다고 중국이 자신감을 갖는 것 같다.

△신 = 시 주석이 그렇게 믿는 것과 실제 가능할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여서 좀 더 관찰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시 주석의 사상통제나 강압 조치에 대해서도 도시 식자층에서 불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김 = 현재 미·중 전략경쟁의 이면에는 미국을 포함한 서방진영의 공포가 작용하고 있다. 서방에는 경제가 발전하면 단일한 정치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 사회 생산력보다도 더 들기 때문에 체제가 흔들리면서 민주화로 간다는 공식이 있다. 그런데 지금 중국은 거의 무제한적으로 빅데이터 및 개인정보 접근이 가능하다. 민주화나 개인 자유 보장이라는 서구 가치에 반하는 추세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또 다른 근본적인 공포는 이 세계가 바뀔 수 있다는 공포로, 조지 오웰의 ‘1984년’에 가장 근접한 세계에 중국이 도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패권 간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새로운 가치관과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이를 저지해야 한다는 미국 주요 전략가들의 사고가 작동한 결과다.

― 서방이 두려워하는, 중국이 추진하는 패권은 무엇인가.

△신 = 중국은 한 번도 패권을 추구하겠다고 말한 적 없다. 다만 요새 중국인들은 ‘인류운명공동체’를 이야기하는데, 들여다보면 주권 평등과 상호협력을 기초로 운명공동체를 건설하고, 대외적으로는 ‘신형국제관계’라고 설명한다.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중국도 답변을 못 내놓고 있다. 현시점에서 평가한다면 운명공동체는 서방의 ‘중국 위협론’에 대응하기 위한 논리 전개로 볼 수 있다. 중국이 여러 문제 때문에 향후 30년 안에 패권 국가가 되는 그런 일이 발생하진 않을 거 같다는 게 제 생각이다.

△김 = 중국은 오히려 반(反)패권을 주장하고 있다. “세계는 하나의 대가족”이라는 게 중국의 개념으로, 문명은 하나이기 때문에 누구를 배제하는 동맹 관계는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중국 국내 정치체제 등을 보면 중국 주장과는 전혀 다른 세계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이제 미국에 유럽도 ‘남’인 상황에서 실질적인 경제적 도움을 줄 수 있는 나라는 중국이기 때문에 각국들이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도 쉽게 대응하기 어렵다. 중국이 미국과 차별화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는 전략으로 나간다면, 다시 말해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을 해나간다면 중국 영향력이 훨씬 커지는 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중국이 과연 디커플링 정책으로 나아갈까. 미국이 이를 수용할지도 의문이다.

△김 = 미국이나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의존도를 줄여나가며 중국 자체의 시장, 중국 자체의 완결된 구조를 만들어 나아가는 게 가능하다. 미·중이 과거 냉전 시대의 미·소련 같은 강력한 흡입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영향권 내에서 회오리칠 텐데, 미·중이 각자의 영역을 구축해서 각자의 표준을 적용시키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신 = 미·중이 전략경쟁 강도를 높이겠지만 본격적 무력충돌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적어도 앞으로 30년까지는 현 체제 비슷한 것들이 유지돼 나가지 않겠나. 미국의 역량이 부족하게 되면 타협해서 새 형태의 공존 구도로 가려고 할 거고, 내부적인 문제들로 인해 중국 발전에 중국 시스템이 장애가 될 경우에는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가 길어질 것이다.

△김 = 중국이 미국을 압도할 수는 없다. 역으로 미국이 중국을 압도할 수도 없다. 우리가 경험 못했던 새로운 질서에 대한 합의 과정이 시작되는데, 지금 시작이다. 현재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도 경제구상이라고 하지만 안보 군사적인 전략으로 확대되는 건 필연이라고 본다. 승부를 결정짓는 것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게임 체인저’를 누가 확보할 수 있느냐다. 또 하나의 변수는 내구성인데, 미국의 민주주의와 중국 권위주의 시스템이 이 전략경쟁 비용을 얼마나 감내할 수 있는가이다.

― 이런 상황에서 중국에 한국은 어떤 존재인가. 한국의 사드 배치 이전과 이후의 중국이 다른 것 같다.

△김 = 중국의 사드 관련 조치는 중국 정책 결정 과정의 약점을 보여준 것이다. 중국도 이제는 그 정책 결정으로 인한 폐해와 문제점들에 대해 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데, (중국이) 인도·태평양 전략을 받아들이면 미국 핵전력 현대화, 중국을 직접 압박하는 중거리 탄도미사일 전진배치 문제를 (트럼프 대통령이) 들고나올 것이다. 그때 한국이 이를 받아들인다고 하면 이는 사드와는 근본적으로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 중거리 탄도미사일은 중국의 핵 기지를 겨냥해 전진배치된 공격 무기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적어도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이 버텨 주기를 바란다. 중국이 자꾸 경제공동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것으로 남북한과 엮겠다는 생각이며, 이게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와도 연관된다. 중국은 한국을 영향력하에 편입하면 일본도 넘어오게 돼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신 = 사드에 대해선 중국 내부에서도 검토가 진행됐던 거 같다. 한국뿐 아니라 중국 주변국들이 사드 사태를 관찰하게 되면서 중국으로서는 잃은 게 더 크다고 봤을 수 있다. 하지만 사드 문제 앙금이 아직 남아 있고 최근 미세먼지에 대해 중국 책임론도 가세하면서 중국에서 불편한 기색을 보이고 있다. 2017년 이후 한·중이 미·북 관계에 더 관심을 쏟은 것도 요인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같은 이유로 앞으로도 단기간에 양국관계가 아주 좋아지는 상황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김 = 사드로 인한 양국 국민의 상흔이 컸던 거 같고, 양국 지도자 간 신뢰도 별로 형성 안 된 것 같다.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에 대한 전략적 공감대도 형성이 안 돼 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미국에 가서 보수 정부도 주저하던 한·미·일 안보 협력을 문서화했다. 반면 중국은 방중한 문 대통령을 ‘혼밥’ 하게 했다. 하지만 중국은 한국을 때리고 싶지 않아 한다. 미·중 전략경쟁에서 한국의 향배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미·중 전략게임 속 굉장히 중요한, 대단히 상징적으로 승패를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미·중으로부터 각각 인도·태평양 전략과 일대일로 동참을 압박받고 있는데.

△신 = 중국의 일대일로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우리가 모두 다 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 교수는 인도·태평양 전략이 군사·안보적 측면으로 조만간 변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난 아직 여건이 성숙하지 않았다고 본다. 동남아 국가들이 군사적으로 중국에 대응하는 개념에 매우 반발하고, 인도조차도 소극적이다. 제3세계의 인프라 건설은 중국에 맡기고, 미국은 교육·의료사업 등에 집중 투자하자는 내용의 미국 전문가의 견해도 있더라. (정부가) 신남방정책 이야기를 하는데, 실체가 뭔지 불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아시아 국가들에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 기초가 될 수 있는 부분에 미·일과 같이 투자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동시에 일대일로에 대해서도 현지에서 마찰도 있고, 중국 영향력이 커지는 데 대한 우려가 있다. 한국이 중국의 문제 대응에서 협력할 기회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가져본다.

△김 = 인도·태평양 전략은 반드시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안보·국방 분야로 넘어갈 것이다. 물론 간단치 않은 작업이겠지만, 트럼프 시대에 훨씬 거칠게 다가올 수도 있다고 본다. 그래서 ‘선제적 외교’가 중요하다. 선택의 순간이 오기 전에 긍정적으로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다가올 도전이 생각보다 험난할 것 같다.

△신 = 우리에게는 위험한 지역이 한반도이지만, 미·중이 대만해협이나 남중국해에서 충돌할 수 있다. 다 한반도와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주한미군을 빼서 거기로 보낸다는 식의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동맹인 한국에 협력을 요구하는 등 어려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 시 주석이 6월 말 일본에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참석 계기로 방한할까.

△신 = 시 주석 방한 문제는 지난해 11월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 열린 한·중 정상회담 때 나온 이야긴데, 그 이후로 대충 흘러가는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시 주석이) 평양을 먼저 가는 분위기였다. 사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번 방중했기 때문에 시 주석의 답방은 명분이 있다. 다만 시 주석이 평양에 가려면 북핵 문제에 좀 진전이 있어야 한다. 미·북 정상회담 이후 핵 문제가 어려움을 다시 맞는 상황에서 시 주석이 평양 방문도 망설이고, 연장선상에서 방한도 주저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시 주석이 6월에 방한한다면 지금쯤 선발대, 최소 왕이(王毅) 외교부장이라도 와야 하는 시점인데 그런 게 없는 것으로 봐서 가까운 시기에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 = 미·북 정상회담이 잘 진행되는 게 전제였다. 하지만 중국이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또 다른 변수가 미·중 전략경쟁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중국은 원치 않는다. 두 번째로는 중국이 비난의 빌미를 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시 주석이 평양 방문을 결심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한국만 방문하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 당분간 남북한과 중국 간 정상 외교는 쉽지 않을 듯하다.

― 시 주석이 방한한다면 제재 완화 등과 같은 북핵 해법을 들고 올까.

△신 = 왕이 외교부장이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 입장을 발표한 적이 있다. 북한이 주장하는 단계별·동시적 행동뿐 아니라 사실 미·북 입장을 절충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방안을 제시했다. 첫째, 당사국 간에 북핵 문제와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에 대한 포괄적 합의를 먼저 하자. 그다음에 단계별 행동·조치를 합의하자는 것이다. 어떻든 중국도 현재 상황에서 미국 입장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제재를 완화할 가능성은 낮다.

△김 = 중국은 기본적으로 북한이 원하는 선물, 즉 제재 해제를 줄 생각이 없다. 중국은 한국에는 북한을 계속 설득하고, 미국의 지나친 대북 압박을 중재해주는 역할을 기대할 것이다. 북한이 말을 듣게 하려면 북한에 원하는 것을 줘야 하는데, 중국도 수단이 별로 없다. 잘못 건드리면 중국이 손해만 보는 국면이 올 수 있기 때문에 북한에 상황을 악화시키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는 대중 정책을 어떻게 추진해야 하나.


△신 = 전략적 소통은 계속하면서 같이 노력할 필요가 있다. 2022년이 한·중수교 30주년인데, 한·중 관계의 미래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 그런데 여건이 그런 분위기가 아닌 것 같아 안타깝다.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한·중 민간 공동위원회를 만들어서 미래의 한·중 관계 분석과 건의 등을 포함한 보고서를 만들어 정부에 전달하는 방향으로 노력해보면 어떨까 한다.

△김 = 중국은 한국의 사활적 이해가 걸린 주변 강대국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중 전략경쟁 시기에 우리가 신중하지 못하게 ‘편승 전략’을 취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지금 이 단계에서 중국과 어떻게 같이 경제이익공동체를 만들 수 있느냐 여부에 따라 한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운명공동체·이익공동체를 계속 강조하고 있는데, 우리가 새로운 모델을 만들 공간도 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기회의 창을 양국이 적절하게 활용하고, 구체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현재의 ‘외안내빈’ 상황은 대단히 우려스러운 만큼, 빨리 탈피해서 보다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전략적 비전을 서로 같이 고민하는 접점들을 만들어야 한다.